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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아침 이슬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6. 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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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시작을 위하여
<포토에세이> 아침 이슬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민수(dach) 기자   
▲ 해맞이를 하는 소나무
ⓒ2004 김민수

노자(老子)의 '상덕부덕, 시이유덕(上德不德, 是而有德)'-높은 덕은 덕을 마음에 두지 않음으로 덕을 간직한다-는 화두를 지난 밤 내내 뒤척이며 안고 잔 탓인지 머리가 복잡합니다.

오랜만에 고전을 탐해보리라는 생각에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노자>를 읽었더니 첫 머리부터 화두를 줍니다. 그 깊은 문장의 뜻이 확 와 닿지 않으니 이럴 땐 산책하며 머리를 식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새벽에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고 보니 유월의 첫날입니다.

한 해의 절반을 열어 가는 첫 날의 새벽은 온 세상이 밤새 내린 이슬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자연의 풋풋한 기운을 몸에 모시고 나니 '그냥 천천히 살다보면 그 말의 진의를 알 터인데 좋은 책을 읽고 고민까지 할 건 무언가?'하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 가시엉겅퀴
ⓒ2004 김민수

아침이슬을 영롱하게 이고 있는 것들을 하나 둘 찾아봅니다. 해가 뜨면 이내 사라지고 말 것들이지만 그 순간을 참으로 아름답게 살아가는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차마 짧은 순간이니 창조주께서 아침이슬을 가장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 주시어 온갖 만물들에게 멋들어지게 치장을 하라고 선물로 주신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상상도 해 봅니다.

아름답지만 이른 새벽이나 아침 아주 잠시 눈으로 볼 수만 있고, 만지기라도 할라치면 후드득 떨어져 버리는 이슬은 그 짧은 순간을 참 아름답게도 살아가는 구나 싶습니다.

▲ 개망초
ⓒ2004 김민수

개망초.

어디서든지 쑥쑥 잘 자라는 개망초.

'개'자가 들어가서 슬픈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행복한 것은 자기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개망초와 눈맞춤을 한번도 안한 사람은 이 땅 어디에도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구와도 눈맞춤을 하지 못하고 깊은 산중에서 홀로 피고 지는 꽃들도 얼마나 많은데 이름이 조금 불경스럽다고 하더라도 눈맞춤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겠지요.

홀로 살아가지 않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지, 가족이 있다는 것도 간혹은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감사하게 됩니다.

▲ 인동초
ⓒ2004 김민수

인동초.

추운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인동초.

칼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다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만발하는 인동초는 고난의 의미를 잘 아는 꽃처럼 보입니다.

고난의 시간을 홀로 보낸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둘씩 짝을 지어 피어납니다. 서로 힘들 때 서로에게 힘이 되었겠지요.

우리에게 이웃이 있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짓밟고 경쟁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격려하며 살아가라는 의미겠지요.

ⓒ2004 김민수

ⓒ2004 김민수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씨.

분명 그 이름은 있을 터인데 아주 관심이 많지 않으면 잊혀지는 이름, 알 수 없는 이름.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무명씨로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무명씨라고 해도 유명씨와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가는데 어쩌면 유명씨들은 무명씨들을, 무명씨들은 유명씨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때도 있는 것이지요.

▲ 냉이
ⓒ2004 김민수

냉이.

꽃보다도 뿌리의 향이 더 그윽한 냉이.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냉이.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물량적인 사고 방식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서는 '더 좋은 삶(웰빙)'도 그저 겉모습을 가꾸는 것에만 있고 내면적인 웰빙은 부질없는 것, 아니면 낙오자들이 자위하는 것쯤으로 타락했습니다.

모든 일이 경제적인 이익이라는 물량적 사고방식 아니면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밀어 부쳐 집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 민들레씨앗
ⓒ2004 김민수

구덕초(九德草).

무려 아홉 가지 덕이나 갖추고 있는 민들레.

지천에 피어 밟히는 민들레.

그러나 항상 지천에 피어있는 민들레는 민중의 꽃.

그래요. 그렇게 살아야지요. 끈질기게 살아야지요. 절반의 시작 그렇게 살아야지요.

▲ 애기범부채의 이파리에 앉은 이슬
ⓒ2004 김민수

아침이슬.

짧은 순간을 참 아름답게 살아가는 이슬.

짧기에 더욱 찬란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슬.

짧아도 아름답고 길어도 아름다운 자연을 닮고 싶다는 소망이 온 몸에 가득 찹니다.

그래요. 남은 절반의 한 해가 짧든지 길든지 아름답게 살아야겠습니다. 어떤 날은 밤새 정성스레 풀잎에 앉고 싶었는데 마른 바람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아니면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더 큰 존재에 의해 어디론가 휩쓸려 갔을지도 모릅니다. 늘 그렇게 아름다운 아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만약 매일 아침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었다면 뭐 그리 대단했을라고요.

절반의 시작.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날은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날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하루라도 허투루 살지 않을 것입니다.

▲ 하늘을 담은 잔잔한 하도철새도래지
ⓒ2004 김민수

이제 완연한 아침입니다.

도시에서는 이제 곧 검은 포장도로나 땅 속 지하철에 이르기까지 막 러시아워가 시작되겠지요. 그들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삶의 현장으로 열심히 달려가는 모습 역시도 아름다운 모습이겠지요.

그 모든 사람들에게도 절반의 시작이 아름답기를 소망합니다.
6월의 첫 날 5시 30분경부터 30여분간 하도철새도래지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2004/06/01 오전 8:26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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