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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영화-<웬디>(2021)

한국작가회의/영화연극음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1. 7. 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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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영화-<웬디>(2021)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나이가 든다는 의미를 잘 모르는 어린아이는 그저 그 시간에 집중한다. 특별히 몇몇 아이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아이는 그들이 놀고 시간을 보내는 바로 그때를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친구와 다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좋은 기억을 쌓아나간다. 그래서 유년기 좋은 추억이 하나쯤은 간직한다. 그 시간 그 모든 걸 함께한 어른은 아이의 해맑은 모습을 보고 자신의 마음에 기록한다. 언제든지 꺼내어 보고 그 당시를 추억하면서 자신의 깊숙이 담아두었던 자신의 유년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영원하던 유년기를 벗어나는 시기는 결국 찾아오며 누구도 예외는 없다.

 

청소년기가 되고, 어른이 되면 몸에 커지고, 아는 게 조금은 더 많아진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고, 자신만이 가고 싶은 방식으로 삶을 그리고 나아간다. 집을 떠나 새로운 곳을 모험하고 싶어지는 나이가 되면 결국 집 밖의 시간을 늘리게 된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는 건 아이일 때 가졌던 동심과 순수함, 천진함은 사라지는 걸 의미할까. 그렇지는 않다. 어쩌면 그 동심은 아직 어른이 되어 커진 마음속에 그대로 머무른다. 어른이 된 후 누군가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다가 문득 거울을 보면 나이가 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어른은 그렇게 나이 듦을 경험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유년기 시절의 동심을 지녔다.

 

피터팬을 웬디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영화 <웬디>

 

영화 <웬디>는 동심과 나이 듦에 대한 영화다. 특히 우리가 잘 아는 피터팬을 재해석하여 웬디(데빈 프랑스)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기본적으로 판타지 장르를 바탕으로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다룬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웬디는 기찻길 바로 옆 집에서 엄마와 더글라스(게이지 나퀸), 제임스(개빈 나퀸)와 함께 생활한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할 때, 웬디는 옆에 앉아 같이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더글라스와 제임스는 식당에 주변에서 놀거나 간단한 식당 일을 돕는다. 어찌 보면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이 집의 아이은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재미없는 일상이 아닌 뭔가 색다른 걸 경험해보고 싶은 욕구를 가졌다. 영화는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주로 식당 안에서 벌어지 일을 담았다. 마치 아이가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하듯이 관객도 집 밖에 무엇이 숨겨졌는지 궁금하게 만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 초반 세 아이가 잠들기 전 엄마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엄마의 어릴 적 꿈에 관한 이야기인데, 웬디는 왜 지금은 그 꿈을 이룰 수 없는지를 묻는다. 이에 엄마는 지금 하는 일과 상황에 만족하니까 더 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그 뒤에 바로 이어진다. 엄마가 나가고 웬디는 왜 엄마가 꿈을 실행하려 하지 않는지 혼잣말로 궁금해하는데, 더글라스와 제임스는 엄마는 늙었으니까 못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이에 웬디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이 일련의 장면은 이 영화가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제와도 관련되었다. 바로 나이 듦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거다.

 

우리가 이미 잘 알듯이 피터팬과 원더랜드의 아이는 나이가 들지 않는다. 영화 <웬디> 안에서도 우연히 기차에 탄 피터(야슈아 맥)를 발견하고 따라가는 웬디와 더글라스, 제임스는 늙지 않는 섬에 도착하고, 거기서 꽤 오래 머문 아이를 만난다. 이들 역시 나이가 들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놀이를 하며 계속 아이로 생활한다. 처음 그곳에 간 웬디는 처음엔 어색해하지만,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와 재미를 경험하고 나서는 완전히 그들과 동화된다. 나이가 들지 않는다는 그 자체가 주는 기쁨이 그들에게 에너지가 되어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만든다. 그 기쁨 안에서 섬의 아이들은 무척 행복하다. 그건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천진난만한 아이 그 자체의 모습이다.

 

대비되는 아이와 노인

 

그 섬에는 아이들 뿐 아니라 노인도 산다. 섬의 노인은 처음에는 아이였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갑자기 나이가 들어버린 이들이다. 영화 속 노인 중 한 명인 버죠(로웰 랜디스)는 몰래 친구에게 다가와 그들을 훔쳐보곤 한다. 아이는 보통 도망가며 그가 버조가 아니라고 외친다. 버조를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은 일종의 늙음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준다. 그들은 모두 버조가 과거 자신과 같이 아이의 모습이었던 또래 친구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가 나이 든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이유로 친구로 인정하지 않고 쫒아내 버린다. 그렇게 노인으로 변한 이들은 노인들끼리, 아이는 아이들끼리 분리되어 생활하게 된다.

 

 

 

사실 보조를 비롯한 노인들은 친한 친구를 잃거나 가슴 아픈 일을 겪고 나서 늙은 모습으로 변했다. 아픔을 경험하고 나서 철이 들고 조금 성장하듯이 아이들은 그런 아픔과 번뇌를 겪고 나서 조금은 다른 모습이 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들처럼 사춘기의 변화를 겪고 또 가족과 학교에서 다양한 일을 겪는다. 그리고 그중에는 상처 받고 슬픈 일도 생긴다. 그런 모든 일을 경험하다 보면 어느덧 어른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영화 속의 아이들은 금방 노인이 되어 버리지만 아이와 노인 사이에 어른이라는 시기가 존재한다. 영화는 그 모습을 생략하고 아이와 노인을 대비시키면서 과연 나이 듦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 노인들은 다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것이 동력이 되어 피터의 일행과 노인 일행이 대립하게 되기도 한다. 기존 우리가 아는 피터팬에서 피터팬과 후크가 대결하는 노인은 젊음을 얻기 위해 아이들을 잡아들이고, 피터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 둘의 대결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노인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려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들과 대립하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사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 노인은 조금씩 사람이나 사회에서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체력이 떨어지면 말 주변이 없어지고, 조용히 무언가를 관찰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노인은 아이들에 비해 말이 없다.

 

웬디가 제안하는 노인을 바라보는 태도

 

웬디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노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인물이다. 노인으로 변한 아이를 만나서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그들에게 같이 대화하고 놀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즉석에서 춤을 추며 그들과 어울린다. 어두운 표정만을 짓던 노인들이 웬디 주변에 하나둘씩 모여 춤을 추기 시작할 때, 그들의 얼굴에는 보이지 않았던 미소가 가득하다. 사실 노인들이 아이였을 때 노는 방법이나 느낌을 잊어버린 게 아니다. 그저 늙었다는 게 대한 실망감이 그들을 우울하게 만들뿐이다. 영화는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그들과 함께 어울릴 걸 제안한다.

 

 

젊음이라는 건 한번 잃으면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언젠가 늙어간다. 그 모습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부정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찾아온다. 영화 후반부 누군가가 늙어서 못한다고 이야기할 때, 웬디는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영화는 나이가 든다는 건 아주 자연스럽고 인정해야 한다는 걸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이 듦을 바라보는 우리도 그것이 부정적인 게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인 웬디도 엄마가 되고 자신의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든다는 건 어찌 보면 슬픈 일이지만, 그 나이 든 육체가 가진 마음만큼은 육체만큼 나이가 들지 않는다. 노인도 나름의 동심을 가지고, 그들만의 즐거움을 누릴 권리를 가졌다.

 

영화 <웬디>를 연출한 벤 자이틀린 감독은 데뷔작 <비스트>(2012)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던 신인 감독이다. 그는 두 번째 연출작인 <웬디>에서도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속에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렸고, 피터팬 원작이 담은 내용에서 좀 더 철학적인 주제를 끌어내어 영상화했다. 극적인 요소가 다소 떨어지고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영화가 조금은 심심하고 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을 관객에게 명확히 던지는 영화다.

[덧붙이는 글]

영화 <웬디>는 원작의 관점을 뒤엎는다. 미국 시골 철로변의 한 식당, 웬디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소녀다. 웬디는 쌍둥이 오빠 제임스, 더글러스와 함께 식당 옆을 지나는 화물열차에 올라 집을 떠난다. 웬디와 두 오빠는 나이 들지 않는 아이들의 화산섬에 도착해 피터 팬과 모험을 즐긴다. 화산섬의 영향력을 믿는 한, 아이들은 먹을 걱정, 나이 들 걱정 없이 산다. 이는 믿음을 잃어버리면 아이들도 나이가 든다는 뜻이다. 모험을 하다가 더글러스가 실종되자, 제임스는 슬픔에 빠져 오른손이 나이 들어간다. 피터 팬은 제임스의 오른손을 잘라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e메일로 만난 벤 자이틀린 감독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 인물의 핵심 정신을 살리되, 심오한 문제적 역사로부터는 해방시키는 게 우리의 사명이었다”고 말했다. 20세기 초반 원작의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요소는 제거하되 노화, 질병,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하는 피터 팬의 주제를 다시 써보겠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오로지 바느질을 하고, 가정을 돌보며, 남자아이들이 하는 모험을 옆에서 지켜보는 데 머물렀던 여자아이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존재했던 ‘웬디’를 영화 제목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늙지 않는 아이들’이라는 환상의 전제에 기반하지만, 배경은 의외로 현실적이다. 피터 팬은 마법을 부리지 않는다. 요정 팅커 벨도 등장하지 않는다. 웬디와 아이들은 어른이 없는 여름 캠프에서 위험하지만 흥미롭게 노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자이틀린 감독은 “보편적인 현실과 동떨어진 원작의 신화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싶었다”며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마주하는 영화가 돼야 했다”고 말했다. 요정의 마법과 비행은 자연의 경이로움, 거대한 화물열차로 대체됐다. 아이들은 하늘을 나는 대신 땀을 흘리고, 벌레에게 물리고, 모래밭에서 뒹굴도록 연출됐다.


피터 팬의 성격도 원작과 다르다. 원작의 피터 팬이 천진난만하고 용감한 백인 소년이었다면, 영화에선 거칠고 때로 독단적인 흑인 소년이다. 유년기를 즐기는 걸 넘어, 노화를 적대한다. 자이틀린 감독은 “피터는 굉장히 순수한 상태에 머물렀다. 다소 소시오패스적인 모습도 어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이틀린 감독은 “나이 든다는 사실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 피터 팬도 노인은 싸워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며, “늙는다는 건 위대한 모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웬디는 난폭한 피터 팬을 관찰하면서 그를 조금 더 성숙하게 이끌어주는 인물이다.


소설에서 그랬듯이, 영화에서도 웬디는 나이 들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다시 피터 팬과 함께하는 모험에 눈길을 돌린다. 시대가 흐르고 세대도 바뀌지만, 어떤 욕망은 보편적이다. <웬디>는 케케묵어 문제가 명확해 보이는 원작도 몇 가지 보정작업을 거치면 눈여겨볼 작품으로 거듭남을 보여준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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