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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은 예고도 없이 자리를 바꾼다고 했다. 자리 바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선생님은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9살 여자 아이에게는 결혼을 하여 사는 남편을 바꾸는 일과 맞먹을 정도로 민감한 일이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자리를 바꾸면 좋을까?"라는 민주적인 말씀도 없이 남녀로 짝을 바꿨다. 나와 짝이 된 남자아이는 운동을 좋아하고, 어른스러워보였다. 그 당시 무엇보다는 중요한 것은 잘 생긴 아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라면 웬지 거부감이 들었던 그때는 섣불리 남자 아이와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의 남자에 대한 거부감은 집안에서 비롯된 것같다. 양조장에 다니는 아버지는 자주 술에 취해서 집에 돌아왔고,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의 귀가에 맞추어 일렬 횡대로 서서 인사를 해야 했다. 만약 그렇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그 책임을 어머니에게로 돌려 '집에서 자식들 교육 제대로 못 시킨다'고 타박하시며 밥상을 엎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남자에 대한 혐오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나와 짝이 된 남자아이도 별말이 없이 얌전했다. 다음날, 나는 다른날과 다르게 일찍 등교했다. 교실은 텅 비어 있었고, 나의 새로운 자리에 가방을 놔두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교실에 들어와보니, 한 아이가 자기 짝이 마음에 안들어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선생님이 원래 자리로 모두 돌아가라고 하셨다." 나는 그 아이의 거짓말이 사실인 줄 알고, 짝 바꾸기 전 여자아이와 앉았던 곳으로 돌아갔다. 선생님께서는 그 전 상태로 앉아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나셨다. 선생님의 권위에 손상을 입힌 엄청난 사고였던 것이다. 선생님의 고함 소리에 모두들 쥐 죽은 듯 가방을 옆구리에 차고 새로운 짝지를 찾아갔다. 그런데 '다시 돌아 갈 수 없다'고 우기며 매를 번 여자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나였다. 아침 일찍 등교해서 수줍은 듯 가방을 살며시 놔두고 갔던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운 것이다. 선생님은 오직 그의 권위에 대항하는 여자 아이가 가소로워 매를 들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니였다. 결국 다시 자리를 바꿔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선생님이 미웠고, 짝을 거부했던 남자아이에게 미안했다. 그 아이도 나름대로 상처를 받았을거라는 생각이 나의 어린 소견에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과 관련하여 선생님은 나에게서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선생님이 되었다. 그는 키가 작고, 항상 어깨를 비스듬히 하고 다녔다. 그리고 입도 약간 비뚤어진 듯했다. 그후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 분의 딸이 나와 같은 나이여서 친구를 통해 선생님의 집에 가게 되었다. 1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선생님을 만났을 때 거기에는 내가 생각했던 선생님보다 훨씬 작고 어깨가 기울어진 사람이 웃으며, 우리들을 반겨 주었다. "그 때의 여자 아이를 기억하냐"는 나의 질문에 그 분은 미소를 지으시며 "당연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아이의 어릴적 경험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어른이 된 지금도 어제 일 같이 생생하다. | ||||||||||||
2004/05/13 오후 2:08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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