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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손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6. 1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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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투성이 아내가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포토에세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손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민수(dach) 기자   
ⓒ2004 김민수
오뉴월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요즘 제주는 씨감자를 캐느라 분주합니다. 이미 거둔 마늘과 보리를 말리는 데다 씨감자까지 캐니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입니다.

오뉴월 따가운 햇살에 살을 태우면 겨울까지 간다고 합니다. 시골생활을 하면서 얼굴이 많이 탔는데 첫 해에는 만나는 분들마다 얼굴이 너무 검다면서 혹시 간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 병원에 가 봐라 걱정을 하기에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검진결과는 참 깨끗한 간을 가졌다는 것이며 건강상태도 양호하다는 것입니다.

'거봐, 서울 그 공기 안 좋은 곳에서도 40년 동안 건강하게 지냈는데 이곳 청정지역에 와서 간에 문제가 생기면 이상한 거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외모가 이 곳 분들을 닮아 가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얼굴이 검다'고 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 속내를 모르는 제자가 결혼을 해서 제주로 신혼여행을 와서 한다는 소리가 "목사님, 서울에 계실 때는 얼굴도 하얗고 샤프했는데 이제 얼굴도 검고 완전히 시골아저씨를 보는 것 같네요" 합니다.

"야, 이건 얼굴이 검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때깔 좋다고 하는 거다."

지난 여름에 절친한 선배 목사님이 제주를 방문하셨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인사말 끝에 대부분 '얼굴이 많이 탔다'고 하니 그 선배도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야, 김 목사 때깔 좋네!"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왜 그리 다르게 들리는지 그 이후 만나는 분들이 '얼굴이 많이 탔다'고 하면 '때깔 좋다'는 표현을 사용해 줄 것을 권했습니다.

시골생활 3년이 지난 지금은 동네 분들과 견주어 제 얼굴이 하얗지도 검지도 않습니다, 대동소이하죠. 그저 시골에 사는 사람의 때깔 정도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주체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손과 발입니다.

장갑을 끼고 일을 하면 답답하고, 밭에서 일하다 보면 흙이 신발로 들어가 발에 흙때가 끼고 손톱 밑에는 풀때까지 낍니다. 그런데 이게 비누칠을 해도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한참을 공들여 수세미로 박박 밀어야 하는데 일끝이라 힘이 없기도 하고, 손을 씻고 발을 씻는데 그리 많은 공을 들일 필요가 있나해서 위생상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면 만족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날 잡아서 바다에 나가 조개를 캐다보면 흙때가 쫙 빠져 버립니다.

그런데 그 날은 밖에 나가서 일할 시간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 내로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었기에 종일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할 상황인데 아내가 아침부터 전화를 여기저기 하더니만 작업복으로 갈아입습니다.

"이 뜨거운데 그냥 집에서 책이나 보지 뭐 하려구?"
"응, 박 권사님이 감자를 캐신다는데 일손이 부족한가봐."
"큰일이네. 나는 일이 밀려서 못 가는데."
"오늘은 여자들끼리 할 테니 집에서 일 봐."

그렇게 아내가 나가고 나는 나대로 내 일을 하는데 도무지 감자밭이 어른거려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내가 가야할 밭 심방을 아내가 대타로 나간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나야 그렇다고 해도 밭일이라고는 해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남편 잘못 만나서 오뉴월 뙤약볕에 감자를 캐고 있는 것 같아서, 능력이 없는 남편을 만나 이 고생을 하누 생각이나서, 한편으로는 부아가 나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돌아왔습니다. 얼굴이며 발이며 손이며 온통 흙투성이입니다.미안함을 뒤로 하고 보일러 물을 틀고 어서 씻으라고 하니 아직 할 일이 있다네요.

아내는 텃밭에 심은 아욱과 근대를 솎아서 주일날 교인들 점심식사 시간에 아욱국과 근대무침을 내놓아야겠다고 합니다. 함께 텃밭에 나가 교인들과 먹을 만큼 아욱과 근대를 솎았습니다.

"힘들지?"
"아니, 재미있어."
"농촌목회 그만 두고 서울로 갈까?"
"웃기지마. 서울에 가는 순간이 지옥으로 가는 순간이라며?"
"식구들 위해 지옥인들 못 갈라구. 나는 55세에 은퇴할 거니까 앞으로 12년 남았어. 그 12년 지옥에서 못살까? 55세까지 서울에서 목회하고 다시 농어촌교회로 와서 남은 여생 봉사를 하지 뭐."
"됐어. 지금 행복해 하는 거 알아. 지금처럼 행복하게 목회생활 한 적 있어?"


그랬습니다. 목사안수를 받고 기관에서 6년, 부교역자로 3년 동안 교회를 섬기면서 행복했던 순간이 더 많았지만 늘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언젠가 서울을 떠날 거야'를 노래하듯 했습니다. 그런데 흙투성이 아내를 보니 서울이 다시 생각나는 것입니다. 서울에 가면 이 곳 제주를 얼마나 그리워하려고.

저녁을 먹고 창문을 여니 어둠 속에서도 지미봉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방충망 사이로 시원한 산들바람이 쏴 들어오며 책상 위에 놓여있던 책을 '휘리릭!' 넘깁니다. 서울은 벌써 열대야 현상이 있는 모양인데 이 곳은 조석으로 쌀쌀해 여름에도 가끔 보일러를 돌려야 합니다. 어린 시절 저녁에 불던 그 바람의 맛이 그대로 방안으로 몰아쳐오니 책상에 앉아 책 읽을 맛이 절로 납니다.

책을 읽으며 조금 흔들렸던 마음을 다시 가다듬습니다. 아내의 손에도 내 손에도 흙때인지 풀때인지 모를 검은 때들이 꾸덕살이 박힌 손가락의 옆부분에 지문을 타고 남아있습니다. 곤하게 잠든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아봅니다.

'미안해. 그래도 오늘 흙투성이 당신 모습이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보다도 더 예뻤다구.'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2004/06/14 오전 5:49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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