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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人之生也直(인지생야직)하니 罔之生也(망지생야)는 幸而免(행이면)

세상사는얘기/소요유소요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0. 5. 3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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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 교수와 함께 읽는 한문고전]


 

 논어Ⅱ


人之生也直 罔之生也 幸而免
정직하지 않으면서도 살아 있는 것은 요행일 따름이다

논어의 원문에는 眞(참 진)이란 글자가 없다. 공자는 참된 인간이 되라고 가르쳤는데 어째서 원문에 眞이 없을까, 의아해 할지 모른다.  



논어에서 인간의 참된 본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 글자는 무엇인가? 그것은 直(곧을 직)이다. 直은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설에 따르면 기원이 이러하다.


直은 省(살필 성)과   (숨을 은)으로 이루어져 있다. 省은 눈이 지닌 주술의 힘을 더 크게 하려고 눈썹에 칠을 한 모습이다. 후에 지역을 순찰해서 부정을 단속하는 일을 가리켰다.    은 담으로 둘러싸인 은신처를 뜻한다. 곧 直은 몰래 조사해서 부정을 바로잡는다는 뜻을 지녔다. 정직(正直)이라는 복합어로 주로 사용한다.


한편 眞의 꼭대기는 죽은 사람을 거꾸로 매단 모습인 化(될 화)와 같고, 아래의   (매달 현)은 머리를 거꾸로 걸어둔 형태다. 곧 眞은 예기치 못한 재난을 당하여 고꾸라져 죽은 사람을 말한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변화하지 않으므로 영원한 것, 참의 존재라는 뜻을 지니며, 거기서부터 진실(眞實)이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영원한 진실의 문제를 추구한 것이 장자다. 이에 비해 인간의 참 본성을 정직하다고 주장한 것이 논어다. 논어 옹야(雍也) 편에서 공자는 정직하지 못한 인간은 살아 있다 해도 참 존재가 아니며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人之生也直(인지생야직)하니 罔之生也(망지생야)는 幸而免(행이면)이니라.
사람의 생명 본질은 정직함이니, 정직함 없이 사는 것은 요행히 화를 면한 것일 뿐이다.
 

공자는 정직하지 않아도 멀쩡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나 정직이야말로 인간의 보편적 덕목이라고 믿었다. 위령공(衛靈公) 편에서 공자는 당대의 사람들은 그 옛날의 이상 시대에 올바른 도를 실천해서 형성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직한 심성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斯民也(사민야)는 三代之所以直道而行也(삼대지소이직도이행야)니라.
지금 이 사람들은 하, 은, 주 삼대 때 이래로 올바른 도를 실행하여 형성하여 왔다.
 


공자는 공야장(公冶長) 편에서 미생고(微生高)란 사람의 사례를 통해서는 정직의 본질에 대해 깊이 성찰했다. 미생고는 정직하다고 소문 난 사람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식초를 빌려달라고 하자 마침 식초가 집에 없어 식초를 이웃에서 빌려다 주었다. 이때 자기 집에 없으면 없다고 해야 했거늘 그러지 않았고, 이웃에 가서는 자기가 쓸 것이라 했다. 공자는 미생고가 자신의 양심을 굽히고 명예를 추구한 잘못, 미덕을 갈취하려고 은혜를 파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보았다. 정직은 어떠한 흠결도 있어서는 안되는 순수한 상태의 도덕관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논어를 주자학의 관점에서 해설한 주석들을 모은 논어집주대전(論語集註大全).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읽은 논어의 텍스트. 고려대학교 만송소장 목판본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보면 정직은 지극히 공적인 태도를 말한다. 헌문(憲問) 편에서 공자는 남이 내게 원한을 품고 있거늘 나의 편에서 은덕을 베푼다면 그것은 무언가 사사로운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以直報怨(이직보원)이요 以德報德(이덕보덕)이니라.
정직함으로 원망을 갚고 덕으로 덕을 갚아야 한다.  

곧 공자는 내게 원한을 품은 사람에게 정직의 태도로 대하라고 했다. 사랑하고 미워함, 취하고 버림을 지극히 공평하게 하는 것이 정직이라는 것이다.


또한 정치의 장에서 보면 정직은 올바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거는 일을 말한다. 위령공 편에서 공자는 사어(史魚)라는 인물에 대해 “나라에 도가 있을 때도 화살 같았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도 화살 같았도다”라고 칭송했다. 사어는 위(衛)나라 대부인데, 평소 어진 거백옥(?伯玉)은 등용하지 못하고 모자란 미자하(彌子瑕)는 물리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그래서 임종 때 빈소를 제대로 갖추지 말고 시신을 창문 아래에 두라고 유언했다. 위나라 군주가 조문을 왔다가 곡절을 알고서는 뉘우쳤다고 한다. 자기의 시신으로 군주에게 간언을 한 것이다. 사어는 신하로서 “군주를 속이지도 않고 군주의 안색을 범하면서까지 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정직함을 실천한 것이다.  


인간이 정직하게 살아나가는 데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둘 있다. 만일 법률상의 신의가 인륜의 도리와 충돌할 때는 인륜의 도리를 따라야 한다. 또 자기만 정직하다 여기지 말고 현실의 맥락을 두루 살피는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자로(子路) 편에 보면, 초(楚)나라 섭공(葉公)이 자기 고장에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증인으로 나선 정직한 아들이 있다고 자랑하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덮어주고 아들은 아버지의 죄를 덮어줄 것이니, 정직은 그 가운데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절대적 사랑의 관계이므로, 부모가 법을 어기면 자식은 울면서 말려야 한다는 것이다. 


양화(陽貨) 편에서 공자는 인간의 주요한 덕목으로 인(仁), 지(知), 신(信), 직(直), 용(勇), 강(剛)의 여섯 가지를 들되 그 덕목들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각각 우(愚), 탕(蕩), 적(賊), 교(絞), 난(亂), 광(狂)의 여섯 폐단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정직하되 공부하지 않으면 빠지게 되는 폐단이 교(絞)다. 교는 급하다는 뜻으로, 전체 맥락을 살피지 않고 자신만 올바르다고 주장하여 상황을 얽히게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논어의 가르침은 인(仁)을 핵심으로 한다. 그런데 공자는 인간이 인(仁)을 실천하는 이유는 누구나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정직은 곧 개인의 도덕적 주체성과 관계가 있다.  


공자의 가르침을 이어, 주자 즉 주희(朱熹·1130~1200)도 임종 때 제자들에게 直에 주목하라고 가르쳤다. 71세로 죽기 직전의 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선생은 1층에 계셨는데 설사를 조금 하셨다. 건양 지사 장규(張揆)가 와서 물품을 드렸으나 선생은 거절하시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조금만이라도 관대한 정치를 한다면 백성은 그만큼 은혜를 더 얻을 수가 있을 것이오.” 장규는 재상의 위세를 믿고 가혹한 행정을 하고 있어 백성이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날 밤 선생은 횡거선생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대해 강론하셨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학문하는 요점은 하나하나의 사실에 대해 그 시비를 분명하게 밝혀서 잘못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있다. 그것이 오래 쌓이면 마음이 이(理)와 하나가 되어 마음에서 피어나오는 생각이나 감정에 아무 사심이 없게 된다. 성인들이 만사에 대응하고 천지가 만물을 낳는 것은 직(直)의 원리에 따를 따름이다.”  

만년의 주자는 간신 한탁주가 그의 학문을 비판하고 그의 제자들을 탄압하여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다리에도 병이 있었고 가슴은 늘 콱콱 막혔으며, 60대에는 왼쪽 눈이 완전히 실명했다. 그렇지만 주자는 인간에 대한 낭만적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주자는 자연도 直의 원리에 따라 운행하고 성인도 直의 원칙에 따라 인간 구원의 사업을 이루었듯이, 공부하는 사람도 시비를 분명하게 밝혀서 생각이나 감정을 늘 정직하게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인간의 본성을 정직하다고 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정직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공자의 가르침은 얼핏 보면 무척 단순하면서 낭만적이다. 하지만 현실구원의 그 음성은 너무도 강렬하다.



/ 심경호 | 1955년 서울생. 휘문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일본 동도대학 문학박사(중국어학 중국문학 전공). 현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일본 메이지대 객원교수. ‘김시습 평전’ ‘한시의 세계’ ‘한학입문’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 등 저서 다수.
 

출처 : 주간조선 201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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