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박 종 국(칼럼니스트)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게 열려 있어야한다. 하나의 문제 사단에만 치우쳐 마치 열흘 굶은 맹수들처럼 물어뜯는 극단주의는 위험하다. 한데도 지금의 언론매체들은 치우침의 미학을 양껏 즐기는 듯하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갈가리 씹다가 뱉으면 그만인 ‘그렇더라?’ 기사가 난무하고 있다.
요즘은 훤히 뚫린 도로망 덕분에 전국 어디든지 반나절이면 닿는다. 하지만 쫙쫙 뻗은 교통사정에 비해 우리의 대화와 토론 문화는 너무나 정체되어 있다. 되레 구습을 답습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난장판 국회가 서로 물고 뜯는 극단주의를 대변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정의는 멀다는 얘기다.
사회 문화 비평가이자 탁월한 논객인 강준만 교수가 펴낸 <한국인 코드>(인물과사상사)는 단일성과 밀집성이라는 조건 하에서 획일성 · 집중성 · 극단성 · 조급성 · 역동성이라는 한국인의 5가지 속성이 한국인의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명암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 책은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 빨리빨리 문화, 한국형 평등주의, 최고-최대-최초에 집착하는 자존감을 위한 투쟁과, 가족주의-정실주의-부정부패로 드러나는 정(情) 문화, 6.25 심성, 쏠림의 소용돌이 문화, 서열 문화, 아버지 추종주의, 목숨 거는 극단주의 등 한국인 코드 10가지를 치우침 없이 다루고 있다.
사실, 한국인의 극단주의는 여러 영역에서 많은 세계 최고기록을 수립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학입시 전쟁의 치열함도 세계 최고요, 유행도 세계 최고다. 인터넷이건 핸드폰이건 뭐든 빠져들었다 하면 세계 최고다. 자동차 사고율도, 자살율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극단주의가 다른 한쪽으로 쏠리면 세계 최고에서 세계 최저로 곤두박질치는 속도도 가장 빠르다.
운동 경기도 그저 지켜보지 못한다. 지역주의의 망령이 경기장 내를 어슬렁거린다. 아세안 게임 ․ 올림픽 ․ 월드컵 등 근래에 벌어진 런던올림픽만 보아도 그렇다. 오직 금메달만이 지상최고의 목표인 것처럼 매달렸다.
또한 각종 경기 때는 한국인 특유의 동질성과 밀집성으로 결집된다. 성장일변도의 경제논리가 우리 사회전반에 팽배해 있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천민자본주의에 기인한 삶의 저급성에 길들여진 탓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우리는 비단 운동경기에만 목숨 거는 것이 아니라 일등이 되는 데에는 모든 것에 목숨을 건다. 극단주의나 집단주의 성향이 도드라진다. 이와 같은 논거 앞에 한국인이라면 그 누구도 ‘나는 아니다.’고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그는 이미 우리 사회의 ‘왕따’가 되고 만다. 열광의 자리에서 딴전은 허락하지 않는다. 월드컵 경기를 보며 ‘대한민국!’을 외치지 않고 상대편을 응원해 봐라. 아마 그 순간 주변의 따끔한 눈초리에 주눅이 들어 기겁을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오직 하나가 되어야한다! 이주민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시각도 그리 고운 것은 아니다.
왜 우리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왜 우리는 극단으로만 치닫는 것일까. 매년 슈퍼볼 경기 전후나 경기 중에 방송되는 30초간의 광고는 사람들의 관심을 측정하는 비공식인 콘테스트의 장이 되고 있다. 펩시, 버드와이저, 디즈니, 커리어빌더닷컴 등의 기업이 미국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슈퍼볼 방송에 맞춰, 최고의 재미, 최고의 드라마, 최고의 놀라움 등 시청자들의 반응을 기대해 많은 자금을 투입해 광고를 방영한다. 과연 경기 그 자체만큼이나 거대자본주의답게 온갖 물질적 향유가 두드러진다.
왜 미국인들은 슈퍼볼에 열광하는가. 연전 슈퍼볼의 MVP 영광을 얻은 한국계 영웅 하인스 워드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우리의 고정 관념화된 사고체계와는 달리 다양성을 인정하는 미국사회의 사회정의가 부럽다.
혹자는 이 논리에 사족을 달 것이다. 나 역시 힘의 논리로만 세계를 경영하려는 미국이란 나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축구 한일전을 시청할 때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 방송 중계 아나운서는 물론, 해설가가 줄곧 승리만을 위해 침 튀긴다. 극단주의의 정점을 보는 듯 마음이 씁쓰레해진다.
왜 우리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치매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다 (0) | 2012.09.13 |
---|---|
부모 자식 간에도 합의된 대화문화가 필요하다 (0) | 2012.09.12 |
단지 나잇살 땜에 사오정 오륙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0) | 2012.09.12 |
대체, 이 놈의 세상 왜 이러나? (0) | 2012.08.27 |
문제 아이는 없다_박종국 (0) | 2012.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