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남을 탓할 처지가 아냐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6. 20. 16:21

본문

728x90

남을 탓할 처지가 아냐


박 종 국


아침에 출근하다보면 늘 같은 시간에 만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생활리듬이 비슷한 탓입니다. 그런데 차를 몰고 아파트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마음이 바빠집니다. 앞서 가던 차가 한참을 꾸물댔습니다.

“아니, 초보야 뭐야. 도로 전세라도 냈나!”

불쑥 한 마디 내뱉습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조금 기다려주는 여유가 없습니다. 내내 낯부끄러웠습니다.


큰 도로로 나갔습니다. 출근길 차들로 빼곡합니다. 신호를 무시한 채 냅다 달리는 차가 많습니다.

“왜 신호를 위반하고 막 달리는 거야!”

다들 형편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가 됩니다. 팔은 안으로 굽습니다. 신호를 기다리다 말고 나도 은근슬쩍 차를 몰고 달립니다.


사람은 생각이 다 다릅니다. 상황에 따라서 정말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호등 체계가 너무 운전자 중심으로 되었다고 투덜댑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에 시간이 너무 짧고, 신호간격도 너무 깁니다. 그런데 건널목은 왜 그렇게 멀리 떨어졌는요. 괜히 짜증이 납니다. 눈치를 살피다가 순간 도로를 가로질러버립니다. 나만 편하게 되거든요.


그런 마음은 운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운전대만 잡으면 두 얼굴을 가진 헐크가 됩니다. 바삐 가야하는데 정지신호가 그렇게 많은지요. 게다가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도 깁니다. 운전대를 몇 번이나 바꿔 그러쥡니다. 횡단보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느릿느릿 건너갑니다. 순간, 욕지거리가 쉬쉬 불거집니다.

“세금 거뒀다가 뭐하는 거야. 이런 데 육교나 지하도 설치는 안하고.”

자못 속이 뒤틀립니다. 그러다 신호가 떨어지면 마치 경주용 자동차처럼 쏜살같이 내달아갑니다. 그게 지금 우리들의 얼굴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바짝 마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조그만 일 하나도 네 덕이라기보다 남을 탓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다들 잘 되면 내가 잘한 게고, 못되면 남이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하는 일이 못마땅한 거지요. 그래서 남이 크게 잘 되면 실실 배가 아픕니다. 다들 속에 도둑심보 하나 지니고 삽니다.


식당에 가서도 허둥대는 마음을 종잡지 못합니다. 먼저 자리를 잡았는데도 늦게 온 사람이 나보다 일찍 대접을 받습니다. 그걸 보고는 가만두질 못합니다.

“아줌마, 우리가 먼저 왔는데 왜 거기부터 갖다 주는 거요?”

식당 안 사람들의 시선이 와락 쏟아집니다. 그래도 씩씩대는 성미는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급기야 식당 주인이 나서서 미안사레를 합니다.

“죄송합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들이닥치다 보니 순서를 잊었네요.”

그래도 치켜뜬 눈을 내리지 않습니다. 맛 나는 음식을 내놓았는데도 영 모래알 씹는 맛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면 압니다. 그러면 내가 하는 행동이 유달라집니다. 내가 싫어하는 일은 남도 꺼려하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기보다 내가 남에게 해 주는 게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세워줌으로써 나도 바로 섭니다. 배려는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주변을 보면 힘든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에게 어떤 시선을 보냅니까. 여느 사람들처럼 나 또한 사는 데 바쁘다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남을 탓할 처지가 못 됩니다.


어쨌거나 우리들은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그런 까닭에 조금이라도 나에게 대접이 소홀하면 눈을 부라리며 흘겨댑니다. 우선 나 자신부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인색합니다.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너무 크게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루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 순간이라도 역지사지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각은 다 다르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조금만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쓸데없이 낯붉히는 일이 덜하겠지요.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