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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전, 편입에 환장하다 솔직히 말해, 1년 전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 자신은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이라 믿었지만, 사실 남들은 내가 학점에 환장한 사람 그 자체로 보였다 말한다. "넌 친구보다 학점이 중요하냐?" 이런 말하는 친구들한텐 미안했지만, 사실 그때는 학점이 친구보다 중요했다. 학점에 환장할 이유는 충분했다. 1년 전 유일무이한 내 꿈은 좋은 대학에 편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학벌 같은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넌 어느 대학 다녀?" 이 말은 자꾸 신경 거슬리게 들려왔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들에게 우리나라는 힘든 사회였다. 아르바이트 자리하나 구하는데도 학벌이야기가 오고가고, 사람을 만나는 데도 학벌이 주가 되는 사회. 그때 나는 학벌이란 것이 왜 중요한지 몰랐지만, 그것이 사회에서 필수적인 요구하는 요소라는 것은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부끄러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나 역시 꼭 잘 나가는 대학, 편입에 성공해서 학벌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살고싶었다. 정말 그러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다. 편입을 위해선 당연히 좋은 학점이 필요했다. 나는 편입을 위해, 레포트 100장, 그게 아니라면 대자보로 레포트를 작성해 교수한테 제출했다. 그리고 그 앞장에는 내 꿈을 적어서 제출했다. 그에 대해 교수들은 "매우 좋다"로 답했다. 덕분에 나의 편입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날 부끄럽게 만들었던 한 교수 이야기 하지만 2학년 2학기, 나이가 지긋한 교수와의 만남은 내 편입의 꿈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그 노 교수가 가르친 과목은 전공과목 <재무회계>,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과목을 수강 신청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교수는 학점을 짜게 주기로 유명하다는 사실이었다. 또 시험문제는 거의 풀 수 없는 알쏭달쏭한 문제를 낸다는 사실도 덧붙여 알았다. 나는 애써 별문제 없을 것이라 믿었지만, 그건 정말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 능력으론 전혀 풀 수 없는 중간시험 문제가 나온 것이다. 덕분에 나는 난생 처음으로 시험에서 0점을 맞게 되었다. 시험을 못 봤다는 은유적 표현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시험지에 0점이라는 표시가 달려있었다. 노 교수를 찾아가다 학점 "F"는 불 보듯 뻔했다. 덕분에 내가 그토록 원했던 편입은 시도조차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상황은 레포트 100장을 쓴다고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역시나 내 꿈을 적은 레포트를 교수에게 제출했지만, 그 교수는 반응조차 없었다. 길이 없었다. 노 교수, 그를 한번 찾아뵈어야 했다. 하지만 교수를 찾아간다는 것은 내겐 낯선 경험이었다. 대학교수와 학생간의 관계는 정말 상투적이었다. 스승이라는 존경심과 제자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대학교 2년 동안의 생활은 내게 이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렇기에 노 교수를 찾아가는 것이 무척 낯간지러운 행동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F를 피하기 위해선 교수를 찾아 뵈야만 했다. 똑똑똑... "들어와." 교수의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노 교수는 한쪽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저 교수님, 중간성적 때문에 왔습니다." "음, 성적이 뭐 잘못되었나?" 노 교수의 물음에 내가 머뭇거리며 답했지만, "아..아뇨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시험을 망친 자초지종을 밝히고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역시 노 교수의 대답은 냉정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 같은데, 열심히 해서 기말고사를 잘 보게나." 너무나 차디찬 음성, 난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연구실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이보게, 스승과 제자사이는 그런 게 아니라네......" 그 노 교수와의 만남이 내 인생에 있어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줄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했던 말들은 아직 내 가슴에 남아있다. 그것은 내가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날, 나에게 전해졌던 말들이었다. 기말도 0점이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책을 봐도 알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노 교수가 학생들을 골탕먹이려는 행동 같게만 보였다. 이대로 가면 끝이었다. 나는 F를 피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부끄러운 짓이었다. 포장지에 싼 값나간 양주를 들고, 교수를 찾아뵌 것이다. 노 교수가 이른 아침에 학교에 와 공부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아무도 오지 않았을 아침에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똑똑똑... 노 교수는 아침에 찾아온 손님이 궁금했는지, 이번엔 직접 나와 문을 열었다. 노 교수는 나를 기억하는 듯했다. 한참동안 나를 응시하던 그는, "무슨 일인가?" 하고 물었다. 나는 또다시 자초지종을 말하고선 내 오른손에 들려진 선물을 건넸다. 물론 교수가 무안하지 않게, 잘 말하려고 노력했다. 제자가 스승에게 감사함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때, 노 교수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그는 날보고 "잠시 안으로 들어오게"라는 짧은 말을 건넸다. 나는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연구실 한쪽 자리에 앉았다. 노 교수 역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의 시간은 몹시 답답했지만, 나는 차분히 앉아 교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고맙다 등등의 말을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교수의 다음 말은 내 가슴에 부끄러운 무엇인가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이보게, 스승과 제자의 사이는 그런 게 아니라네...." 노 교수의 말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노 교수는 부끄러워 고개조차 들 수 없는 날 위해 말을 이어갔다. "자네가, 지금까지 해왔던 열성과 노력은 보아서 알고있네. 레포트도 잘 읽었고, 하지만 지금 행동은 자네의 그 신념에 부끄러운 일 아닌가?" 노교수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관심깊게 나를 지켜봤던 것이다. "편입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너무나 갑작스레 내 입에서 그 말이 터져 나왔다. 딴 학교로 편입을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과연 어느 교수가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노 교수는 정성스레 답했다. "과정을 지켜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네, 자네가 시험에서 0점을 맞았던 것은 과정을 답안지에 적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야, 답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만드는 과정이네. 편입이란 것은 단지 결과일 뿐이네." 그말은 한참 동안 내가슴속에 진한 여운을 남겼다. 도망치듯 부끄러운 선물을 들고, 연구실을 나왔다.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다 모를 만큼 난 부끄러웠다. 교수님께 드리는 짧은 다짐 "과정을 지켜나가겠습니다" 다음 해 1월, 이런 부끄러운 짓을 자행했던 나는 결국 편입시험에서 떨어졌다. 편입을 학벌의 도피처로 생각했던 내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과정을 지켜나가라." 노 교수의 말은 아직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 노 교수의 배려 덕분에 그 학기에 난 적지 않은 액수의 장학금을 탈수 있었다. 5월15일 스승의 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스승은 대학에서 내게 0점을 주었던 장본인인 노 교수이다. 그는 내게 과정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줬고, 그리고 학벌이란 것에 집착하던 나를 변화하게 해 주었다. 그 스승의 배려에 발맞추어 나도 변화하고 싶다. 과정의 중요성을 항상 가슴에 담고, 편법이나 도피처를 찾는 것이 아닌 지금 당장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만족한 삶을 살고싶다. 그리고 그런 당당함으로 다음 번에 그 노교수님을 찾아뵙고 싶다. | ||||||||||||
2004/05/15 오전 9:16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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