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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또 농사 지으면 장을 지지리라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12. 1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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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내년에 또 농사 지으면 장을 지지리라
70년대에서 2004년 겨울 시작까지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규환(kgh17) 기자   
▲ 참새, 지붕에 내려 앉다
ⓒ2004 김규환
감골에도 올핸 감이 부족한가 보다. 글쎄, 어찌나 나주, 화순, 장흥에 비가 들이쳤던지 있던 감 다 떨어지고 곶감 깎을 거 하나 남겨 두지 않았다. 심술이 고만고만해야지 내 생일에 먹을 홍시 하나 없이 죄다 쓸고 갔어.

올해 감나무 참 볼품 없다. 앙상하기 이를 데 없다. 예년 같으면 까치 먹으라고 남겨 뒀던 감나무가 무척 밉다. 감전지가 짧아서 그 높은 곳까지 미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그네들에게 먹으라고 생각고 서너개 남겨 둔 것이었소만 홍시 쭉쭉 빨던 까치 즐거이 감나무에 어슬렁거렸을 테지만 온데 간데 업네. 아쉬운지고. 무심한 거다.

▲ 이엉-마름 엮을 시기. 맨 오른 쪽 지붕 갈래에 올리는 걸 용마름이라 한다.
ⓒ2004 김규환
곶감 하마 국물 질질 흘리고 굳어갈 참이지만 을씨년스런 초겨울에 붉은 빛 하나 구경하기 어렵네. 누가 빼 먹었을까 묻지 않아도 내가 하나 둘 축냈으리라는 건 아버지, 어머니가 더 잘 알았지. 하얀 꽃 피기 전 곶감 맛은 꽃에서 나온 꿀보다 달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그리움이다.

마을 집집마다 이엉 덮개 '우지뱅이' 씌워 항아리 지붕에 올렸지. 대봉이든 고종시든 파시 오려감이든 좋은 감 놔두고 똘감, 산감 따서 흰눈 펄펄 날릴 때까지 올려 놓으면 얼었다 녹고 다시 얼기를 반복해 설컹설컹하면서도 반은 감식초가 되어 궁금한 입을 달랬다. 사다리 서로 오르겠다 서로 다투었지. 몰래 꺼내 먹다 발 헛디뎌 절절 절고는 아무 일 없었다고 둘러대는 일 허다했단 말이야.

▲ 키 낮은 담장은 바람만 막아 줬을 뿐 사람들이 넘나들지 못하도록 하지는 않았다.
ⓒ2004 김규환
이 때쯤이면 웬만한 가을걷이 끝났겠지. 나 어릴 적엔 아직도 배불때기 아이마저 눈발 맞아가며 “윙윙윙” 탈곡기 밟았지. 볏단을 내려 생쥐 쫓아가며 알곡을 따서 마당에 가득 널어놓겠건만 시절이 하 수상하여 추곡 수매가 되었는지조차 모르겠다.

날마다 택배회사 배부르단 소리만 들리니 무슨 변고가 있는 겐가. 차고 넘쳐 내가 시킨 막걸리마저 내려 놓고 오도록 고향 친지 쌀가마 찧어 도회지로 보내느라 정신없을 고향 소식 이젠 듣기도 싫소.

▲ 짚 가마니-서생원이 참 좋아했다.
ⓒ2004 김규환
짬나면 장구밥이나 하나 입에 물고 떨떠름하면서 달큼함 맛을 보련만 이마저 힘겨운 건 무슨 까닭인가. 고욤이나 따 먹으려도 고향이 너무 멀고 내 지고 다니던 지게 하나 없어 한숨 절로 나오네.

한섬 두섬 열댓마지기 농사로는 효녀 심청 삼백석은 물거품이라. 귀동냥 해 봐도 서생원 양상군자 죄 동원해도 성에 차지 않으니 한숨만 풀풀 마른 하늘에 날리는 도다. 저들의 한숨 소리 “내년에 또 농사 짓는다면 장을 지지리라”던 농부는 작금 질펀하게 술로 허송하네.

▲ 쓸쓸한 석양
ⓒ2004 김규환
이엉이나 마람이나 마름이나 매한가지라. 용마름은 맨 위에 얹으니 나중에 삼으면 좋으리라. 집 따습도록 내복 입히는 그 모양 한갓지고 너그럽고 따스하다. 고향 산천 가가호호 아비는 놉 얻어서 지푸라기로 세월을 삼는다. 지어미는 농주 텁텁하게 걸러 술지게미 먼저 먹어 보고 엉덩이 방뎅이 궁둥이 한대참 쉬라고 김치 쪼가리에 “콸~콸~콸!” 시원하게 따르는 도다.

담장 높이 아장아장 걷던 아이도 폴짝폴짝 뛰면 이 집 사정 저네 살림살이 구경에 맛있는 향기가 보였다. 발그레 커가는 소녀 또래가 손이 부르트도록 흙 마당에서 공기놀이에 고무줄 넘고 또 넘는다.

▲ 나무라도 넉넉하면 군불 절절 끓게 지펴 등따습게 살았지.
ⓒ2004 김규환
후벼 파는 참새 떼, 굼벵이, 쥐며느리, 돈벌레 오날로 끝이지만 명일 아침부턴 이 나락, 찰벼 따먹소. 때까치 동네 한바퀴 돌아 “짹짹짹” 흥겨우니 동짓달 오후가 한가하다.

닭구새끼 좋으라고 굼벵이 생쥐 짚새기에 싸서 보내오니 맛나게나 잡수소서. 싸게 싸게 지붕 올려 집안을 밝게 입히세. 사내키가 새끼줄이냐, 용마람이 용마름이로세. 둥근 덩치 건장한 청년 뒤춤에 불끈 들어 올려 주니 윗사람 고되지 않아 좋을시구. 대막가지로 쭉쭉 훑어내고 도르르 굴려 아랫녘 나눠주고 몰랭이로 차고 오르니 엄동설한 찬바람에 까딱없겠구나.

▲ 예전엔 방에서도 숨을 쉬도록 봉창을 냈다.
ⓒ2004 김규환
서두르자. 아녀자 문종이 두 겹에 광목 한번 덧대니 문풍지 두겹이 무슨 소용인가. 달력 나눠 주는 의원 나리 없어도 좋은 세상. 물거리 나뭇짐 잘 말라 나무비늘 차곡차곡 정지에 들이고 뒷마당에 켜켜이 쌓아 두니 한두달은 등 따습고 배부르겄다.

팥 칼국수 달달하고 쫄깃하오? 감떡 달큰하매 호박말림 소에게나 나눠 먹이니 이집 인심 장안까지 퍼졌으라. 빵모자 눌러쓰고 벙어리 털장갑 낑낑대며 끼운 아이 냇가로 나가는 폼 뒤뚱뒤뚱. 뒤따라가도 한참 두대 참 새참이 이르고나. 아서라! 아즉 때가 아니로다.

▲ 덕석에 뱃대끈을 묶으면 이불 몇 채 얻는 것보다 따뜻하다 했다.
ⓒ2004 김규환
바야흐로 붕어빵장수 배 부를 적에 오뎅 국물 날개 돋친다 했거늘 싸늘한 세상 공기 을씨년스러워 내 마음 누더기 깁고 기워도 찬바람만 쌩쌩 분다. 차마 앙상한 자작나무 따라 헐벗지 못함은 사람들 눈 때문이면 그만이련만.

외양간 단장하고 덕석 손질해 황소에게 입히자. 굴뚝 청소에 아궁이 새로 황토 바르고 고랫재 퍼내기도 바쁜 시절이오.
김규환 기자는 2년 남짓 써왔던 고향이야기 몇 편을 묶어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고향의 맛을 찾는데 열심이고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내년 말에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계획이다.

2004/12/06 오전 8:07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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