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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 교수와 함께 읽는 한문고전]열자(列子)Ⅰ

세상사는얘기/소요유소요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0. 6. 1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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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 교수와 함께 읽는 한문고전]

 

 열자(列子)Ⅰ 

渤海之東 不知幾億萬里有大壑焉
발해 동쪽 몇 억만 리인지 모를 곳에 커다란 골짜기가 있다

경주의 안압지는 고대의 정원 문화가 어떠했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그곳에서 발굴된 목선이나 주령(酒令) 같은 유물들은 당시의 유희 광경을 상상하게 한다. 


조선시대에 안압지는 기러기가 날고 오리가 물놀이하는 곳으로 인식되었지, 고대 유적으로서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용장사 부근에 오래 살았던 김시습은 안압지를 안하지(安夏池)라 부르고, “못을 파서 바다를 만들어 물고기와 소라를 기르고, 용의 목구멍으로 물을 뿜어내니 형세가 우람하다”고 노래했을 뿐이다. 발굴조사에 의하면 안압지 중앙에는 세 개의 섬이 있고, 그 섬들은 봉래, 방장, 영주 등 신선이 거주하는 삼신산을 상징했다고 한다.


못을 파고 삼신산을 조성하는 방식은 동아시아 고대의 정원에서는 보편적인 방식이었다. 진시황은 상림원에 못을 파고 봉래산을 만들었고, 한무제는 건장궁의 태액지에 삼신산을 만들었다. 백제 무왕도 궁남지에 방장산을 만들었으며, 백제의 정원을 만드는 기법은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

하늘에서 본 경주 안압지
예로부터 안압지의 섬은 저절로 움직인다는 전설이 있었다. 정조 때 승지 김상집은 신라의 고적에 대해 보고하는 중에 “안압지에 흙이 떠 있고 넓이가 너럭바위만하고 그 위에 덩굴풀이 있는데, 바람을 따라 왔다갔다 합니다”라고 했다. 삼신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섬이 바람을 따라 왔다갔다 한다는 것은 실은 삼신산 설화와 관련이 있다. 

삼신산 이야기는 도가 계통의 여러 고전에서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자(列子)라는 고전이다. 주나라의 열어구(列禦寇)가 지었다고 전하지만, 열어구는 가공 인물인 듯하다. 이야기 속에는 후대인 위진 시대의 불교 사상도 뒤섞여 있다. 열자는 전한 말기에 이미 현재와 같이 천서(天瑞), 황제(黃帝), 주목왕(周穆王), 중니(仲尼), 탕문(湯問), 역명(力命), 양주(楊朱), 설부(說符) 등 8편의 구조가 갖추어져 있었던 듯하다.

진(晉)나라 때 장잠(張湛)이란 사람이 주석을 한 책이 널리 읽혔는데, 장잠이 원래의 책을 바탕에 깔고 여러 다른 기록을 뒤섞었는지 모른다. 이 책은 노자·장자와 함께 도가사상의 고전으로 널리 읽혔으며, 특히 생명 현상과 우주 자연의 변화를 성찰하고 그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깊이 논했다. 조원(造園) 방식에 삼신산의 상징을 도입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고대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삼신산 이야기는 열자의 탕문(湯問) 편에 나온다. 원문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渤海之東(발해지동), 不知幾億萬里有大壑焉(부지기억만리유대학언).…其中有五山焉(기중유오산언). 一曰岱輿(일왈대여), 二曰員嶠(이왈원교), 三曰方壺(삼왈방호), 四曰瀛洲(사왈영주), 五曰蓬萊(오왈봉래).

발해의 동쪽, 몇 억만 리인지 모를 곳에 커다란 골짜기가 있다. …골짜기 속에는 다섯 개의 산이 있어서 대여(岱輿), 원교(員嶠), 방호(方壺·혹은 방장方丈), 영주(瀛洲), 봉래(蓬萊)라고 한다.
 
五山之根(오산지근), 無所連著(무소연착), 常隨潮波(상수조파), 上下往還(상하왕환), 不得    峙焉(부득잠치언). 仙聖毒之(선성독지), 訴之於帝(소지어제).…乃命?彊(내명우강), 使巨鼇十五(사거별십오), 擧首而戴之(거수이대지). 


다섯 산은 뿌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늘 물결을 따라서 솟아났다가 내려갔다가 하면서 떠돌아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선인들은 이것을 괴롭게 여겨, 이 사실을 천제에게 호소하였다. 즉각 우강(북극을 관장하는 신)에게 명령하여 커다란 거북 15마리에게 머리를 들어 그 산들을 머리 위에 싣도록 했다.
 
龍伯之國有大人(용백지국유대인)…一釣而連六鼇合負(일조이연육별합부)…於是(어시), 岱輿員嶠二山(대여원교이산), 流於北極(유어북극), 沈於大海(침어대해).
용백 나라에 거인이 있어, …한 번 낚싯줄을 드리워서 여섯 마리의 거북을 낚아 한데 꿰어서 전부 다 메고 갔다. …이에 대여와 원교의 두 산이 북쪽 끝으로 흘러가버려, 큰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다.
 
본래 발해 동쪽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골짜기 속에 다섯 산이 있고, 그 산들은 물 위에 둥둥 떠다녔으므로 거기에 사는 신선들이 안정할 수 있도록 상제가 큰 거북들 열 다섯 마리를 시켜서 등에 지고 있게 했다. 그런데 용백국의 거인이 여섯 마리의 거북을 잡아가서 두 섬은 큰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고, 그래서 삼신산이 남았다는 이야기다. 원문의 鼇(오)는 흔히 ‘자라’로 풀이하지만 실제는 큰 바다거북을 말한다.

이 글은 우주에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여, 상식을 기준으로 삼아 우주의 큰 진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 내용이다. 시간은 무한하다는 것, 공간도 무한하다는 것, 상상을 초월하는 지극히 큰 것과 지극히 작은 것에 대해 말하였는데, 지극히 큰 것을 말한 부분에 삼신산 이야기가 나온다. 해당 부분을 전부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광사의 자호설 photo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이광사자필본
발해의 동쪽, 몇 억만 리인지 모를 곳에 커다란 골짜기가 있다. 그 골짜기는 정말로 밑바닥이 없는 골짜기로, 그 속은 한없이 깊어서 귀허(歸墟)라고 불린다. 천상계의 모든 물, 은하수의 흐름 등이 전부 이 골짜기로 쏟아지는데, 수량은 조금도 늘거나 줄거나 하지 않는다. 골짜기 속에는 다섯 개의 산이 있어서 대여, 원교, 방호(혹은 방장), 영주, 봉래라고 한다.

이 산들은 주위가 3만리나 되고, 정상의 평지는 9천리나 된다. 산과 산의 사이는 7만리나 떨어져 있는데, 그것을 이웃에 있다고 말한다. 옥나무가 무리지어 나고 과실은 모두 맛이 있으며, 그것을 먹으면 먹은 사람은 모두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거기에 사는 자는 모두 선인(仙人)의 부류로, 낮이건 밤이건 산에서 산으로 비행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다섯 산은 뿌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늘 물결을 따라서 솟아났다가 내려갔다가 하면서 떠돌아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선인들은 이것을 괴롭게 여겨, 이 사실을 천제에게 호소하였다. 그러자 천제는 다섯 산이 우주의 사방 끝 쪽으로 흘러가버려 선인들이 거주할 장소가 없어지지 않을까 염려해서, 즉각 우강(?彊)에게 명령하여 커다란 거북 15마리에게 머리를 들어 그 산들을 머리 위에 실어서 서로 교대하며 3교대로 하게 하여, 6만년마다 한 번씩 그렇게 하게 했다. 그래서 다섯 산은 비로소 한 장소에 멈추게 되었다.

그런데 용백(龍伯) 나라의 거인이, 발을 들어 서너 걸음도 떼지 않았거늘 벌써 다섯 산의 곳에 이르러서는, 한 번 낚싯줄을 드리워서 여섯 마리의 거북을 낚아 한데 꿰어서 전부다 메고는 자기 나라로 가서 거북의 껍데기를 태워서 점을 쳤다. 이에 대여와 원교의 두 산이 북쪽 끝으로 흘러가버려, 큰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다. 그 때문에 신선 가운데 이주한 자들이 수억이 될 정도였다. 이것을 안 천제는 대단히 화를 내어, 용백의 영토를 축소시켜 좁게 만들고, 또 용백의 백성들은 키를 줄여서 작게 만들었다. 그렇더라도 복희와 신농이 다스리던 때에  용백의 사람들은 키가 수십 길이나 되었다.
 
얼마나 황당하고 스케일이 큰 이야기인가. 하지만 또 얼마나 유쾌한가. 발해라는 나라 이름도 이 설화의 공간구조와 관련이 깊다. 또 조선의 학자이자 서도가였던 이광사(李匡師)는 이 글을 인용해서 자기 호를 원교라고 했다. 살던 곳이 지금의 만리 고개, 즉 둥그재(원교圓嶠)인 데다가, 당쟁으로 집안이 망한 것이 마치 원교가 침몰한 것과 같다고 해서 그런 호를 붙인 것이다. 員은 圓의 옛 글자로, 둘은 서로 통해 쓴다.

열자의 ‘탕문’ 편은 상식을 벗어난 거대한 사유 양식이 있을 수 있음을 여러 예증을 들어서 설명했다. 그리고 세속의 인간보다 뛰어난 성인, 성인보다 뛰어난 신령, 신령을 초월한 자연에 대해 논하고, 인간의 분별적 지식에 의해 특정화되고 강조되고 의식된 것의 범위를 뛰어넘어 삶의 최고의 원리인 균(均)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얄팍한 지식과 고착된 상식만으로 남을 재단하고 세상을 편향된 시각으로 이해하기 일쑤다. 하지만 열자를 읽으면서, 자신의 지식과 상식이 혹시라도 진리와 도리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성찰하고, 사회적 통념이나 떠도는 소문이 진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판의 시각을 갖출 필요가 있을 듯하다.




/ 심경호 | 1955년 서울생. 휘문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일본 동도대학 문학박사(중국어학 중국문학 전공). 현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일본 메이지대 객원교수.
‘김시습 평전’ ‘한시의 세계’ ‘한학입문’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 등 저서 다수.
 

 

 

 

출처 : 주간조선 201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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