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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세상사는얘기/소요유소요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0. 5. 31.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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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 교수와 함께 읽는 한문고전]


 

 논어Ⅰ

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공자성적도 ‘聖門四科’/ photo 성균관대 박물관

 

‘예가 아니면’ 운운한 말은 본래 논어 안연(顔淵) 편의 첫 장(章)에 나온다. 
 
非禮勿視하며 非禮勿聽하며 非禮勿言하며 非禮勿動이니라.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말라’라는 뜻의 물(勿)이란 말이 네 번 나오므로 이것을 사물(四勿)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제자 안연(顔淵)이 인(仁)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이라고 했다. 극기복례란 사사로운 욕망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예란 본래 예주(醴酒), 곧 감주를 이용해서 거행하는 의례를 의미했다. 여기서는 한 개인이 사회화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각종 통과의례와 한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각종 의식을 뜻한다. 과거에는 국가 전례나 종묘 제사에서부터 귀족 계층의 관례, 혼례, 장례와 상례 등이 모두 일정한 의식으로 정해져 있었다. 오늘날에도 각 단체의 의식과 가정의 의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실상 예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도쇼궁의 삼원(三猿)
공자는 사회의 여러 계층들을 응집시켜 통일시키는 원리가 인(仁)이고, 그것을 행동과 의식으로 구체화한 것이 예(禮)라고 보았다. 그리고 각 개인이 자기의 부정한 욕망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면 그것이 곧 인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다시 안연이 욕심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하자, 공자는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모든 동작에서 사사로운 욕망을 이겨야 한다고 하면서, 시청언동의 각각에 대해‘예가 아니면 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안연 편의 첫 장은 극기복례에 관해 문답했다고 하여 ‘극기복례장’이라고 부른다. 전체를 다시 읽어보자. 원문에 우리말의 토를 달아 소개한다. 이 현토는 조선 선조 때 교정청에서 만든 논어언해(論語諺解)를 기준으로 하되, 현대의 어법에 맞춰 약간 수정한 것이다.  
 
顔淵(안연)이 問仁(문인)한대 子曰(자왈), 克己復禮(극기복례)가 爲仁(위인)이니 一日克己復禮(일일극기복례)면 天下(천하)가 歸仁焉(귀인언)하나니 爲仁(위인)이 由己(유기)니 而由人乎哉(이유인호재)아.

顔淵曰(안연왈), 請問其目(청문기목)하노이다. 子曰(자왈), 非禮勿視(비례물시)하며 非禮勿聽(비례물청)하며 非禮勿言(비례물언)하며 非禮勿動(비례물동)이니라.

顔淵曰(안연왈), 回雖不敏(회수불민)이나 請事斯語矣(청사사어의)로리이다.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는 “사욕을 극복하여 예로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 높은 지위의 위정자가 하루 사욕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간다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 인을 따르게 될 것이다. 인을 행한다는 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남으로부터 시작하겠는가?”라고 했다.

안연이 “그 조목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자,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고 했다. 안연은 말했다.  “회(안연 자신의 이름)가 똑똑하지는 못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실천하겠습니다.”

논어에는 이렇듯 공자와 제자가 문답을 주고받은 내용이 많다. 또 공자와 위정자의 대화, 공자와 은둔자의 대화, 공자 제자들 사이의 문답, 제자와 위정자의 대화도 들어 있다. 그래서 책 이름에 답술(答述)이란 뜻의 어(語)를 사용했다. 논(論)은 논변(論辯)이란 말인 듯하다. 따라서 논어는 공자를 중심으로 한 여러 사람들의 어록이다. 모두 20편인데, 전체를 상론과 하론으로 나누기도 한다.  

공자는 예(禮)를 이상적 시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예법으로 보았다. 곧 예가 지닌 지속의 측면을 중시하여, 기존의 예를 자의적으로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형식 모두가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다고 여긴 것은 아니다. 또한 각 개인은 예를 구속 요건으로 여기지 말고 자발적으로 예를 실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공자는 양화(陽貨) 제11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禮云禮云(예운예운)이나 玉帛云乎哉(옥백운호재)아. 

사람들이 예다 예다 하지만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옥과 폐백을 두고 예라 하는 것이겠느냐?   
 
예법과 의식은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데 필요한 조건들이다. 하지만 형식만 중시하면 사회 전체가 활력을 잃게 된다고 공자는 경고한 것이다.  공자는 사회 구성체의 안정을 위해서는 예를 중시해야 한다고 여기고, 특히 위정자와 지식층의 실천 의지를 문제 삼았다. 이 점에서 보수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귀담아들어야 할 측면도 있다. 공자가 주목했듯이 예는 사회의 구성원을 조화롭게 하고 사회를 원활하게 움직이게 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각 개인은 부정한 욕심을 버리고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따라야 할 공적 가치에 자신의 행동을 부합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논어의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말은 “예가 아니면 간음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해석한다면, 정말이지 “논어 읽으면서 논어를 모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심경호 | 1955년 서울생. 휘문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일본 교토대학 문학박사(중국어학 중국문학 전공).
현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일본 메이지대 객원교수.
‘김시습 평전’ ‘한시의 세계’ ‘한학입문’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 등 저서 다수.

출처 : 주간조선 201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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