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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사랑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5. 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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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사랑

 

박 종 국

 

책 읽는데 열심인 나는, 여느 날처럼 책 한 권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손때 묻혀가며 읽었던 책이다. 흔적이 뚜렷한 곳을 펼쳐보았더니 ‘주근깨 여왕’이란 이야기다.

 

우리 집은 다가구 한옥입니다. 안채엔 금실 좋은 노부부, 아랫방엔 정식이네 세 식구, 문간방엔 영진이네 네 식구, 그리고 별채에 우리 세 식구, 모두 열두 식구가 한 지붕 아래에 삽니다.

일요일이면 그야말로 북적북적, 남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나와 마당을 서성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뒤엉켜 노느라 정신없고…., 온 집안이 잔칫날처럼 분주합니다. 그 북새통에도 큰 다툼이 없는 게 다행이다 싶은데 그날은 용진엄마가 심사를 긁었습니다.

“어머머머! 주근깨 좀 봐. 자기 그 주근깨 좀 관리해.”

그렇지 않아도 늘어가는 주근깨 때문에 속이 상해 죽을 맛인데…, 나는 화가 났습니다.

“나 참, 내 주근깨가 자기한테 밥 달래 돈 달래?”

화를 참지 못해 한 마디 툭 쏘아붙이고는 자리를 피했고 무슨 일인가 싶어 남편이 따라 들어왔습니다. 얼굴의 주근깨가 미운건지 용진엄마가 미운건지, 거울 앞에서 울그락불그락 화를 삭이지 못하자 남편이 물었습니다.

“와? 또 누가 당신 얼굴 갖고 뭐라카드나?”

“용진엄마가 날더러 주근깨 여왕이랍디다. 아이고, 그래도 얼굴에 찍어 바를 거 하나 살 수가 있나. 원…….”

내 속없는 핀잔에 피식 웃던 남편이 거울 속으로 들어와 말했습니다.

“내 눈에 이쁘면 됐다. 용진엄마야 참 이상한 사람이네. 지한테 없으니까 샘나서 그런 거 아이가?”

“으응…, 뭐라구?”

“혹시 그 아지매가 주근깨 하나 꿔달라캐도 절대로 꿔주믄 안 된다. 알았제?”

남편의 그 말에 나는 배꼽이 빠져라 웃고 또 웃었습니다.

내 얼굴의 주근깨조차 사랑스럽다고 말해 주는 남편, 남편의 그 사랑이야말로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제 자식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면 그건 ‘고슴도치 사랑’이고, 자기 마누라가 코가 비뚤어져도 예쁘다면 그것은 ‘팔불출 사랑’이다. 하물면 주근깨 밭인데도 그저 예쁘게 보인다면 정녕 ‘콩깍지’가 씌였다. 이만 한 제 눈에 안경이 또 없다.

 

반 아이들 중에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해코지를 일삼는 녀석이 몇몇이다. 그런 행동이 잦다보니 자연 얼굴을 만나기가 부담스러워진다. 그렇지만 담임은 고슴도치가 된다. 그래도 예쁜 짓을 하는 다른 반 아이들보다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지독한 콩깍지 사랑이다.

 

교실이 북새통 같은데도 의연하게 책을 읽는 아이도 예쁘다. 그뿐이랴. 이것 하라 저것 하라 눈치를 주지도 않았는데도 교실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 아이는 천사다. 좋은 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학급 일 즐겁게 챙기는 아이의 마음도 예쁘다.

 

살면서 강물처럼 나긋하고, 산바람같이 시원하며, 바다처럼 너른 심성을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다. 산은 산끼리, 물은 물끼리, 사람은 사람끼리 어울린다. 그래서 좋은 사람은 제 눈에 안경처럼 만난다.

 

|박종국 2017-25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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