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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치례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7. 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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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병원치례

 

박 종 국

 

작년까지만해도 병원을 모르고 살았다. 돌을 씹어 먹어도 소화가 된다고 자신했으니까. 그만큼 체력도 소화력도 좋았다. 몇날며칠 밤샘 하거나 힘에 부치는 일을 해도 거침이 없었다. 무엇에도 건강한 삶의 에너지가 분출했었다. 한데, 지천명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사사로운 일 하나에도 고뿔이 나고, 감기몸살에다 편도선염까지 도져 결국 병원신세를 졌다. 나잇살답게 급기야 면역체계를 망가졌다.

 

2월엔 대상포진이 발진해서 달포가량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대상포진은 주로 몸통이나 엉덩이 부위에 잘 생긴다. 그렇지만 신경이 뻗친 부위이면 어디든지(얼굴, , 다리 등) 발생한다. 나는 가슴팍에 발진했다. 통증이 심해 아프고, 심하게 따끔거렸다. 이러한 증상이 두어 주일 계속됐다. 지속된 붉은 발진과 두통이 사람을 잡았다. 하필 연말연초 모임자리가 줄을 잇는 때, 하찮은 병마 운운하며 동창회월례회도, 계모임도, 친구출판기념회도 얼굴 내밀지 못해 마음만 절절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맞춤했던 약속이 줄줄이 허튼 기약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는 냉담했다. 예기치 못한 일이기에 무척 당혹스러웠다. 좋을 때는 큰 바다같이 너른 그릇이었던 사람들이 손바닥 뒤집기를 하고나면 바늘하나 꽂을 데도 없을 만큼 마음이 비좁다. 충분히 경청하고 공감하고 넘어갈 일도 몰이해의 강을 건너면 철천지원수가 따로 없다. 뒷담화를 듣다보면 실없는 웃음이 난다. 가재는 게 편이다. 사람은 누구나 제 논에 물대기가 먼저다. 모두 네 덕이고, 내 탓이라 생각하면 달다 쓰다 딴죽을 걸 까닭이 없다. 근데도 연일 변죽이 끓는다. 줏대 없는 사단이 죽죽 불거지고, 어쭙잖은 일이 한꺼번에 몰아친다. 쇠뇌를 쏘듯 일방적인 흰소리는 괜한 사람 속을 멍들게 한다.

 

지난 금요일 통영에 터 잡고 사는 친구 부름을 받고 달려갔다. 평소 바늘과 실처럼 애살스럽게 지내는 친구들의 결사자리였다. 만나자마자 그 동안 못다 한 회포를 풀었다. 맞춤한 술상엔 싱싱한 통영바다 해산물이 줄줄이 올랐다. 그렇게 통영의 밤은 언제나 미덥고 훈훈했다.

 

이튿날 손수 마련한 해장국으로 속을 달랜 일행은 서둘러 사량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역시 바다는 방랑의 멋을 더해 주었다. 40분여 내달아 도착한 사량도, 변치 않은 그 모습 그 대로 반겼다. 이번 산행코스는 지리산 종주 코스 중 3시간 반 여정인 옥녀봉. 산행 초입부터 턱밑까지 차오르는 뙤약볕 열기로 숨이 턱턱 막혔다. 가히 여름철 산행의 최악 날씨였다. 그렇잖아도 중복에 대서. 가쁜 숨 몰아쉬며 연방 얼음물만 들이켰다.

 

쉬운 산은 없었다. 아무리 야트막한 산이라 해도 한두 고비 깔딱 고개가 기다리기 마련. 옥녀봉도 환히 트인 다도해 조망과 달리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몇몇 산행 길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옥녀봉은 여태껏 다녀보았던 그 어느 산행지보다 출중했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며 올망졸망하게 에워싸고 도는 다도해 섬들은 의좋은 형제 같았다.

 

시나브로 가파른 산길 오르다 다리가 팍팍해질 무렵 점심 자리를 폈다. 통영친구가 마련한 통영김밥과 갓 잡은 문어숙회가 막걸리와 함께 나왔다. 시장이 반찬이라 산행 중에는 무엇을 먹어도 꿀맛이다. 한참을 그렇게 포만했다. 더러 속에 담아두었던 까칠한 얘기도 안주 삼았다. 역시나 칠월뙤약볕에 자글자글하게 농익은 산행객들에게는 충무김밥이 청량제였다.

 

이어서 계속된 산행은 여태까지 보다 더 거칠고 가팔랐다. 출렁다리를 지나고 옥녀봉에 이르렀을 때 아, 이제는 다 왔구나 하는 안도감에 너무 마음을 풀어버렸던지 깎아지른 하산 길에 그만 발을 헛디뎌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순간, 숨이 턱 막히고, 하늘이 노랬다. 그렇잖아도 임신 8개월 운운하며 내 뱃살을 두고 시빗거리가 되었는데, 그 육중한 몸매로 바위치기로 발라당 넘어졌으니 우지끈 갈빗대 몇 대 안 부러진 게 다행이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내내 얼얼한 통증을 괜찮거니 미련하게 참았던 게 탈이 났다. 하루 지내고 보니 충격을 받은 자리 멍울이 들고 가슴 통증이 심했다. 결국 병원신세를 지고 나서야 통증을 다소 무마했다. 그러나 의사 진단 결과, 적어도 두어 주 가량은 조신하게 처신해야 하다고 했다. 더구나 여름철이니 깁스를 하거나 압박붕대로 동여맬 처지도 아니라, 처방전대로 알아서 몸조리하란다.

 

어제 조퇴를 하고 병원신세를 졌다. 마침 26일 방학이어서 단축수업 하는 기간이라 수업결손 없이 편한 마음으로 진료에 임했다. 학기 중에는 빠듯한 시간 탓에 병원 가는 일도 꺼렸지만, 이번처럼 편안한 병원나들이가 결국 액땜하듯 건강한 심신을 되살리기에 충분했었다. 몸살은 몸이 살려달라는 신호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올해 잦은 병원치레는 내 몸이 건강이상징후를 알고 미리 예단해주는 충고이리라. 이참에 모든 일 절제하고 건강에 좀 더 신경 써야겠다.

 

박종국에세이칼럼 2017-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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