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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 그 기막힌 세대

한국작가회의/한빛소리원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9. 5. 1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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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 그 기막힌 세대


카테고리 : 박종국의 세상만사 | 조회수 : 36302012-01-05 오후 3:27:00


[박종국의 글밭 2012-6] 지천명 그 기막힌 세대


지천명, 그 기막힌 세대


박 종 국


지천명(地天命), 하늘과 땅을 호령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러나, 지천명의 세대는 기막히다. 직장 상사가 명령하면 알아서 말 잘 듣고, 눈치 것 암시만 주면 짐을 꾸리는 세대다. 주산의 마지막 세대, 컴맹의 제 1세대다. 부모님에게 무조건 순종했던 마지막 세대다. 그래서 지금도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에 아내와 부모 사이에서 방황하거나, 그런 일들을 이제 와서는 미안해하는 세대다.


지천명의 세대는 유년시절 유난히 배고팠다. 까까머리에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지방을 제거한 우유를 얻어먹으려 줄을 섰고, 옥수수 급식빵 하나에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그뿐이랴. 지천명의 세대는 6.25 전쟁의 참상 후유증으로 생겨난 고아원 패거리들이 왜 악착같이 싸움을 잘하는 지 그 이유를 몰랐던 그때 그 시절을 살아온 세대다.


도시락에 계란하나 묻어서 몰래 숨어서 먹고, 소풍가던 날에는 책 보따리 속에 계란 세 알, 사탕 한 봉지를 싸갈 수 있었지만, 그마저 다 먹지 못하고 그 중 사탕 반 봉지는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을 위해 꼭 남겨 와야 하는 걸 이미 알았던 세대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지천명의 세대의 유년은 힘겹고 가난했지만 따습고 아름다웠다.


일제 식민지 시절을 아파하던 아버님, 아들딸을 등에 업고 6.25 피난길을 떠났던 어머님, 너희처럼 행복한 세대가 없다고, 저녁 밥상머리에서 빼놓지 않고 얘기 할 때마다 일찍 태어나 그 시절을 같이 겪지 못한 동생들은 부러움과 행복 사이에서 말없이 고구마에 김치를 얹어 먹었다. 누런 공책에 ‘바둑아 이리와 영희야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를 몽당연필에 침 묻혀 쓰다가 단칸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잠들었다.


낱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때부터 달달 외웠던 국민교육헌장, 대통령은 당연히 박정희인 줄만 알았고, 무슨 이유든 나라 일에 반대하는 사람은 빨갱이라고 배웠다. 학교 골마루에서 고무공 하나로 서른 여명이 뛰어놀던 그 시절, 검은 교복에 빡빡머리,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간을 지옥문보다 더 무서운 교문에서 매일 규율부에게 얻어맞는 친구들을 보며 나의 다행스런 하루를 스스로 대견해 했었다. 그러다 성적이 떨어지면 손바닥을 담임선생님께 맡기고 걸상을 들고 벌서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더러 턱수염이 거뭇거뭇해진 올백이 친구들은 이름 없는 국화풀빵집, 제과점에서 여학생과 놀다 학생지도 선생님께 잡혀 정학을 당하거나, 연애박사란 글을 등에 달고 교무실과 화장실 벌 청소를 할 때면 지나가던 선생님들에게 머리를 한대씩 쥐어 박혀도 시간이 지나면 그게 다 무용담이 되던 시절, 그때나 지금 지천명 세대는 이름 없는 세대다.


4.19 세대의 변절이니 유정회,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들이 자동거수기니, 애국자이니 말들이 분분했을 때 각종 뇌물사건 때마다 빠지지 않았던 그들은 정치인이란 걸 알았지만 쉽사리 성토하지 못했다. 간첩들이 잡히던 시절, 말 한마디 잘못해서 어디론가 잡혀갔다 와 고문으로 병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술집에 모여 숨을 죽이면서 들으며, 잘 쓴 책 한 권 때문에 폐인이 되어버린 어느 친구의 아픔을 소리 죽여 이야기 하면서 스스로 부끄러워했던 그 시절에도 지천명 세대는 이름 없는 세대였다.


빛 좋은 유신군대에서 대학을 다니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복날 개 패듯 얻어  맞았고, 탈영을 꿈꾸다가도 부모님 얼굴 떠올리면 참았고, 참다못해 차라리 월남 전쟁터를 지원하고, 병신이 되거나 죽고, 고엽제에 시달려도, 조국 재건에 발판이 되었다고 자부하던 때였지만, 그 시절에도 지천명 세대는 역시 이름 없는 세대였다.


쥐꼬리만한 월급쟁이 시절, 동료들과 쓴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아픔 달래던 노총각 시절, 80년 그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데모대열 속에 끼어 이리저리 내몰리면 어쩔 수 없이 두 편으로 나뉘어 체류탄 피해왔던 시절에도 지천명 세대는 이름 없는 세대였다.


일제세대, 6.25 세대, 4.19 세대, 5.18세대, 모래시계 세대, 자기주장이 강한 신세대, 베이비 붐 세대 등 모두들 이름을 가졌던 시대, 잠시나마 6.29 넥타이 부대라 불렸지만 지천명 세대는 자신의 정확한 이름을 가지지 못했던 불임의 세대였다.


선배 세대들이 첨단 정보 활용 능력을 꼭 말아 쥔 보따리 구걸하듯 풀어서 겨우 일을 배우고, 꾸지람 한마디에 다른 회사로 갈까 말까 망설이고, 후배들에게 잘 보이려고 억지로 신세대 노래 골라 부르는 쉰 세대들. 아직은 젊다는 이유로 후배 세대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임금 인상, 처우 개선 등 맡아서 주장하는 세대. 단지 과장, 차장, 부장, 이사 등 조직의 간부란 이유로 조직을 위해, 후배를 위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세대, 팀장이란 이상한 이름이 생겨서 윗사람인지, 아랫사람인지 알지도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세대, 노조원 신분이 아니어서 젊은 노조원들이 생존권 사수를 외치며, 드러누운 정문을 피해 쪽문으로 회사를 떠나는 세대, IMF에 제일 먼저 수몰된 힘없는 세대, 오래 전부터 품어온 불길한 예감처럼 맥없이 무너지는 세대, 그게 지천명의 세대다.


고교동창모임을 할 때면 벌써 몇몇 친구들은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에 덜컹 내려앉는 가슴을 쓰러 내리며 눈물 훔치는 세대, 이제 그들은 그들만의 세대 이름 하나쯤 만들어 부르고 싶다고. 권력자들처럼 힘 있고 멋지게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다 어느 날 늘어난 흰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을 삶을 뒤 돌아보는 세대다.


그러나 늙으신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은 성장했지만 제 갈 길이 바쁘고, 다른 길은 잘 보이지 않고, 벌어 놓은 것은 노후를 지내기도 빠듯하다. 이 나이에, 하필이면 이 나이에 일손 놓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주저하기를 밥 먹듯이 되풀이 하는 사람들, 다시 도전하기에는 이미 늦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지천명의 세대다.


50중반을 이미 건넜고, 60대의 새로운 다리가 놓이길 기다리는 이 시대는 위태로운 다리 위해서 사석이 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며 바둑돌을 놓는다. 그러다가 소주 한 잔 마시고 집으로 향하는 늦은 밤, 골목길 포장마차에서 팔지 못해 애태우는 부부를 보고는 붕어빵을 한 봉지 사들고 와서 식구들 앞에 내 놓았다가 아무도 먹지 않을 때, 밤늦은 책상머리에서 혼자 우물거리며 먹는 세대, 이래저래 아내의 눈치를 보며 아이들과는 대화통로마저 끊긴 세대다.


모든 사람들은 각기 자기 세대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지천명 끼인 세대는 마땅한 이름을 가지지 못했다. 여태껏 이름 없이 살아온 그들 세대에게 마땅한 이름은 무엇일까. 그러나, 지천명의 세대는 고속 성장의 막차에 올라탔다가 이름 모르는 간이역에 버려진 세대요, 이제 스스로가 퇴출이라고 불리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세대며, 아직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세상이 참 야속하다는 세대다. 이름 하여‘기막힌 세대’다. 나도 지천명 끼인 세대다. 201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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