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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화가 안 되는가?

박종국교육이야기/좋은훈육부모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0. 6. 1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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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화가 안 되는가?
김영옥 : 전남대 유아교육과 교수 | 이메일 : yokim@jnu.ac.kr
기사 게재일 : 2009.10.06

서울에 가야 하는데 기차시간이 맞지 않아!”
“그럼 고속버스를 타.” 상대방이 대답했다.
“오래 걸리잖아, 대구에서는 서울까지 기차도 자주 있고 1시간 반이면 되는데...”
계속 불편함을 호소한다. “송정리역에서 가는 시간을 알아보지?”
“언제 거기까지 가서 타! 힘들어서 못가겠어!” 라고 투덜거린다.
“그럼 가지마라” 라고 응하자 서울에 간다는 사람은 갑자기 예매한 기차표를 보여주며 “내가 갈 줄 모르는 사람이냐”고 그만 벌컥 화를 냈다.
열심히 방법을 찾아 준 사람은 어이없다는 표정이고 불쾌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는 더 진전되지 않았다.
서울에 가야하는 사람은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러한 불편함을 호소한 것이다. 이미 기차표도 사 놓았고 가지 않을 생각은 더더욱 없는 것이다. 단지 이렇게 힘들다는 자신의 심정에 공감해주는 상대방을 기대했던 것이다.
종이비행기가 다 찢어져 유치원에서 놀지 못했다고 엉엉 울고 와서는 가기 싫다고 하는 아이에게 “조심을 해야지. 누가 찢었니? 그까짓 종이비행기 하나 가지고 뭘 그러니? 또 만들면 되지. 그랬다고 안가? 남자가 씩씩해야지. 울지 마라. 뚝 그쳐라. 잊어버려라” 등과 같은 부모의 반응들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이는 종이비행기가 망가진 것에 대해 화가 난 마음을 하소연한 것이며 물론 유치원에 안다닐 생각은 더욱 아니다.
“아무개가 괴롭혀요. 학교 가기 싫어요” 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선생님께 말하지 그랬니?” 하는 것보다 우선 필요한 대응은 “얼마나 속상 하겠니!”와 같은 ‘마음을 쓰다듬기’ 이다.
속상한 마음을 먼저 달래준 다음에 해결책을 찾아도 늦지 않다. 괴롭힌다는 사실을 해결하는데 급한 나머지 속상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인정하며 동조해주는 것은 자칫 생략하기 쉽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시설 영아들이 영양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사망하는 이유가 신체적으로 따뜻하게 접촉해주지 않은데 있음이 발견되었다. 자극과 인정의 욕구에 대한 ‘쓰다듬기’ 결핍에 원인이 있음을 찾아낸 사람의 이름을 붙여 ‘마라스무스 병’이라고 했다. 어린이는 처음에 신체적 자극을 원하다가 연령이 증가하면서 보다 인정의 욕구로 바뀌게 된다. 어릴수록 쓰다듬고 만지는 감각적 욕구가 필요하지만 성장함에 따라 언어적 인정을 받고 싶어 하며 성인이 되면서 표정, 몸짓, 감정 등을 포함한 비언어적인 것으로 확장된다.
대화의 첫 단추는 ‘쓰다듬기’라는 공감의 표현이다. 성급히 해결책부터 내 놓음은 첫 단추를 생략하고 다음 단추를 꿰어 버린 것과 같다. 친구 때문에 속상하다는 아내의 투정은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이지 결코 친구를 만나지 않겠다거나 남편으로부터 뾰족한 해결책을 원하는 것이 아닐 때가 많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두는 남편과 인정받기를 기대하는 아내와의 다툼은 때로 부딪치게 된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자며, 대화로 풀자고 말한다. 대화는 상대방의 심정을 인정하는 쓰다듬기부터 시작해야 풀어지고 나누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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