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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이 좋습니다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9. 2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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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마음소식]제 눈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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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아주 많이' 나쁩니다. 30년 남짓 살아오면서 저보다 눈 나쁜 사람은 보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다행히 렌즈를 낄 수 있는 정도는 됩니다. 렌즈가 없었다면 뱅글뱅글 돌아가는 박사 안경 끼고 어지러운 사회생활 더 어지럽게 할 뻔했습니다.

 제 범상치 않은 시력은 다섯 살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두 살 터울인 언니와 책상에서 뛰어내리며 놀고 있었습니다. 한순간, 장난감 카메라의 날카로운 부분이 턱밑을 깊게 찔렀습니다. 방 안은 적지 않은 피로 물들었고 언니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습니다. 빨래를 하다 아이들의 정적에 놀라 뛰어나온 엄마는 맨발로 근처 병원에 달려가 커다란 바늘이 제 턱 밑에 꽂히는 걸 보고서야 정신을 잃으셨습니다.

 어린아이가 크게 다치면, 몸 중에서 약한 부분이 덩달아 약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제 경우엔 시력이 그랬던 듯해요. 그 뒤로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유치원 졸업사진에 등장한 유일무이한 잠자리 안경의 주인공은 접니다. 꽤나 무거웠던지 코 위에 비스듬히 걸쳐 놓고 앞을 쏘아보고 있는 새침한 여자아이.

 아직도 이런 꿈을 꿉니다. 교실 맨 뒷자리에서 칠판 글씨를 보려고 애쓰지만 도저히 뭐라고 적은 건지 알 수 없어 애태우는 꿈이요. 학창시절의 고된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나 봅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불편을 줄까 봐 앞자리로 옮겨 달라는 말도 못했습니다. 아니, 볼 수 있다는 자존심 때문에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는 쪽이 솔직하겠지요. 그럴 땐 앞뒤 문맥을 고려하거나 상상력을 발휘해 제멋대로 필기를 하곤 했습니다. 나름의 창의적인 수업 방식을 터득한 셈이지요. 

 이처럼 더할 나위 없이 나쁜 눈이지만, 전 제 눈이 좋습니다. 남들이 신체에서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 어디냐고 물으면 '눈'이라고 할 정도로 모양도 예쁘고요, 렌즈를 빼내면 세상이 온통 짙은 안개로 뒤덮이는 '외로운 황홀한' 체험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 안개 속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분들이나 더 심한 눈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의 심정을 남들보다 조금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가끔은 잠들기 전 자리에 누워서 식구들에게 여왕이 된 것마냥 명령을 내리기도 합니다. “나 안 보이니까 모기 좀 잡아 줘.” “나 잘 안 보이니까 물 한 잔만 떠다 줘.” 제가 눈 아니면 언제 이런 호강을 해 보겠습니까. 저는 말 그대로 '눈을 감는 날'까지, 제 눈을 좋아할 겁니다.


글 《좋은생각》 안재영 기자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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