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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텁지근한 기온 탓에 몸도 마음도 지쳤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방울이 금방 맺힙니다. 따가운 햇볕을 피해 오후 늦게 오른 버스 안의 사람들 옷차림도 이제 완연한 여름이었습니다. 모처럼 야외 나들이 기분을 느끼며 고향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 줄 요량으로 연락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모내기를 마치고 나면 으레 잡일이 많은 게 농사일이라 제대로 챙겨 드시지도 않고 거의 논에서 살다시피 하실 어머니가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시장에 들러 찬거리를 샀습니다.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잡채거리도 사고 시원한 미역국 끓일 준비도 했습니다. 역시나 집에는 누렁이소가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저녁 준비를 하고 몇 가지 반찬을 준비했습니다. 잇몸이 많이 부었는지 도무지 먹지 못하겠다는 어머니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신경이 쓰였습니다. 해가 어둑해지자 대문으로 어머니가 들어오십니다. 야윈 모습에 지친 표정입니다. 몹시 시장하셨는지 어머니는 빵과 우유를 드시고 난 후에야 한숨을 돌립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니 어째 이리 할 일이 태산 같은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하십니다. 소 여물 주고, 몸 씻고 들어온다며 다시 마당으로 나간 어머니가 여기저기 집안을 치우시는 동안 저는 밥상을 차렸습니다. 잡채도 담고, 따끈한 밥에다 시원한 조개 미역국을 올려 놓고 수저도 놓았습니다. 그다지 많은 반찬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몇 가지 해 놓고 보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어머니는 잡채 한 접시에 미역국 한 그릇을 다 비우시고 디저트로 또 빵을 드셨습니다. 갑자기 한꺼번에 많이 드시면 소화가 안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다행히 아무 탈은 없었지만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않고 논에서 살다시피 했던 생활이 안 봐도 눈에 선했습니다. 그렇다고 농사일을 그만두실 어머니도 아니고, 농사를 줄일 생각도 전혀 없으시니 자식된 도리로 이렇다 할 입장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저녁상을 물리고 어머니와 남편, 딸아이 그리고 저 이렇게 TV 앞에 모여 앉았습니다. 주말 드라마를 보시던 어머니가 한마디 하셨습니다. “순희야, 낼 새벽에 논에 물 대러 갈끼다.” “그걸 꼭 새벽에 해야 하는교?” “눈 뜨면 새벽인데 달리 할 일도 없으까네 갔다 오꾸마.” “나는 깨우지 마소.” “알았데이. 오면서 정구지(부추) 베가 올라카는데 뭐 해 묵을까?” “정구지? 요새는 정구지 내다 안 파는교?.” “요새는 워낙에 촌할매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다 가지고 올까네 안 팔리더라.” “아, 정구지 얘기만 나오면 내사 옛날 일이 자꾸 생각이 난다 아이가?” “무신 일인데?” “엄만 생각 안 나나? 정구지 팔아 튜브 사줬던 것 말이다.” “그걸 아직까정 기억하나? 내사 잘 모르겠다.” “그것 말고도 많다 아이가, 큰오빠야 등록금도 내고 고기도 사 묵고….” 새벽녘에 논에 물대러 가면서 정구지를 베어 오겠다던 어머니의 말에 문득 예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버린 그때의 일이 저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골에선 여름방학이 되면 친구들과 냇가에 나가 멱을 감던 것이 유일한 놀이였습니다. 요즘처럼 실내의 수영장에서 수영복 입고 수영을 하는 게 아니라 달랑 팬티 하나만 입고 했습니다. 수영을 잘하는 친구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저 같이 수영을 못하는 아이들은 그늘에 앉아 친구들의 옷들을 챙겨 주거나 돌집을 쌓아 소꿉놀이를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친구가 낡은 타이어 하나를 구해 오면 그날은 운 좋게 멱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논둑길과 마을 앞 제방 둑을 걸어오다가 멱 감을 좋은 장소를 찜해 두었다 가방만 놓고 그대로 옷 입은 채로 멱을 감았습니다. 물이 그다지 깊지 않아 수영을 전혀 못하는 저 같은 경우도 간단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한때였습니다. 특히나 여름방학이면 오전보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약속이나 한 듯 몇몇이 모여 냇가로 나가 더위를 식히던 그때. 참 재미있고 즐거운 여름나기였지요. 비록 수영을 못해서 친구들 노는 걸 바라볼 때가 더 많았지만 그것 역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불볕 더위에 조금만 움직이기라도 하면 땀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무더운 오후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어머니와 저는 대문 앞 감나무 아래 큰 돌멩이 위에 앉아 노래도 부르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가끔 얘기 나누는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의 이런저런 얘길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못 보던 튜브를 하나 들고 지나갔습니다. 그 옆엔 다른 친구가 무어라 말을 건네며 따라 가고 있었지요. 어디를 가냐고 하니 멱 감으러 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같이 가자는 얘긴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그 친구들이 멀리 사라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마디 하셨습니다. 친구가 들고 가는 둥그런 튜브가 있으면 수영을 잘할 수 있냐고 말입니다. 저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겐 튜브가 있으면 낫지 않겠냐고 퉁명스럽게 내뱉었습니다. 까만 타이어라고 해도 어떻게라도 구할 수 있고, 빌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았던 그때, 그 튜브의 등장은 참으로 희귀한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좀 잘 사는 집 친구, 그 친구 역시 수영을 잘 하지 못하지만 그 튜브 하나로 인해 다른 몇몇 친구들이 늘 가까이에 머물렀습니다. 며칠 지나고, 해질 무렵 저녁을 준비하시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엌에선 작은언니가 가마솥에다 불을 지폈고, 전 방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벌써 어둑해진 저녁이었지만 어머니는 한참 뒤에야 무언가가 가득 담긴 보따리 하나를 머리에 이고 대문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어디 갔다 왔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고 왔지 어디 갔겠냐고 대답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어머니는 평상에다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와르르 쏟아지는 건 다름 아닌 정구지였습니다. 마른 짚을 추려 끈으로 펼쳐 놓고 그 위에다 정구지를 잘 골라 다듬어 얹어 놓았습니다. 적당히 묶은 정구지가 보따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 많은 걸 무엇에 쓰려고 그러느냐고 묻는 저에게 어머니는 내일 읍내에 내다 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날도 아닌데 어디서 어떻게 파느냐고 재차 물으니 몰라도 된다며 더 이상의 대답은 하지 않으셨지요. 다음날 새벽녘, 어머니는 이른 아침 준비를 해 놓고 보따리를 이고 대문을 나가셨습니다. 장도 아닌 날 그것도 시골에서 정구지를 내다 팔기란 쉬운 일이 아닐진대 어머니는 도대체 어떻게 하실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마을 앞 사거리에 나가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직접 키우신 채소들을 장에 내다 파셨고, 장터에 앉아 다 팔 때까지 기다리시기도 하셨지만 헐값에 팔아버리고 오실 때도 많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오실 시간이 이미 지났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의 모습은 동네 어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더 기다렸을까, 빨갛게 그을린 얼굴의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저의 모습을 보셨는지 저의 이름을 부르시며 웃으셨습니다. 어머니 손에 쥐어진 것은 다름 아닌 노란색 물방울 무늬가 몇 개 그려진 튜브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튜브를 저의 목에 걸어주셨습니다. “이자, 아아들하고 목 감으러 가라 알았나?” “엄마, 이건 말라꼬 사왔노? 이거 살라꼬 정구지 가지고 갔더나?” “그라믄 우짜겠노, 그기라도 팔아 어거 사믄 됐다 아이가?” “근데 와 이래 늦었더노?” “응, 장날처럼 한사람한테 넘기뿔라 카는데 사람들이 너무 싸게 살라꼬 안카나.” “그라믄 그냥 넘기뿌제?” “그래가꼬 우째 이거 사겠노 싶더라.” “그라믄?” “아는 식당 다 돌아다녔다 아이가, 사촌아지매가 하는 ○○식당부터 해서….” 어머니는 정구지 보따리를 이고 다니며 일일이 식당에 들러 팔았다고 했습니다. 얼마할지 모를 튜브를 사기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받아보겠다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늘 일 안한다고 큰소리로 야단치는 무서운(?) 어머니였는데 막내딸이 친구들과 멱 감으러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정구지를 이고 내다 팔아 튜브를 장만해 오신 것입니다. 저는 그 튜브를 가지고 남은 여름 방학 동안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함께 신나게 멱을 감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 튜브를 고이 접어 서랍에 두고 간직했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저의 튜브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하던 튜브를 큰 조카에게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모의 아주 특별한 추억을 얘기해 가며 다짐하고 다짐받아 가며 조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잊어버리면 그냥 안 두겠다는 협박(?)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어머니가 새벽에 베어 오신 정구지를 깨끗이 씻어 풋고추 썰어 넣고 부침개를 하셨습니다. 남편과 딸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전 어머니를 쳐다보았습니다. 어머니 역시 정구지 얘기에 새삼스러운지 웃으셨습니다. 어머니, 그 정구지가 그때 어린 저를 얼마나 감동시켰는지 모르지요? 정구지를 팔아 튜브를 사 오신 어머니의 마음 역시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 ||||||||||||
2004/06/16 오후 3:18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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