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자신의 삶을 갈무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욕심부리지 않아야겠습니다. 장독 소래기에 넣어 둔 물옥잠, 수령 등 여러 부평초(浮萍草) 무리에서 겨우 생이 가래만 살아났을 때 만족해야했습니다. 그런데도 사흘 전에 금붕어 세 마리를 들였는데 그 덩치에 소래기가 좁았던지 오늘 보니 그 중에 한 마리가 바깥으로 떨치고 나와 죽어있었습니다. 답답했겠지요. 아니면 어울림이 좋은 두 마리가 하나를 몰아세워 내쫓아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너른 수족관에서 몸 빛깔 좋은 놈들 애써 골라왔는데 같이 살 인연(因緣)이 아니었는가 봅니다.
또한 달포 전에 식물원에서 '푸미라'와 '트리안'을 모셔왔는데 정성이 부족했던지 둘 다 메말라 버렸습니다. 거실에 자리하고 있는 다른 넝쿨식물은 죽죽 뻗어 가는데, 이 놈들은 더운 날씨 탓인지 물을 너무 흠뻑 주었던 까닭인지 끝내 함께 살기를 마다했습니다. 그러나 잔손가지 않아도 너끈히 잘 자라주는 스킨 다비스 만은 싱그러운 이파리를 야무지게 달고 잘 뻗어갑니다. 식물 하나 키우는데도 이렇듯 손가는데 많은데 날마다 되풀이되는 집안 일을 도맡아하는 아내들의 입장(立場)에서 보면 화딱지 나는 일이 더 많을 겁니다. 특히 이번 방학에는 그 많은 연수(硏修) 한 과정도 응(應)하지 않는 까닭에 집안에 붙박이 하는 시간이 많아 그 고충(苦衷)을 압니다. 아무리 싱싱한 풀 나무도 연 사흘 손 놀렸더니 잡다(雜多)한 먼지가 켜켜이 앉았습니다. 시간 내어 거실에 놓여진 화초들 들여다보세요. 매한가질 겁니다.
태풍 '메기'가 곱게 비껴갔다는 소식 들으며 친구랑 초등학교 시절 추억이 남겨져 있는 낙동강을 거슬러 가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연례행사처럼 물난리를 겪었던 그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흐르던 강물이었건만 마치 황톳물을 풀어놓은 듯 온갖 부유물(浮遊物)을 떠 앉은 채 사납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도도(滔滔)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친구는 무섭다며 물러섰지만, 내 안에 켜켜이 쌓여있는 온갖 잡(雜)스런 생각들이 함께 흘러보낼 수 있어 오히려 시원했습니다. 상류의 안동댐이나 남강댐의 수량(水量) 내보내면 내일쯤은 예전에 보았던 사나운 강물 다시 보겠지요. 하지만 그 만한 빗줄기에도 강변 밭뙈기는 벌써 물 잠겨버려 봄여름 동안 애써 가꾼 푸성귀들 썩히고 난 농민들 얼마나 시름 클까 안타까웠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태풍 피해가 많을 겁니다. 순진한 농민들 암울(暗鬱)케 하는 일들 적었으면 좋겠습니다.
속 편한 이야기 같아 송구(悚懼)하나, 방학 시작해서 지금까지 교직 생활 20년 만에 처음으로 감사한 휴식(休息)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머잖아 개학하고 아이들 더 큰사랑으로 만나는 재충전(再充塡)의 기회가 될 겁니다. 그 동안 피치 못할 사정(事情)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나 해보고 싶었던 일들, 익히 알고 있는 음식점을 찾아 식도락(食道樂)을 즐겨볼 만한 여유(餘裕)를 갖지 못했는데, 정말이지 요즘 같으면 사는 맛이 절로 새롭습니다. 넉넉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와 함께여서 더욱 좋습니다. 더군다나 마흔 중반 나이에 예닐곱 아이들처럼 풋풋한 동심(童心)으로 돌아가 어줍잖게만 여겨졌던 세상이 아름답게 꾸려져서 감흥(感興)이 새롭습니다. 항상 마음 한편으로 억눌림하며 살았던 인내(忍耐)의 시간들을 마음 좋게 갈무리할 수 있어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제 마음 이해하시겠지요?
저 요즘 그렇게 삽니다.
이준호 시인의 시 '아름다운 약속'을 올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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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아름다운 약속
햇살이 눈부시다 한 적 있습니다.
보드라운 비단결처럼 빗어 내린
잔잔한 아침 햇살을
고요하다 말한 적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토록 찬란한 세상 한가운데
영원한 벗이 되어주자 한 적 있습니다.
서로의 가슴 깊은 곳에
꼭꼭 다져놓은 묵직한 바윗돌 같은
약속 하나를 담아놓고
스스럼없이 주절주절 내뱉어 놓은
심중 한가운데 언어가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겠노라
말한 적 있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다짐한 적 있습니다.
조심조심 항아리 깊게 묻어놓고
고이고이 간직해온 말,
세월이 지나 우리 서로 혹
조금은 소원해지는 날이 오거든
가만 가만 꺼내어 위안으로 삼을
그대와 나의 깊디깊은 언약이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겠다던
또 그만큼 나를 사랑하겠다던
시들지 않은 우리의 맹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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