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외모단정이 채용조건이라면
박종국
그저께 대학을 졸업하고도 입사원서 한번 들이밀지 못했다는 여(女)제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제자는 초중고 시절은 물론, 대학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기에 커리어우먼으로서 당차게 일할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그 채용조건에 '외모단정'이라며 유독 '신장 165cm 이상'이라는 전제조건이 명시돼 있는 데가 많답니다. 업무 특성상 그런 조건 필요하다면 도리가 없겠지만, '외모단정'에다 '신장조건'까지 고집한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명색에 면접을 보러 가는 사람이 머리를 산발한 채, 상처투성이의 얼굴로 가지 않을 테고, 더구나 퀭한 눈에 입을 이죽거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외모단정'이라는 조건을 버젓이 내놓는 것을 보면 '단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꼬집어 얘기하면 '못생긴 사람은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외모지상주의로 회사를 경영하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제자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그는 커다란 걸림돌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의 '외모강박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여성운동가든, 그냥 좀 깬 정도의 여성이든 한번쯤은 고민해봤을 화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어느 때보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는데 어찌된 판국인지 여성들의 '몸'에 대한 '집착'은 날이 갈수록 지나칩니다. 그러니 헬스클럽이다 뭐다 해서 '몸만들기'에는 나이가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날씬하고 예쁜 여자를 원한다는데 어떡하겠습니까. 그러니 취업 나이에 든 여성들은 좀 더 예쁘고, 젊고, 날씬하고, 팽팽하게 유지할까 싶어 별의별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몸을 다듬고 날씬함에도 만족 못합니다. 급기야 만족스러울 때까지 깎고, 다듬고, 필요 없는 살을 잘라내고, 삽입물로 몸을 변형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페미니즘이 여태껏 이뤄놓은 여성의 지위향상과 역행하는 일들입니다. 남의 시선을 고려하는 지극히 수동적인 행위로 부끄러운 짓입니다.
자신의 모습에 결코 당당하지 못한 사람은 많은 날들을 힘겹게 살아야합니다. 배웠건 못 배웠건,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그저 '예쁜 게 최고'라는 인식은 우리에게 커다란 비극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여자라면 당연히 예뻐야 한다'는 말, '남자라면 누구라도 남자다워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그릇된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불식시켜야 합니다. 아무리 모든 평가의 기준이 외모로 통한다지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천박한 생각입니다.
물론 외모나 학벌, 가정배경을 따져가며 속물로 사는 것을 무조건 배척할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학벌이나 외모가 곧 사회적 능력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만으로 재단할 수 없습니다.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듯이 길거리에 인형같이 예쁘게 조각된 '인조인간'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외모의 아름다움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의 병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외모지상주의·외모차별주의 '루키즘(lookism)'에 편승하여 성형수술을 하거나 다이어트 열풍에 휩싸이는 사회풍조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예쁘고, 날씬하며, 풍만한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가 차별을 낳는 사회문화를 반대해야 합니다. 우리 딸들을 서구미인으로 만들게 하는 문화 식민지성을 반대해야 합니다. 유능한 젊은 여성들을 천박한 소비문화에 절게 함으로써 건강한 노동력을 잃게 하는 황폐함에 반대해야 합니다. 보다 더 예쁘게 만드느라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게 하는 싸구려 자본주의를 반대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왔더라도 외모가 받쳐주지 않으면 결혼 할 수 없고, 아무리 좋은 성적을 받았더라도 역시 외모 때문에 번번이 면접에서 탈락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바로 잡아야겠습니다. 제자 녀석도 이제는 그 무엇보다도 막대한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성형수술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여 자신의 외모를 뜯어고치려고 마음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이 그 사람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외모지상주의에 의해 조장되고 얼룩진 사회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겉이 아닌 속의 아름다움을 알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가 되어야합니다. 정신적으로 충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맹목적으로 좇는 사람들이 부끄러워 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외모지상주의로 얼룩지지 않으려면-.
천안지역 장애인종합정보지 <한빛소리> 제 166호, 2010년 4월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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