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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편지 보고 놀랐습니다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5. 1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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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편지 보고 놀랐습니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송진숙(dulggot) 기자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서 뿌듯하고 흐뭇하게 보낸 기억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5월이 되면 언론마다 마치 마녀사냥이라도 하듯이 교사들의 촌지문제를 도마 위에 올린다.

내가 근무한 지방의 면소재지 학교나 지금 근무하고 있는 서울 북부쪽은 그다지 큰 문제가 없는데도 단지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15일 즈음이 되면 죄인 아닌 죄인처럼 돼버리는 것에 속이 상하기 일쑤다.

올 해도 변함없이 걱정이 되는 터에 학교에선 행사를 14일 오후에 간단히 하고 15일에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찾아뵙게 한다고 임시휴교를 한단다.

그렇다고 부모들의 걱정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다. 난 아이 둘을 학교에 보내면서 '안주고 안받기'를 주장한다. 선물은 아이의 마음과 성의를 담아 하는 것이지 부모가 선물을 사서 아이에게 들려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담임하고 있는 학부모들이었다. 고민을 한 끝에 개인적으로 문안을 만들어 우리반 나름의 가정통신문을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2-9반 담임 OOO입니다.
품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으스스해, 떨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카시아꽃이 하얗게 피었더군요. 해마다 5월이 되면 싱그러운 신록을 보면서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떠올리고 거기서 희망을 봅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을 더 다잡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학기 초 총회 때 몇 분의 어머님들은 얼굴을 뵙고 교육과 학급운영에 관한 제 소견을 말씀드렸지만 대부분 부모님들껜 제 소견을 말씀드릴 기회가 없다 보니까 담임인 저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경우가 있으신가 봅니다.

우선 저의 학급운영 방침은 아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고 반성해 보게 합니다. 둘째는 아이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아이들이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도록 하는데 노력하고자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풍요롭고 형제가 별로 없이 자라선지 남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한테 부족한 것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이로 자라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넷째는 나눌 줄 아는 아이로 커나가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내가 손해 보는 것엔 예민하면서도 남과 나눌 줄은 모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부모님들께서도 많이 협조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는 '촌지 안주고 안받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 문제로 상담하러 학교에 오실 때는 뭐라도 들고 와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시고 부담 갖지 말고 빈손으로 오십시오. 그리고 아이에 대해서 궁금하지만 시간이 안 나실 때는 손전화나 이메일로 보내주셔도 괜찮습니다.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럽고 씁쓸하긴 하지만 이런 부담에서 벗어날 때까지 이런 운동을 벌여나가야 되겠지요.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무겁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교사나 학부모님이나 모두 아이 상담을 부담 갖지 않고 할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해주십시오.

아이들 자체가 제겐 선물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이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다시 한번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입에 발린 소리라고 생각하고 저를 시험에 들게 해주시지 않길 간절히 바라면서 이만 줄일까 합니다.

2004. 5. 13
OOO드림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간단하게 한 두줄 정도 답글을 받아오라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잊어먹고 전달하지 않는 가정통신문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들어갔더니 다른 반은 풍선달고 케이크 사다 나름대로 이벤트를 하는데 우리반은 조용했다. 아이들에게서 답글을 받아 교무실로 돌아와 읽어보면서 흐뭇했다. 내가 한 일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셈이다.

다음은 답글 중 하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OOO 엄마입니다.
오늘 편지를 받아보고 다소 놀랐습니다. 학기 초에 잠시 선생님을 뵙고 오늘 이 편지를 읽어보니 의지가 확고한 분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최대의 화제는 스승의 날에 어떻게 할 것인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른 반은 몰라도 저희 반은 모두 선생님의 생각을 이해하고 뜻에 따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학급운영방침을 읽어보고 부끄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공부하라는 얘기만 했지 인성교육을 위한 얘기를 한 기억이 별로 안나더군요. 학교갔다 온 아이를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내몰면서아이가 피곤할 거라는 생각으로 요즘 엄마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문득 이렇게 독립심이 부족한 아이로 키워서 과연 나중에 엄마, 아빠의 손길에서 벗어났을 때 사회생활을 잘 해나갈지 걱정이 생기기도 하지요. 자율성과 남을 배려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문득 학기 초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겠다'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오늘도 마음 편히 OOO를 학교에 보내겠습니다.


부모들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음이 답글에서 느껴졌다. 이런 편지를 안 보내도 되는 그날을 기다려보며 오늘도 교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2004/05/14 오후 5:08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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