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공부는 다섯 가지였다. 박학(博學: 널리 배우기), 심문(審問: 자세히 묻기), 신사(愼思: 신중하게 생각하기), 명변(明辨: 밝게 변별하기), 독행(篤行: 독실하게 실행하기)이 그것이다. 오늘날 공부는 단 한 가지, 박학(널리 배우기) 뿐이다. 심문(자세히 묻기) 이하는 마음에 두지 않는다. 한(漢)나라 학자의 학설이면 그 주요 줄거리도 묻지 않고 그 귀착하는 바도 살피지 않고 오직 전심으로 신봉한다. 가까이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바로잡는 것은 생각지 않고, 멀리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것은 구하지 않는다. 오직 박문강기(博聞强記: 널리 듣고 잘 기억함)와 굉사호변(宏詞豪辨: 글 잘 짓고 말 잘함)을 자랑하며 세상을 고루하다 깔볼 뿐이다. - 五學論 二에서 -
다산은 당시의 훈고학(訓詁學)이 오로지 글자 뜻만 밝히는데 주력할 뿐, 옳고 그름을 변별하고 체득하여 실행하는 방법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학문이 도구화되고 식민지성을 띠는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공부란 글자 뜻이나 헤아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여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결국 공부란 자신을 다스리고 세상을 돕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산의 공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