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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그림이 한창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다들 그분 그림을 따라 그리고 또 그래야만 어느 정도 책이 나갔다. "선생님 그냥 비슷하게 그리죠?" "안돼! 걔가 책을 보면 선배가 후배 그림이나 따라 그린다고 날 뭐라고 그러겠냐?" 고지식한 선생님을 보고 우리들은 답답해 했다. "아니, 우리 책을 보기나 하겠냐? 그리고 남들은 다 비슷하게 하는데 왜 혼자서만 고집을 부리시는지 알 수가 없어." "그러게. 저러니 히트를 못 치지." 만화대본소에 가면 책을 몇번 봤는지 바를 정(正)자로 표시했는데, 우리 화실에서 나온 책은 그 표시가 많지 않았다. 단골 만화대본소의 주인 아주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아유. 난 이 책 안 받고 싶은데 총각들이 자주 오니까 안 받을 수도 없고…."
선생님은 그렇게 명맥만 유지하신 작가였다. 신생 출판사로 옮기자 전에 있던 출판사 사장의 압력 때문에 그나마 이어가던 작품도 얼마안가 중단하게 되었고, 우린 흩어져 나름대로 다른 화실에서 만화를 계속 그렸다. 그 뒤로 그분은 재기를 노렸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셨다. 가끔 안부 인사 정도나 드리지만 그래도 생신 때 만큼은 찾아갔다. 그날도 통닭 한마리 사들고 찾아뵈었다. "그래도 생일이라고 잊지 않고 와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왜 그 말이 마음에 콱 하고 박혔을까? 일간지에 연재해 첫 원고료를 받은 날 신문에 난 사진과 기사를 스크랩해 놓은 걸 들고 찾아뵈었다.
"제가 원래 뒷심이 있거든요." "그래. 찾아와 줘서 고맙고 또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고맙다." 난 손이 느린 편이라 만화 작업도 많이 도와드리지 못 한 한마디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제자였다. 그런 선생님에게서 왠지 가장 멋진 칭찬을 들은 것 같았다. 돈을 많이 벌어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도 성공한 삶일 테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풍요로운 삶일 테니 둘 중에 어떤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딱히 꼬집어 말하긴 힘들다. 그분에겐 사람을 편하게 하는 무슨 마법의 향기가 있는지 난 그 분 앞에서는 감추는 것없이 주저리주저리 이런저런 얘기를 수다스럽게 하고 그 분도 내 앞에선 이런저런 속내를 드러내신다. 그래서 선생님과 난 만나면 시끄럽다. | ||||||||||||||||||
2004/05/14 오후 5:01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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