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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같은 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류시화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7. 19.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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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풀꽃 같은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기쁩니다

 

지루한 장마가 물러났다고 합니다. 자연의 섭리가, 하늘의 뜻이 그렇게 호락호락할까마는 비 그치자 폭염으로 땅거죽이 절절 끓습니다. 계절을 지켜가며 시새워 피었던 풀꽃들 사위어 가고, 여름 한나절 신록들 더욱 싱그럽겠지요. 남보다 푸짐한 살을 덤으로 가진 저는 이제부터 팥죽 같은 땀을 쏟아내야 합니다. 여름나기가 징그럽다는 얘깁니다.

 

맘 편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강으로 산으로 바다로 피서 떠날 얘기로 야무집니다. 어제는 저희 할아버지 제삿날이었는데, 다들 그르데요. 작년에는 바다를 고집하더니 올해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계곡을 앞세웁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작년에 심하게 잃었던 본전 생각까지 끄집어내면서 고돌이 훌라 포커 몸보신까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저것도 따라하지 못하는 저는 어느 한편에도 끼여들지 못하고 책 읽기를 즐겨하는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풀꽃을 좋아하는 당신의 고운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언제나 당신과 만나면 빠지지 않는 양념이 서로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였었지요. 쓸데없는 말, 난데없는 이야기가 끼여들지 못하는 우리들의 대화는 그래서 진국처럼 싫증나지 않은가 봅니다. 집안 두루 누구와도 가슴에 와 닿는 얘기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는 무척 당신을 사랑하나 봅니다. 책 읽는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되었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과는 어떤 책을 나눠도, 그 어떠한 음악을 함께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단지 서로의 몸뚱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까만 밤을 총총하게 밝혀가며 책 읽는 넉넉함이 든든한 믿음의 끈으로 이어지나 봅니다. 요즘은 서른 나이만 해도 책과 담을 쌓고 바보상자에 붙들리거나 컴퓨터 게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아득바득 사는 것도 아닌데 매일처럼 시간이 빠듯해서 불만인데, 컴퓨터 고돌이에, 라니지 게임에 몰입해서 실제로 자기가 해야할 일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정신적으로 숭고한 사랑을 일궈 낸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善)한 마음을 가다듬고, 정녕 자기가 하고싶은 일에 흠뻑 묻어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즐겁습니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사랑을 아름답습니다. 당신과 나는, 불혹의 나이를 훌쩍 지나 그런 좋은 만남을 일궜습니다. 서로의 발전을 위해 다독여 챙겨주고, 때론 불같이 뜨거운 열정으로 질책할 수 있기에 '사랑한다'는 감사함이 더욱 진하게 여며집니다. 그 사랑 때문에 매사 외고집스럽게 흐트러지는 세속에서 자신을 감춰왔던 나는 당신에게만은 빗장을 확 열어제꼈습니다. 당신은 그러한 내 마음을 알지요.

 

아둔한 얘기 같지만 참배나무에 참배 열리고, 돌배나무에 돌배 열립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사람다운 삶을 영유하고 싶고, 내 마음을 다 주어도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당신이 내겐 소중할 따름입니다. 날마다 불같은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것도 모두 당신의 느긋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런 당신을 만나게 되어 참 좋습니다. 책을 함께 읽을 수 있어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참 좋은 인연 맑고 향기롭게 가꾸어 갑시다. 영원토록 그렇게.

 

월요일입니다. 더 큰사랑 참되게 밝히는 한 주일 일궈갑시다. 사랑하는 당신, 좋은 책 즐겨 읽으세요. 류시화 시인님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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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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