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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깊은 향기를 담고 있는 사람들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6. 2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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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깊은 향기를 담고 있는 사람들
<포토에세이>삶의 터전에서 일하는 사람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민수(dach) 기자   
ⓒ2004 김민수
땀흘려 일하고 있는 손길을 보는 순간마다 교차하는 감정이 있다. 하나는 참 아름답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저렇게 열심히 일해도 마음껏 허리피고 쉴 날 없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그것이다. 그들은 해가 뜨면 더 쉬고 싶을 욱신거리는 육신을 뒤로하고 밭으로 나가서 일하는 재미에 빠져 찬밥에 물 훌훌 말아 김치쪼가리로 허기를 채우며 육신이 골아 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땀을 흘린다.

그런데 왜 그들만 보면 이렇게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일까?
'나 혼자 잘 살면 어때?'하는 욕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다가도 이들을 만나면 그 욕심스러운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비록 요령있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지라도, 상품화된 웰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갈지라도 삶의 깊은 향기를 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리라.

ⓒ2004 김민수
요 바당에, 요 물에 들언(여기 바다에, 여기 물에 들어가서)
좀복, 구젱기, 고득하게 잡아당(전복, 소라, 가득하게 잡아다)
혼 푼, 두 푼, 모이단 보난(한 푼, 두 푼, 모이다 보니까)
서방님 술깝에 논딱 들어 감쩌(남편의 술값에 모조리 들어 가더라)
-남편을 원망하는 해녀의 노래

제주여성은 독립심이 강하다.
그저 강해진 것이 아니라 척박한 제주의 자연환경과 역사가 그들을 그렇게 단련시켰다. 남성들은 남성들 대로 자책을 하며 무엇을 해보려해도 어찌 할 수 없는 어떤 장애물들에 좌절했을 것이다. 좌절에 대한 분풀이는 술로 이어지기도 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여성들이 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는 더욱 더 무거워졌을 것이다.

ⓒ2004 김민수
그러나 조금 먼바다.
여성들이 감당하기에 벅찬 일들은 남성들이 마다하지 않고 그 짐을 나눠진다. 땀흘려 일할 터전만 있으면 어디서인들 일을 하지 못할까?

해돋이가 시작될 무렵과 해질 무렵 두 차례씩 그물을 거두는 어부들의 노래가 파도를 타고 해안가로 자근자근 밀려온다. 구슬프게 느껴지기도 하고 삶의 어떤 경지에 다다른 듯도 한 가락에는 아주 먼 옛날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이리라.

바다가 밋밋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잔잔한 파도와 등대, 간혹 갈매기와 돌고래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태풍에 요동을 치기도 하지만 평온한 날 바다에 서면 그 언젠가 보았던 그 바다처럼 밋밋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바다가 밋밋한 것이 아니라 나의 속내가 밋밋하기 때문임을 이내 발견하게 된다.

농어촌.
농촌과 어촌의 두 경계를 어우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곳에 있다.
바다와 밭을 오가며 땀을 흘려도 늘 농사짓는 일도 고기를 잡는 일도 도박을 하는 것만 같다고 한다. 풍족하지 않아도 좋으니 뼈빠지게 일하고 빚더미에 앉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을 한다.

"과랑 과랑혼 벳디 하영 일해도 안되쿠다. 살당 보민 고생홀 때도 있곡, 어려웡 쓸어질 때도 있저."(쨍쨍한 볕에 마냥 일해도 소용없숩디다. 살다 보면 고생할 때도 있고 어려워 쓰러질 때도 있지요)

그냥 그렇게 자신들의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순박한 사람들, 약삭빠른 이들보다 그들을 보면 사람 사는 맛이 더 진하게 느껴지고 돌아설 때도 허망하지가 않다.

ⓒ2004 김민수
울릉도의 오징어에 비할 것은 못 되겠지만 제주의 바다에도 늘 오징어와 한치가 관광객들에게 손짓을 하며 걸려있다. 오징어를 하나하나 정성껏 너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은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미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의 모습이다.

저 오징어가 이렇게 줄에 달려 말려지기까지 익명의 손길들을 몇 번이나 거쳤을까? 농사를 짓는 일도 낱알 하나를 수확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손길이 가는 것처럼 오징어가 잘 말리고 팔려 구워져 누군가 입에서 씹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연의 손길이 스쳤을까?

내가 지금 먹고 쓰고 내 몸에 걸치고 있는 모든 것들에도 그 익명의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이니 모든 익명의 사람들에게 감사해야겠다.

ⓒ2004 김민수
5월말이면 바닷가에서 채취해 온 우묵가사리를 말리는 작업으로 어촌계가 분주하다. 길마다 우묵가사리가 즐비하게 널려있다. 우묵을 만들기도 하고 젤리의 재료로도 사용된다는 우묵가사리.

한 여름에 시원한 물에 우묵을 썰어 넣고 갖은 양념을 하여 후루룩 마시면 온 몸이 짜릿하도록 시원한 우묵의 재료인 우묵가사리의 색이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것이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따가운 햇살에 말리면 검은 빛은 어디로 가고 마치 옥수수 수염처럼 노란빛 아니면 하얀빛을 내는 우묵가사리를 말리는 할망의 꽃무늬 옷까지도 촌스럽게 보이지 않고 잘 어울린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삶의 깊은 맛을 아는 이들처럼 느껴지고 삶의 깊은 맛을 알기에 그 삶의 향기도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2004/06/17 오후 3:44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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