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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소풍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26.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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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소풍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올 들어 한 친목모임의 대표를 떠맡았다. 대표의 가장 큰 임무는 두달에 한번씩 있는 모임을 잘 꾸리는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모임이어서 많을 때는 참가자가 50명을 넘기도 한다. 그래서 모일 곳을 마련하는 게 늘 가장 큰 골칫거리다. 1년에 한번씩 함께 떠나는 여름여행 때는 숙박시설을 빌리니까 오히려 쉽다. 하지만 보통 때는 함께 모일 만한 곳을 구하기가 어렵다. 식구는 계속 늘고 아이들은 커가기 때문이다. 올해는 모임을 계절에 한번씩으로 줄이기로 했는데, 여전히 장소가 골칫거리였다. 고심 끝에 내놓은 해법이 ‘소풍’이다.


소풍이라고 하니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냐”며 친구들이 오히려 반겼다. 아직 서늘한 바람이 조금 남은 3월 마지막 일요일 우리는 그렇게 도시락을 싸들고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모였다. 갑작스레 일이 생겨 많은 이들이 빠지게 됐는데도, 어른 아이 합해 30명이 넘게 모였다. 프로그램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저들끼리 어울려 노니 어른들은 그저 해방이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고 도시락을 나눠먹고, 종마공원에 가서 말 구경을 하니 봄날 하루해가 짧다. 돌아오는 길에 빈대떡에 동동주 한 사발씩 나누는 것으로 우리의 소풍은 끝났다. 아주 만족스러웠다는 치사를 여러 번 들었다. 빈말 같지 않았다.

사실 나는 소풍 가기를 아주 좋아한다. 이제는 학창시절처럼 십리길 걸어걸어 풍광 좋은 곳을 찾아가지는 못한다. 멀더라도 오가는 데 너무 고생스럽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으면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내가 원하는 소풍 장소다. 올해는 한달에 한번씩 꼭 소풍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난 2월엔 철원에 철새를 보러 갔고, 3월엔 생태연구소 마당의 류창희 소장이 가꾸는 청계산의 개구리논에 다녀왔다. 이번엔 속리산으로 산나물을 뜯으러 가기로 했다. 무의도의 갯벌과 올해 새로 시작하는 서산 농민들의 오리농법 농사 현장도 그 다음 일정에 넣어두었다.

그런 소풍은 작심을 해야 떠날 수 있다. 하지만 주말농장을 찾는 일은 늘 소풍이다. 총선거가 있던 날 오전에 투표를 하고 옆집 정원이네 식구들과 함께 농장을 찾았다. 고추와 꽈리고추 모종을 3주씩, 방울토마토·케일·치커리를 2주씩 사서 옮겨심기를 했다. 작은 구덩이를 파서 물을 흠뻑 주고 그 자리에 모종을 넣고 흙으로 덮으니 10여분 만에 일이 끝난다. 소풍의 참맛은 점심에 있다. 정원네가 집에서 밥을 준비하고, 가는 길에 쌈거리와 삼겹살을 샀다. 그릴과 숯은 농장에서 언제든 구할 수 있다. 이미 농장 휴식터에 마련된 정자엔 우리처럼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역시 나도 그들도 농사꾼이기에 앞서 소풍객임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으랴.

일요일에 다시 농장을 찾았다. 사실 내겐 걱정거리가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오래 계속되면서 씨앗들이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밭은 씨앗을 너무 얕게 심어서인지 열무를 제외하고는 싹이 보이지 않았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으니 자주 가보는 수밖에 없다고 속다짐을 하는데, 고맙게도 밤부터 비가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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