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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에 갈등은 없다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6. 2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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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에 갈등은 없다
(시와 함께 살다 18) 등나무 덩굴손에게 배우는 사랑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정철용(ccypoet) 기자   
등나무 덩굴손

등꽃 지고 잎들이 무성해지자 잊혀진 기억들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등나무의 덩굴손들이 여기저기서 뻗어 나온다. 몇몇은 나무 담장을 타고 옆으로 기어가고 밑동 부근에서 나온 것들은 그늘진 땅을 낮은 포복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운이 나쁜 몇몇은 허공을 안타깝게 더듬고 있지만 지나가는 바람만 잠시 멈추어 몸을 흔들어 줄 뿐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다.

담장을 타고 기어가는 덩굴손들과 밑동 부근에서 뻗어 나온 덩굴손들은 의지할 기억들이 저리도 선명하니 살려두기로 한다. 하지만 허공에 빈손을 흔들고 있는 저 덩굴손들이 붙잡으려는 기억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니…… 그래, 잊혀진 기억들은 더 자라기 전에 잘라내야지.

그리고 며칠 지나 전지 가위를 들고 등나무 앞에 섰을 때 나는 보았다. 허공 속에서 서로의 몸을 감아 오르고 있는 덩굴손들을. 서로의 온 몸을 부둥켜안으며 허공 속으로 자신의 길을 내고 있는 덩굴손들의 집요한 사랑을. 기억 속에서 잊혀진 것처럼 보여도 사랑은 여기 이렇게 있었구나.

등나무 덩굴손들이 새로 낸 길로 서로 부축하며 걸어오는 오래된 사랑이 눈부셨다.

(정철용 시 ‘등나무 덩굴손’ 전문)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옮기기 전 살던 집에는 제법 줄기가 굵은 등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등나무는 마당 한가운데가 아니라 나무 담장 옆에 심어져 있어서 나무 담장을 타고 이리 구불 저리 구불 가지를 내어 자라고 있었다.

겨울 동안 잎 하나 없이 나무 담장에 기대어 구불구불, 서로 어지럽게 얽힌 채 기어가고 있는 헐벗고 계통 없는 등나무 줄기를 바라보는 것은 참혹한 일이었다. 뉴질랜드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는 겨울 등나무의 비틀리고 메마른 줄기들에서 아마도 의지할 데 없는 자신의 처지를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른 봄에 아이의 손가락만한 크기로 잡히기 시작한 꽃망울들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 포도송이처럼 연보라색 등꽃을 주렁주렁 피워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몹시도 큰 기쁨이었다.

ⓒ2004 정철용
비가 많이 내리는 이곳의 겨울에 익숙치 않아서 겨우내 추워하던 아내는 알알이 포도송이처럼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등꽃을 보고서야 내복을 벗었다. 등꽃은 연보라색 빛깔로 추운 겨울이 다 지나갔음을 알려 주었고 그윽한 향기로 과일들이 익는 여름이 우리 앞에 있음을 예고해 주었다. 낯선 타국에서 우리가 느끼고 있던 외로움과 쓸쓸함을 등꽃은 위로해 주곤 했다.

봄날은 짧아서 그 향기에 취해 서성거리고 있는 동안 봄은 훌쩍 가버리고 등꽃도 누렇게 시들어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등꽃이 져도 나는 서운하지 않았다. 등꽃이 지고 난 그 빈자리를 싱싱한 초록의 등나무 잎사귀들이 채워 주었고, 무성한 등나무 잎사귀들이 마련해 준 그늘에 앉아 책을 읽곤 했다. 한참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눈으로만 읽어 나가는 것이 심심했던지 매미들이 나를 대신해서 목청을 돋우어 그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집 등나무가 기쁨과 즐거움만을 준 것은 아니었다. 여름이 깊어지면서 서로 어지럽게 얽힌 등나무 줄기의 여기저기서 무섭게 뻗어 나오는 덩굴손들은 골칫거리였다. 덩굴손들이 나무 담장이 닿아 있는 벽을 타고 지붕까지 기어오르고 주변의 나무들까지 넘보니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세상살이에서 우리가 겪는 크고 작은 다툼을 이르는 말인 ‘갈등’이 칡(葛)과 등나무(藤)에서 온 연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등나무의 덩굴손들은 주변에 기댈 것이 있으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집요하게 그것을 칭칭 감거나 타고 올라갔다.

나무 담장을 벗어나지 않는 순종형 덩굴손과 그늘진 땅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 다니는 은신형 덩굴손도 있었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나무의 가지를 칭칭 감아 타고 올라가거나 지붕의 기와 틈새까지도 파고드는 무법자형 덩굴손들도 제법 있었다. 그 어느 것이나 등나무의 덩굴손은 생존의 경쟁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살고자 하는 등나무의 욕망을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나는 순종형 덩굴손들과 은신형 덩굴손들은 그냥 놔두었다. 하지만 갈등이 깊어져서 폭력을 행사할 지경에 이른 무법자형 덩굴손들은 가차 없이 전지가위로 잘라냈다.

ⓒ2004 정철용
그렇게 등나무 덩굴손들을 잘라내다가, 나는 의지할 데 없이 허공으로 뻗은 등나무 덩굴손들이 서로의 몸을 감아 오르며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은 참으로 눈물겨운 데가 있었다. 그 덩굴손들에는 갈등이 없었던 것이다!

그 덩굴손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아내에게 생각이 미쳤다. 당시 나는 뉴질랜드로 이민 와서 거의 하루 종일 아내와 함께 생활하게 됐다. 그랬더니 그 동안 보이지 않던 아내의 결점들도 눈에 띄고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아내와 마음이 안 맞아 짜증을 자주 부리곤 했다. 그러나 아내는 언제나 변치 않는 사랑의 마음으로 내 눈치를 살피면서 짜증을 받아 주고 있었다.

그런 아내에게 나는 진정으로 의지할 몸이 되어 주고 있는가? 이제 함께 있는 시간이 지겹다고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서로의 몸을 감아 오르며 허공으로 길을 내고 있는 그 덩굴손들을 바라보면서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당당할 수가 없었다. 등나무의 덩굴손에서 ‘갈등’만을 읽어낸 뭇 세상 사람들처럼 나도 그 동안 아내를 한낱 내가 감아 타고 올라갈 나뭇가지 정도로만 생각했구나. 그래서 그 본 마음을 보지 못하고 아내의 작은 결점들만 보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부렸구나.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하며 부끄러웠다.

그러나 부끄러움이 컸던 만큼 아내를 보는 나의 눈은 그 때부터 달라졌다. 나는 오래 잊고 있던 우리의 옛사랑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낯선 이국 뉴질랜드에서의 우리의 새로운 삶은 그 오래된 사랑의 힘으로 서로를 부축해서 함께 걸어 나가야만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여름이 성큼 다가와서 하늘은 맑고, 그 맑은 하늘 한가운데로 등나무 덩굴손들이 길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그 길을, 아내와 나는 지금도 함께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서로의 몸을 부축하며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함께 걷고 있다.

2004/06/17 오후 6:48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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