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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 오늘 미술대학에서는 스승의 날 기념 체육대회가 있어서, 학생들 모두 수업을 못 들어 올 것 같습니다." 기분 좋게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출석을 부르려는 순간 학생 한 명이 미적미적 교탁 앞으로 나와서 한 말이다. 그 뒤를 이어서 음악대학 학생들이 나와서 오늘 스승의 날 행사에 합창을 불러 드리기로 했다면서 대부분 수업에 못 들어올 것 같다고 한다. 학생 한 명은 과대표인데, 스승의 날 행사 준비로 30분만 수업을 듣고 나가 봐야 할 것 같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70명 듣는 수업에 이리저리 빠지고 나니, 20명 남짓 남았다. 평소 결석하는 학생들 10여명을 제외하고 나면, 대략 40명은 스승의 날 행사 때문에 못 들어온 듯하다. 스승의 날은 스승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날이며, 동시에 스승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스승으로서의 온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날이기도 하다. 더욱 스승다운 스승이 되기 위해 자신을 보듬고, 학생들은 그러한 스승들에게 진정한 감사를 보내는 날인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교실이나 강의실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연구실이나 사적인 자리를 만들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것은 교실에서나 강의실에서의 만남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스승의 모습은 강의실에서 드러난다. 물론 제자들을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스승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스승의 정체성과 스승다움은 강의실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와이셔츠 깃을 적셔가며 열강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스승의 모습이 발견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잠시 고민하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스승의 시선에서 제자에 대한 사랑이 읽혀진다. 단 한 시간의 강의를 위해서 하루를 준비하고, 또 그것을 온전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게 스승이다. 이것이 스승의 삶이고 스승의 행동이다. 삶과 행동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진실성이 삶 전체에 투영될 때 가능하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여기에서 만들어진다. 젖은 와이셔츠 깃을 보면서 비로소 스승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시작되며, 자신의 목소리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주는 학생들의 눈망울에서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스승의 날은 이러한 스승을 '새롭게 인식'하며 만나는 날이고, 스승은 그러한 스승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다짐하며 그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날이다. 강의실은 바로 이러한 만남이 시작되는 자리이다. 그런데 스승의 날 강의실이 비어 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스승은 수업 준비를 하지 않고, 학생은 강의를 듣지 않는다. 체육대회나 즐거운 행사를 통해 '평상인으로서의 스승'은 만날 수 있겠지만, '스승의 모습을 한 스승'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승의 날 아름다운 꽃이나 포장된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은 모든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스승을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닐까? 스승의 날, 스승이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보답은 함께 땀을 흘리며 운동장을 뛰어 주는 것보다 제대로 준비된 열강이 아닐까? 넓은 강의실에 남아 있는 20명 남짓한 학생들이 그나마 오늘 나의 '스승의 날' 강의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인간복제'와 '인간의 가치'에 대한 나의 오랜 고민을 열심히 들어 주었던 20여명의 학생들만이 스승의 날이면 빼앗기게 되는 대학 수업을 지킨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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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4 오후 8:54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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