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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참 불행한 학창시절을 보냈구먼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5. 1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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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참 불행한 학창시절을 보냈구먼
스승의날, 찾아 뵐 선생님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이민정(lov4ever) 기자   
몇 년 전에 우연히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난 적이 있다. 집회를 마치고 민주노총에서 주최하는 주점에 일할 사람이 없어 잠깐 도와 주러 갔는데, 마침 그 자리에 전교조 조합원인 선생님들께서 주문을 하고 계셨다. 담임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나를 기억할리 만무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저 **학교 9회 졸업생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니, 그 자리의 선생님들은 반가움 반 놀라움 반으로 환하게 반겨 주셨다.

다행히 주점은 일할 사람들이 더 와서 굳이 내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친구와 함께 선생님들과 자리를 할 수 있었다. 주점이 너무 시끄러워 자리를 옮기고 난 후 선생님들은 소위 '운동권'이 되어 있는 제자에게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격려까지 해 주셨다. 자연히 학교 다닐 때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었고,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수업 시간이 되면 혹시나 나를 지목해 문제를 풀라고 하지 않을까 하며 늘 조마조마 했던 수학 선생님도 이날은 아주 편했다. 고리타분한 것으로 유명했던 윤리 선생님의 말씀도 이날은 참 멋있게 들렸다.

나는 사립재단의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학교는 억지로 보충 수업을 시키고는 전기세까지 받았던 이상한 곳이었고, 당연히 전교조 조합원인 선생님들은 담임 선생님이 될 수 없었다. 지금은 전교조 조합원이 된 선생님들이 한분 두분 늘어나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몇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들 사이는 늘 두갈래 혹은 세갈래로 나뉘어 묘한 기류가 흘렀다.

소수였던 전교조 선생님과 그 분들을 탐탁치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또 한 부류가 있었다. 물론 이도 저도 아닌 선생님들도 있었다.

이 날 만난 전교조 선생님들은 나의 담임 선생님들을 물으셨다. 나는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담임 선생님의 성함을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약간 취한 듯한 한 선생님께서 아주 묵직한 목소리로 "자네, 참 불행한 학창 시절을 보냈구먼!"이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하시니,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느낀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참 재미없이 학교를 다닌 것 같다.

나에게 학교라는 공간은 늘 강박과 위축이 함께 하는 곳이었다. 상장이라고는 개근상이 고작이었고, 장사하시느라 바쁘신 어머니는 입학식과 졸업식 말고는 학교에 오신 적이 없었다. 게다가 언제나 등록금을 제때 내지 않아 종례 시간에 번호가 불리는 처지였기에 학교는 편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틀린 개수 만큼 손바닥을 때리는 물리 선생님이 있었는데, 나는 늘 얼굴 벌개지면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을 좋아해서 편지도 쓰고, 다른 친구들에게 그 선생님을 좋아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그 과목 공부는 죽으라고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선생님들과 친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사실은 선생님들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위축되고 당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학교 생활이 강박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만난 선생님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에 꿀밤을 한대 때리며 "그 말 하고 찾아온 놈 없더라!"고 껄껄껄 웃으셨다. 그런 선생님들이 마냥 편하게 느껴졌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졸업을 했기 때문이고, 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나는 이유없이 때릴 사람도, 무엇을 하라고 시킬 사람도 없기에, 그리고 부당한 것이 있으면 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승의 날, 나는 올해도 찾아갈 선생님이 떠오르지 않는다.

2004/05/13 오후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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