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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2시 전남 구례의 공공도서관 2층 강의실. 숨 고를 새 없이 달려 온 수강생들로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1주일에 두번씩 열리는 한글교실이다.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메고 온 낯선 이방인들. 손에 쥔 기저귀 가방까지…. 모두들 한 짐이다.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한글학교'가 시작된 건 지난해 10월부터다. 한글학교의 선생님은 김성현(60) 여사. 젊은 시절 초등학교에서 13년여 교편을 잡았다. 도서관 주부독서회를 이끌고 있던 그녀에게 한글학교를 맡아달라는 제의가 있었던 것이다. 애초 취지는 미처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시골의 노년층이 시간도 보내고 글이라도 읽히자는 것이었다. 시작은 그랬다.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다. 낯선 눈의 이방인들이 점차 할머니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 한국으로 시집 온 필리핀 새댁들이었다. 한국 농촌에 시집온 필리핀 여성들 한글학교가 문을 열자 생각지 않게 4명의 외국인 여성들이 찾아들었다. 농촌 총각과 결혼한 여성들이다. 대부분 통일교 재단 주선으로 한국 땅을 밟게 됐다고 한다. 국제결혼 전문회사를 통하는 것보다는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이 주위의 설명이다. 이 가운데 일본, 러시아 여성과 함께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이디타(34)씨가 있었다. 이디타씨가 한글학교를 찾은 건 순전히 언어 소통 때문이다. 김 선생님의 말이다. "이디타가 며칠 나오지 않기에 전화를 했더니 마침 시어머님이 받으셨습니다. '공부하러 다닌 줄 전혀 몰랐다'며 반색을 하시더군요. '농사일은 내가 하더라도 며느리는 꼭 보내겠다'고 말입니다. 시어머님도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 뒤 시어머님이 직접 데리고 오셨더군요."
이중 읍내에 거주하는 3명을 제외하곤 모두 원거리 면 단위에서 온 아낙들이다. 연곡사, 산동, 토지 뿐 아니라 멀리는 순천 괴목, 경남 하동과 마주하고 있는 광양 다압에서까지 마다 않고 달려온 것이다. 산간시골에 교통편이 좋을 리 만무하다. 갈리까나(44)씨의 경우 2시간의 강의를 위해 아이들의 손을 끌고 3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와야 하는 길이다. 시어머니 "며느리 나이가 몇인지 물어봐달라" 한국말을 모른다는 것이 실생활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이디타의 시어머님을 통해 알 수 있다. 한번은 며느리를 대동하고 나선 시어머님이 며느리의 나이가 정확히 몇인지,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는지, 가족은 몇이나 되는지를 물어봐달라더라는 것. 선생님을 통해 처음으로 그 내력을 전해 듣게 된 시어머님이 그때서야 "이제 속이 후련하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할머니들을 위한 자리였던 한글학교는 차츰 필리핀 아낙들의 차지가 됐다. 이렇게 되자 할머니들이 대안을 냈다. '우리는 말이라도 하지 않느냐'고, '안 배워도 좋으니까 이 젊은 새댁들이라도 배우도록 하자'며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상황이 뒤바뀐 것이다. 오랜 교편생활이었지만 김 선생님은 오늘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학생이 열다섯 명이면 엄마를 따라나선 아이들도 열다섯은 되기 때문이다. 일 손 하나도 아쉬운 영농 철이라 아이를 맡길데가 있을리 만무하다. 당연히 강의실이 조용할 리 없다. 버지(25)씨의 11개월 된 아들은 어느새 탁자 위에 곤히 잠들었고, 리사(33)의 두 아들은 줄곧 엄마 옆에 앉아 저도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있다. 다른 아이들은 아예 날을 만났다. 강의실 뒤편에서 놀도록 자리를 깔아 장난감까지 쥐어 줬지만, 싸우고 우는 아이, 뛰어다니는 아이, 똥 싼 아이… 가지각색이다.
김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한 수강생은 숙제를 내줬더니 하룻밤새 책 한 권을 다 해와버렸다고 한다. 새벽 4시까지 했다는 것이다. 지난주부터는 쪽지시험도 치르고 있다고 한다. 광양 다압에서 딸 둘을 데리고 두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오는 에덴도세(31)씨. 한국에 온지 6년차이지만 아직 고향에 가보지는 못했다. 남편은 마을 이장이란다. 멀리서 다니기에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대뜸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그녀는 대신 "한국말을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며 "우리 선생님이 제일 좋다"며 선생님 자랑을 늘어놓는다. "농촌에 장가 못 간 사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한국에 뿌리내리고 성공해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절이나 문화도 소개하고, 한글도 가르쳐주는 교육기관이 필요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2세 교육을 위해서도 절실한 문제입니다." 어느 덧 친정 어머니가 돼 버린 김 선생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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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12 오후 9:05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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