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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처럼 천천히 살고 싶습니다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5. 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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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처럼 천천히 살고 싶습니다
<포토에세이>느릿느릿 달팽이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민수(dach) 기자   
ⓒ2004 김민수
달팽이를 볼 때마다 '천천히, 느릿느릿'을 떠올립니다. 지난 해 보았던 예쁜 꽃들도 언제 필지 궁금하여 산책길에 풀섶 여기저기를 보다가 막 피어난 꽃들을 발견하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가끔씩은 나무에 피어난 꽃들과 연록의 잎새들을 놓칠까봐 하늘을 들어 나무를 봅니다. 연한 파스텔톤의 녹엽과 꽃들의 행렬은 지친 마음에 비타민처럼 다가옵니다.

이렇게 봄과 함께 나비와 벌도 찾아들고 갓 나온 새싹들을 더욱 힘차게 자라게 하는 봄비가 내리면 연한 나뭇잎을 느릿느릿 유영하는 달팽이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달팽이가 보이기 시작하면 봄도 그리 오래 남지 않은 것 같아 아쉽지만 계절의 속성이 변하지 않는 듯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니 오늘 나에게 주어진 그 일상을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알고 감사하며 맞이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습니다.
새싹들이 하나 둘 들판을 물들였지만 아직은 갈색의 들판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봄이 온 길목에서 새싹이 이고 나온 달팽이껍질을 보았습니다. 언젠가는 저 달팽이도 생명이 있어 느릿느릿 그 삶을 살았을 것인데 지금은 텅 빈 껍데기로 말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살아서도 죽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달팽이가 고마웠습니다.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는 부끄러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 스스로의 삶을 많이 돌아보았습니다. 천천히 살자고 했는데 왜 그렇게 급하게 사는지, 못생기고 천한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했는데 왜 그렇게 잘생긴 것만 탐하는지 내 속에 들어있는 나를 다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 작은 것, 못생긴 것, 느린 것, 단순한 것이라는 네 가지 화두를 안고 씨름을 했습니다. 아마 평생을 두고 고민하며 말로만이 아닌 삶으로 살아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2004 김민수
고사리장마가 시작되면서부터 서서히 달팽이를 위시해서 들녘의 주인들이 하나 둘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고사리를 꺽다 만난 장지뱀, 텃밭에서 만난 무당벌레, 아침이면 수북하게 잔디밭 여기저기에 똥을 싸놓는 지렁이,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지네, 올챙이에서 개구리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조용한 들판 여기저기에서 삶의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봄비가 내리는 야심한 지금은 개구리들의 노랫소리가 경쾌하게 집안으로 뛰어들어옵니다.

각기 다른 것들이지만 큰 테두리 안에서 '자연'이고, 그들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다른 듯 어울리며 하나의 자연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살기에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강대국에 의해서 짓밟히는 약소국가의 인권유린 소식을 듣고는 우울했습니다. 인두겁을 쓰고 그런 일을 자행할 수 있다는 것,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그것은 현실이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습니까? 귀가 먹었습니까? 눈이 멀었습니까?'

80년대 눈물을 흘리며 불렀던 그 노래를 다시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혀를 짤려 말을 못하는, 귀가 먹어서 듣지 못하는, 눈이 뽑혀서 보지 못하는 것과도 같은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내가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노라고 절규했던 그 시절의 기도가 또다시 마음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이런 상황들 뿐 아니라 자잘한 개인사에 문제에 이르기까지 절망하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해해거리며 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봄날이 조금은 우울했습니다. 비까지 내리는 날이면 마음이 더 가라앉으니 더 마음이 어수선했습니다. 절망을 포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2004 김민수
그 날 달팽이를 만났습니다.
드문드문 보이는가 싶더니 비가 한차례 뿌리고 나니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눈길을 주면 달팽이들이 느릿느릿 기어갑니다. 그 모양도 각양각색입니다. 나뭇잎을 갉아먹느라 정신이 없는 놈에서부터 어디론가 끊임없이 느릿느릿 유영을 하듯 나뭇잎을 타고 가는 달팽이에 이르기까지 어느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른 소리를 들려줍니다.

작은 이파리 끝에서 고개를 쭉 내밀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려는 몸짓을 봅니다. 과연 올라갈 수 있을 것인지 한참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아도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차라리 돌아 내려가서 저 넓은 잎이 있는 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보란 듯 넓은 잎에 올라갔습니다.

"와, 번개같다!"

그랬습니다.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이는 현실에다가 마음껏 힘을 주고 까치발을 들을 수도 없을 것만 같은 가녀린 이파리는 바람에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파리에서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저 높은 곳을 올라갔습니다. 왜 그 곳에 올라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 장하다고 박수를 쳐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물이라고 여기는 저 달팽이도 저렇게 도약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데 삶의 여정에서 조금의 장애물만 나타나도 안절부절 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래요.
어느 누구라도 평탄한 삶은 없었습니다.
모두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았고, 어떤 사람은 절망했던 것입니다.

ⓒ2004 김민수
이제 또 저 곳에서는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느릿느릿 그 길을 가다보니 막다른 길에 몰렸습니다. 절벽 같은 길이 나타났고, 길이 끝나버렸습니다. 돌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 끝에 선 김에 끝에서부터 조금씩 자기의 양식으로 삼아 이파리를 갉아먹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달팽이는 압니다.
촉촉한 물의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뜨거운 햇살이 비추기 전에 온 몸을 붙이고 있을 그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지금 좋다고 마냥 저 곳에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달팽이의 지혜일 것입니다.

오랜만에 달팽이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달팽이를 보니 천천히, 느릿느릿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삶을 돌아보며 반성도 하게 됩니다.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2004/05/13 오전 5:55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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