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친구들을 격려한답시고 함께 모여 술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사시에 합격하면 아파트, 자가용 승용차, 법률사무소 등 열쇠 3개를 준비한 부잣집 아가씨들이 줄을 지어 따라온다더라”고 히죽거리기에 “젊은 놈이 벌써부터 물질을 밝혀서 어떻게 사회정의를 세우겠느냐?”고 핀잔을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시에 합격하여 판검사가 된 후 지금까지 옷을 벗지 않고 살아남아 검찰총장 물망에까지 올랐던 친구는 그 놈뿐이었다.
그 친구는 실제로 사시 합격 후 황금열쇠 3개를 가져온 부잣집 딸과 결혼했던 탓에 뇌물의 유혹에 덜 흔들려 깔끔하게 자기관리를 잘 했던 반면 자신의 출신이 빈한하여 약자 편에 서는 정의와 양심을 찾던 다른 친구들은 이런 저런 스캔들에 휘말려 중도 탈락하고 말았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됐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지만 그 용에게서는 개천의 구정물 냄새가 난다. 가난이라는 족쇄를 찬 채 부잣집 출신들과 불공정 경쟁을 하다보면 편법과 탈법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거니와 돈과 명예를 거머쥔 후에도 작은 이익에 유달리 집착하는가 하면 씀씀이 또한 짜기 이를 데 없다.
어릴 적 집안이 가난하여 여학교 앞에서 풀빵장수를 하기도 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수백억대의 재산을 모으고도 자녀를 위장 취업시켜 탈세를 했던 것도 샐러리맨의 신화를 다시 쓰면서 서울시장을 역임하는 등 출세를 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가난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지는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대통령 본인도 부인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명예의 유혹에 약하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가난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입을 앙다물었던 시인 서정주가 환갑 넘어 독재자 전두환을 찬양하는 시를 써주고 범세계 한국예술인회의 이사장 자리를 꿰찬 것도 개인적으로는 가난이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굳게 믿고 개의치 않았으나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까지도 남루하게 여기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 임명 동의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개천에서 난 용의 냄새를 너무 많이 풍겨 씁쓸하기 짝이 없다. 병역기피, 위장전입, 다운 계약서, 소득신고 축소, 세금탈루, 논문 중복게재, 사기업체 겸직 의혹 등등 ‘걸어 다니는 의혹덩어리’라는 손가락질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 그를 ‘청빈한 학자’로 여기고 지지했던 사람들의 실망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청문회에서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신 뒤 중3때까지 6년간 명절과 제삿날 외에 밥을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로 외국이 원조해주는 옥수수로 아침에는 옥수수떡, 저녁에는 옥수수 죽을 먹고 살았다”고 가난을 팔아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도 “그 때 그 시절에 당신 혼자만 그랬느냐? 그 보다 더한 가난 속에서도 양심과 순수를 지킨 사람들이 많았다”고 눈을 흘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물론 부잣집에서 태어났더라면 큰소리 뻥뻥치면서 병역을 면제받았을 것이고 돈 몇 푼 더 벌기 위해 세금을 탈루하는 치사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만 도덕률의 잣대를 거기다 맞출 수는 없는 바, 가난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허물에 대한 동정과 이해를 구한 행위는 청빈을 욕보였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난한 집안 출신에게 있어서 가난은 ‘원죄(原罪)’ 같은 것, 정운찬 총리가 그걸 어떻게 ‘속죄(贖罪)’하는지 예의 주시해보고자 한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정 교수도 서민출신이고 나도 서민출신인데 우리 함께 서민을 위한 일 좀 하자”는 말을 듣고 총리직 제의를 수락했다지만 이명박 대통령처럼 취임하자마자 ‘기업 프렌들리’나 외치면서 경제논리와 효율성만 따진다면 ‘더러운 개천 냄새 풍기는 용’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임을 엄중 경고한다.
출세를 위해 가난 팔아먹은 것은 눈감아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자신의 명예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절대 용서 못한다.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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