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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영화 ‘자산어보’

한국작가회의/영화연극음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1. 5. 1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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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영화 ‘자산어보’


 

정조의 아들 순조는 불과 11세의 나이로 조선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나, 곧 정순왕후 김씨의 수렴청정이 시작된다. 정순왕후는 유교사회 질서를 해친다며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고 이를 구실로 집권세력인 노론은 당시 정치적 반대세력인 남인을 탄압한다. 신유박해의 광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남인계 학자이며 형제인 정약종은 같은 해 순교하고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된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는 1801년 신유박해 시기 흑산도로 유배된 학자 정약전과 청년 어부 창대의 만남을 통해 주자의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 지식인의 고뇌를 담는다. 흑산도에 내려간 정약전(설경구 분)은 흑산도에서도 가거댁(이정은 분)의 집에 머무르면서 뭍에서는 먹어보지 못했던 홍어회부터 다양한 해산물들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청년 창대(변요한 분)의 도움을 받아 ‘자산어보’를 저술하게 된다. 영화는 정약전은 글을 가르치고 창대는 바다 생물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주면서 두 사람은 나이를 떠나 서로의 스승이 되고 벗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자산어보’는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그린다. 양반 출신의 정약전은 서자 출신인 창대와 함께 스승과 제자인 동시에 학문연구에 있어 동료 관계로 발전한다. 신분 차이가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또한 날로 학식이 높아져 가는 창대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점차 큰 날갯짓을 시작하면서 스승 정약전과 제자 창대 간 사상적 이견의 골은 깊어져 간다. 정약전과 창대뿐 아니라 정약전과 정약용도 상호 생각에 있어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 하나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헐뜯고 비방하는 일이 없으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고발한다. 창대가 글 공부를 해서 출세하고자 한 것은 자신의 신분 상승과 딸린 식솔들의 윤택한 삶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임금을 보필하는 관직에 올라 청백리가 되어 백성을 돌보고자 했다. 영화의 전반부가 비록 유배중이지만 흑산도의 수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섬사람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후반부는 당시 고통받는 서민들의 생활상을 나타낸다. 창대가 진사에 합격하자, 그의 아버지는 관아의 관리를 창대에게 맡긴다. 그런데 창대는 마치 피라미드구조처럼 아래로 내려갈수록 수탈을 일삼는 관리들을 보고 실망한다.

 

흑백 영화의 연출력도 돋보인다. 이준익 감독은 앞서 흑백 영화로 제작한 ‘동주’(2016)에서 일제강점기 윤동주와 송몽규, 두 지식인의 저항 의식을 무거운 시선으로 그려낸바 있다. 같은 흑백 영화지만 ‘동주’에서는 흑에 무게가 실렸다면, ‘자산어보’는 섬의 절경과 소박한 인물들의 삶과 희망이 어우러져 ‘백’에 가깝다. 이번 작품에서는 울림이 있는 이야기에 수려한 영상미까지 담았다. 흑산 섬마을의 산수와 소박한 사람들, 실존했던 인물들을 통해 전달되는 시(詩)까지. 그 시대만이 가진 낭만과 우아함을 효과적으로 살려냈다.

 

우리사회는 서로 간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계층간, 세대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분노하면서 동시에 분열되고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역사영화는 언제나 관객들의 높은 인기를 얻는다.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섬 청년 창대를 통해 우리에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흑산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섬사람들의 따뜻한 인간미로 우리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준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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