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프랑스 신부 테이야르 드 샤르댕은 일찍이 그의 『인간현상』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영적인 경험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을 가진 영적인 존재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따금 영적인 경험을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본래부터 영적인 존재이며, 인간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 잠시 이 지구별에 여행 온 존재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영적 성숙’을 위해서라는 북미 인디언이나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좀 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이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지혜도, 현대 가사(假死) 체험자들의 증언도 비슷하다.
그렇기에 본래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우리가 살면서 부딪혔던 많은 문제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하여 우리가 본래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또한 우리가 인간을 선택해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 세상에서의 삶은 무언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자연히 우리의 삶에 어떤 목적과 임무가 띄었음을 알게 된다.
영적인 존재의 삶은 일상의 일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소중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모든 일을 경험하기 위해, 그 속에서 영적 성장을 위한 지혜를 찾으려고 이 세상에 왔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대답은 우리가 유한한 존재가 아니라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다.
또, 이 지구별에서의 삶이 우리의 수많은 영적 삶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밤하늘의 별들에 대한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우리는 저 별들 중 어디에선가 이곳에 왔고, 이곳의 삶을 마친 뒤에는 그 별들 중 어느 곳으로 또 다른 영적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볼 때, 우리 자신은 곧 우주이며, 우리들의 이야기가 곧 신들의 이야기다. 산과 들의 꽃들과 새들과 동물들과 곤충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주의 어느 별에서 온 영혼이다. 그렇게 인간의 눈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볼 때, 이 세상은 온통 경이와 신비로 가득 차게 된다. 또한 이 지구가 수많은 영혼의 여행객들이 잠시 머물며 서로 살가운 관계를 맺고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특별한 곳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여행을 잘 하는 걸까? 아니면 방황하는 걸까? 그도 저도 아니면 내 본래의 존재를 망각한 채 인간의 몸에 파묻혀 헛되이 인생을 낭비하는 게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들은 과거에 어디서 만났던 영혼일까? 문득 만남이 신기하고 경이로워진다.
정녕 나는 그 모든 의문에 대해 얼마나 아는 걸까? 내가 선택해서 온 이 지구별과 가족, 연인들에게 나는 얼마나 충실한 걸까? 진정 나는 후회 없는 여행을 하는 걸까?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들을 위해 얼마나 사랑하고 헌신하는 걸까? 내 영적 성장에 대한 화두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금까지 내 모든 일상이 그냥 허두로 산 게 아니라면 그에 대한 의문은 쉬 풀린다. 왜냐?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영적인 존재이며, 이 지구별을 스스로 선택해서 왔다. 티베트인들은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인생의 절정이며, 의식이 없어 보이는 코마 상태에 든 이들조차 꿈을 꾸며 인생의 의미를 좇았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인간의 몸을 벗고 영적인 존재로 돌아갈 때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인 존재로서 잠시 인간의 몸을 빌려 입은 지금 지구별의 손님이다. 손님은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모두 본래의 모습대로 보존해야 한다. 결코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인생의 의미를 끝없이 탐구하며, 또 다른 여행자들이 지구별을 찾아오고, 아름다움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