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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 척하면, 어디 그게 사람 살 세상입니까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11. 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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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 척하면, 어디 그게 사람 살 세상입니까?"
지하철 시민들에게 '걸인'들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습니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이승철(seung812) 기자   
며칠 전, 종로에서 거리를 걷다가 건널목에서 잠깐 신호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때 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손에 껌과 사탕이 든 바구니를 들고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아니 판다기보다 애원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것 좀 팔아주세요, 네?"

그는 사람들의 눈 앞에 바짝 바구니를 들이밀며 애원했다. 간혹 한두 사람이 팔아주기도 했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외면했다. 묘한 옷차림을 한 그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이 모호했지만 목소리는 남성인 것 같았다. 나이는 짐작이 가지 않았고, 한쪽 눈은 실명한 것 같았으며 상당히 정도가 심해보이는 정신지체 장애인이었다.

▲ 60대의 시각 장애인이 찬송가를 울리며 통로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2004 이승철
4일 오후 입원 중인 친구의 문병을 가는 길에 7호선 지하철을 탔다.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시각 장애인이 등에는 배낭을 메고, 목에는 라디오를 걸었다. 라디오에서는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쪽 손에는 작은 바구니를 들었으며, 다른 손으로 지팡이를 쥐었다. 그는 아주 느린 속도로 더듬더듬 중앙 통로를 걸어갔다.

그 칸에는 대충 100여 명의 손님들이 타고 있었는데 동전이나 지폐를 바구니에 넣어주는 사람은 세 명 정도였다. 젊은 남녀 각 한 명과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허술한 옷차림의 아주머니였다.

문병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은 매우 한산했다. 앉는 좌석도 드문드문 비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무릎 위에 조그만 쪽지를 올려놓았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한쪽 팔이 없어 옷 팔소매 하나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 안을 돌며 사람들의 무릎 위에 쪽지를 쭈욱 돌린 후 다시 그것들을 걷어갔다.

▲ 어느 여성 장애인이 열차 안 손님들에게 돌린 호소문
ⓒ2004 이승철
다섯 명의 사람들이 그녀의 껌을 사주기도 하고 그냥 동전이나 지폐를 건네기도 하였다. 젊은 여성 두 명과 40대쯤으로 보이는 남성 그리고 어떤 할아버지와 나와 동행한 친구였다. 내가 껌 대신 쪽지를 달라며 1000원짜리 지폐를 건네자 의아해하면서도 기꺼이 승낙했다.

우리는 흔히 구걸하는 사람을 '거지'라고 부른다. 거지라는 말 속에는 불쌍하여 동정하는 마음과 함께 업신여기는 경멸의 뜻도 담겨져 있다. 구걸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남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이다.

세계 제일의 부자 나라 미국에도 걸인은 있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걸인이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걸인들이다. 또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구걸을 하기 때문인지 장애인들이 유난히 많다.

그런데 걸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도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걸인들에게 매우 동정적인가 하면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싫어한다. 거리와 지하철에서 몇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거지를 만날 때마다 꼭 줘야 하는 겁니까?"
"안 줄 수도 있지, 왜 이유가 있어야 합니까?"
"제 사람들 중에는 가짜도 많아요. 멀쩡한 녀석들이 일하기 싫으니까, 구걸이나 하고…."
"기분 나쁘게 이게 뭡니까? 단속을 해서 못 다니게 해야지, 외국인들 보기도 창피하고…."

돈을 주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말하기를 싫어하고, 우선 기분 나쁜 표정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반 강제적으로 강요당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며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한 40대 남성은 장애인이라고 다리를 끌며 구걸했던 사람이 어느 역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가는 것을 보았다고도 했다.

또 30대의 한 남성은 지하철 안에서 아주 슬픈 표정으로 갖가지 이유를 들어 구걸을 하던 사람을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당당한 신사의 모습이어서 알아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그를 다시 보게 되어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그는 걸인들에게 동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불쌍하잖아요?"
"오죽하면 구걸하겠어요?"
"몇 푼 안 되는 돈인데요, 뭘."

도와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들이다. 별 것도 아닌데 "뭘 쑥스럽게 물어보느냐"며 오히려 쑥스러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시민들이 돈을 주니까 걸인들이 없어지지 않아 차내 질서와 환경이 나빠지는 것 아니냐"고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러자 한 사람은 "그럴 수도 있겠지요"라고 수긍을 하였다. 그러나 곧 조금 전 지하철에서 장애인 아주머니에게 지폐 한 장을 건네준 그 40대의 남성이 한 마디 툭 던지는 것이었다.

"질서도 좋고, 환경도 좋지만 장애인이나 걸인들이 동정을 구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저절로 없어지는 세상이 된다면 그게 어디 사람 살 세상입니까? 지옥이지…."

"물론 걸인 중에 가짜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요. 설사 그런 사람이 조금 섞여 있더라도 긍휼지심을 갖고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사람 사는 세상이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때 마침 열차가 뚝섬유원지역에 도착하였고, 출입문이 열리자 말을 마친 그는 벌떡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질서?' '긍휼지심?'(불쌍하게 여기고 동정하는 마음)

그의 등 뒤에서 늦가을 서늘한 강바람이 열차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이승철 기자는 시인이며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 이승철 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에서 다른 글과 시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04/11/05 오후 3:12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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