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아파트 단지를 돌며 “달걀 세 판에 단돈 만 원, 만 원에 드립니다.”라는 말에 사람들이 달걀 장수의 트럭으로 우르르 모여들었습니다. 나 또한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가 보니 이미 많은 사람이 줄지어 달걀을 사고 있었지요. 알이 제법 굵고 싱싱해 보여 냉큼 세 판을 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노끈을 풀고 계란을 정리하려고 보니 맨 위에 있는 달걀 삼십 개만 온전히 있고 그 아래 두 판은 가장 자리만 계란이 있지 뭐예요. 한 판이 고스란히 빈 거지요! 저녁에 달걀찜을 하는데 곯아 버린 달걀도 많고, 냄새가 지독해 도저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달걀 장수 아저씨, 이거 정말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그러다가도 얼마나 먹고살기 힘들면 그러셨을까 싶어 한편으로는 서글픈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먹는 거 가지고 속이니까 쉽게 용서되지 않았습니다. 그 달걀 장수 아저씨는 다시는 우리 동네에 오시지 못하겠지요? 그분 또한 사람이기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실 거라 생각합니다. 달걀은 이미 버려졌지만, 후유증은 오래갈 것 같습니다.
나도 옷 가게를 운영합니다. 순간의 이익이 당장은 도움이 되는 거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손해라는 걸 왜 모를까요. 시간이 지나면 이 일도 기억 속에서 잊혀지겠지만 힘든 시기일수록 밝고 맑은 사회가 되어 갔으면 합니다. 이웃이나 친지 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