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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가게 같은 친정,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5. 1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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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가게 같은 친정,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님의 추억 어린 물건들, 버리고 싶지만 차마 버릴 수 없습니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령희(kim02) 기자   
저의 친정 부모님은 옛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못합니다. 가지고 있어도 쓸모는 없고 그러나 버리자니 왠지 멀쩡한 물건들로 이사 할 때마다 꼭 따라다닙니다. 많은 분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으리라고 봅니다.

엄마가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대표적인 물건은 처녀시절에 입었던 옷 몇 벌입니다. 간혹 엄마는 그 옷가지들을 보며 크게 한숨을 짓기도 하고, 씁쓸한 웃음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옷을 입는 경우는 전혀 없습니다. 아니 불어난 몸 때문에 입을 수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그 옷은 젊은 날을 추억할 때만 사용하는 옷입니다.

저는 그 옷이 싫습니다. 새 옷을 사드리려고 해도 엄마는 한사코 싫다고 하십시다. '옷도 많은데 뭐하러 새 옷을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옷들은 ‘추억의 옷’들 뿐입니다. 입지도 못하는 그 옷 때문에 엄마는 새 옷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엄마의 옛 옷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엄마에게 그 옷을 버리자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엄마께서는 당신과 비슷한 또 다른 경우의 예를 들며 추억의 옷을 지켜야하는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 라디오 사연속의 어머니는 이 매끄러운 사기 커피잔 세트보다는 투박한 질그릇에 정이 더 갔을 것입니다.
ⓒ2004 김령희
엄마는 구로 공단에서 재봉일을 하시는데, 그 작업장에서는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들으며 일을 한다고 합니다. 엄마는 얼마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었다는 사연을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말인즉슨, (라디오 사연 속의) 엄마는 넝마를 주워 모아 생활을 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답니다. 집안의 세간들도 어렵게 하나 둘씩 장만한 것이구요. 세월은 흘러 장성한 그녀의 딸은 시집을 갔습니다.

어느날 친정나들이를 한 딸이 오래된 친정의 그릇들을 정리했습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대신 깔끔한 식기세트 몇 개를 사다놓았습니다. 딸은 오래된 그릇보다는 세련된 식기세트를 친정 엄마가 더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엄마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내다버린 옛 그릇들을 모두 찾아왔습니다. 엄마는 '어렵게 마련한 식기들을 어떻게 쓰레기 취급할 수 있냐'고 딸을 나무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친정 엄마의 옛 옷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엄마의 옷을 함부러 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정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실 엄마의 옷을 단적인 예로 들었을 뿐, 친정에는 골동품 가게를 연상시킬 정도로 옛 물건들이 아주 많습니다. 지금도 친정에는 20년이 지난 세 자매의 초등학교 전학년 교과서가 꽂혀 있을 정도입니다.

5, 6번 이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초등학교 교과서는 라면상자에 담겨 새 집으로 옮겨지곤 했습니다. 그 책들 때문에 대학에 다니는 여동생이 대학 교재를 책꽂이에 꽂지 못할 정도이니, 옛 물건들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한 번은 동생이 그 책들을 몰래 버리려다 아버지께 들켜 크게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골동품 같은 쓸모 없는 물건들 때문에 미관상 보기 안 좋고 비좁은 집이 더 좁게 느껴져 불편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소중한 물건 즉 '추억'인 것입니다.

결혼 후 저는 친정에서 분가했지만 그곳에서 생활하는 여동생은 발에 걸리는 옛 물건들 때문에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부모님의 아련한 추억, 애환이 담긴 물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눈으로 보면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이유인 즉 더 좋은 것을 해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모님께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김령희 기자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새내기 주부입니다. 투철한 절약정신으로 그동안 서너 차례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짠순이 아내’ 로 잘 알려진 그녀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남편의 독려로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글 올리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아름답고 소중한 글들을 ‘사연나라’ 로 불리는 그들만의 홈페이지(www.yun.speedbook.net)에 가득 채울 생각이라고 합니다.

2004/05/12 오전 9:33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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