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장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인 교권 사회에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사립학교에서 평교사로 일하다 공모를 통해 한성여중 교장으로 채용된 지 4년 10개월만이다. 고 선생은 지난해 사립학교법 개정 파동이 있었을 때에도 "사학법 개정"을 주장한 유일한 사립학교 교장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 8월 31일 교장 임기를 마치고 평교사로 돌아가 화제를 모으고 있는 고 선생이 CBS TV <정범구의 시사토크 누군가?!>(CBS-TV, 2일 오전 10시 20분)에 출연해 교장 재임 시절 학교민주화 과정에서 겪은 체험담과 교육개혁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고 선생은 전교조 추천으로 한성여중 교장에 부임한 뒤 4년 10개월간 교장직을 수행했다. 사립학교 사상 처음으로 한성여중 교사들이 교장을 직접 선출하는 제도를 도입해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해 고 선생은 사립학교 교장 신분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학법 개정 등 사립학교의 과감한 개혁을 주장해 '용기있는 커밍아웃'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고 선생은 교장 재임 시절에도 국어, 한문 등 수업을 지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음은 CBS-TV 시사토크 진행자와 나눈 고춘식 선생과의 인터뷰의 내용.
"수업을 계속 해온 것을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수업으로 학생들과 만나니까 자연적으로 학생들을 많이 알게 된다. 가르치지 않은 학생도 나에게 친근감을 갖고 있다. 적은 시간(4~5시간)이라도 교장, 교감 선생님이 수업을 해야 한다. 그렇게 대화가 있을 때 학생들이 (교장에게) 마음 속 얘기를 꺼낸다. 물론 수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감당할 수 없는 학생들도 한 반에 몇 명씩은 꼭 있다. 그러나 그 학생과 정상적인 관계를 어떻게 맺을까 고민을 나누면 서로에게 좋은 결과가 온다." - 교장실을 쓰다가 평교사가 되어 일반 교무실을 사용하실 텐데, 다른 선생님들이 불편해하진 않나? "처음에는 (내가) 수업하는 것을 선생님들이 싫어했다. 솔직히 좋아할 줄 알았다. 학생들과 직접 만나니까 혹시라도 안 좋은 소리 들어갈까봐 그랬는지 긴장하는 눈치였다. 1~2년 지나니까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교장을 하는 동안 단임으로 끝낸다고 스스로 약속했고 젊은 선생님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큰 부담이나 불편함은 없다. 후임 교장을 교사들의 투표로 선출했다. 일부 주장처럼 교장을 정년의 마지막 단계가 아닌 선출보직제로 하자. 교장이 끝나면 또 다시 교사로 돌아가자는 것을 실천했다. 후임 교장, 교감을 결정하는 과정이 한 달 반 걸렸다. 전체 교직원회의를 수차례 해서 선생님들이 결정한 뒤 그것을 이사회에서 승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는 우리 나라 교육사에 남을 만한 대단한 사건이다. 교장의 의지보다도 이 사회의 마인드가 중요했다. 이사회가 (교장) 임명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현재 임시이사 체제인데 장회익 이사장이 대단히 민주적인 분이다. 구성원들이 합의안을 가져와보라고 해서 결과를 전달하고 합의를 봤다." - 한성여중 교장에 공채로 채용되기 전까지 다른 학교에서 전교조 활동을 하셨다. 교권을 상대로 활동하다가 학교 책임자 역할을 5년간 했다. 교육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나? "막상 와보니까 반대 입장이 됐다. 교장으로 오면서 마음 속으로 다짐한 것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겠다' 솔직히 쉽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자유롭게 할 얘기를 다 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사실 교사들이 참 이상하다. 인간 고춘식과 교장 고춘식을 대할 때는 억양이 달라진다. 어조가 다르다. 공격적인 어투로 말하면 교장은 당연히 방어를 하게 되고, 항상 다수와 혼자라는 구도가 되니까 나도 억양을 높여 공격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서로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적인 학교는 그리 조용한 학교가 아니다. 오히려 더 말이 많다. 그 말들을 누구누구 몇 사람이 결정하지 않는 과정에서 학교가 성숙해진다." - 좋은 뜻에서 시작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잘못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종업식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다. 내일이 종업식인데 눈이 많이 와서 몇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종업식을 앞당기기로 결정한 얘기인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 "종업식을 마치고 젊은 선생님 7, 8명과 가볍게 식사를 했다. 한 분이 '왜 종업식을 하루 앞당겼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깜짝 놀랐다. '무슨 문제가 있냐? 다 좋아하지 않냐?' 했더니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종업식은 방학식과 달리 한 학년이 끝나고 담임과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시간이라는 설명이었다. 담임은 마지막 말을 준비해오고 학생들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선생님께 고마워한다는 말도 하는데 학생들과 갑자기 헤어져 너무 안타깝다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금방 사과했다. 정말 나의 생각이 짧았다. 그리고 임시직원회라도 열었어야 하는데 몇몇이 결정한 것도 문제였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교장은 말할 것도 없고 몇몇이 중요 결정을 내려서는 안되겠다고 깨달았다. 물론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결정에 대해 모두가 공감을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좋은 것이다." - 지난해부터 논란이 된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에 대해 사립학교 교장단과는 다른 견해를 갖고 계시다. 지난해 겨울 서울역 광장에 사립학교 교장들이 직접 모여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기도 했는데… "건학이념과 재산권 보호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건학이념은 이사들이 구현하는 것이 아니다. 건학이념은 교사들이 훌륭한 교육을 해서 학생들에 의해 구현된다. 개방형 이사 때문에 건학 이념을 구현하는데 문제가 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이사들은 서로 끈(이해관계)으로 묶여 있어 새로운 발상이 안 나온다. 토의과정을 거치는 것도 없다.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집단에서 창의성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건학이념 구현)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다." - '교사되는 길 그리 쉬운가'라는 글을 쓰셨다. 평소 교사가 평가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계시다. 한국교총뿐만 아니라 전교조도 교사평가제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우선 교사 양성과정이 너무 허술하다. 현재 교생실습을 1개월만 하는데 최소한 한 학기 혹은 1년을 해야 한다. 4학년 때 대학에서 가르쳐주는 것도 없지 않나? 솔직한 얘기로 등록금 때문인데 등록금은 대학에 줘라. 하지만 4학년을 보조교사로 보내면 교생이나 학교나 굉장히 도움이 된다. 교원평가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교원평가가 교육력 향상의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전교조는 교원평가를 반대만 하지 않는다. 교원평가 자체는 받아들이지만 어떤 평가가 필요한지 고민하는 걸로 알고 있다. 사립학교에 근무평점이라는 것이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학년 말 평가서를 쓸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선생님들을 완전히 일렬로 세워야 한다. 40명이면 1등부터 40등까지 다 매겨야 한다. 하지만 교육현장에서 교사 자질이 의심되는 사례도 있다. 얼마 전 울산에서 학부모 성추행 사건도 있었다. 교원평가보다는 부적격교사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학부모들의 불만을 해소해야 하고 실제 그런 교사는 퇴출시켜야 한다." - 서울대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셨다. '명예 부 권력 등 모든 것을 싹쓸이하는 위치에서 빚진 자의 자리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서울대는 왜 우리 나라의 수재들을 다 가져가려고 하는가? 그리고 다 가져가서 어떻게 했느냐? 묻고 싶다. 서울대학이 학생선발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는데 국민이 원하는 안도 못 내놓으면서 선발에만 올인 한다. 가르치는 일보다도 뽑는 문제에만 매달린다." - 구체적 실험으로 학교 현장을 바꾸어 가고 계시다. 그런 고민의 연장에서 작은 학년제를 주장하셨다. 교육혁신아이디어 최우수상도 받았는데 작은 학년제란 어떤 것인가? "몇 년 전만 해도 학교가 거대하면 선생도 자부심 느끼고 학생도 자부심 느끼고 학부모도 그랬다. 거대한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거대한 학교가 야만적인 학교다. 학교는 절대로 커서는 안된다. 아름다운학교 운동본부에서 활동하며 전국에서 잘 되는 학교, 모범적인 학교를 돌아보았다. 공통적으로 작은 학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작은학년제란 이런 것이다. 가령 한 학년에 8개 학급이 있다고 치자. 4개 학급씩 두 단위로 학년을 작게 나눠서 한 단위에 담임 4명, 비담임 2명 등 6명이 3년 동안 같은 아이들을 맡는 방식이다. (중략) 거창고등학교 교장선생님 인터뷰를 보았다. 거창고의 핵심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이라고 답했다.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진정한 교육은 거기서 나온다. 작은 학년제는 쉽게 말해 벌거벗는 것이다. 선생도 학생 앞에서 벌거벗고, 학생도 벌거벗고, 학부모도 벌거벗는 것이다. 그런 깊은 관계에서 인간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
![]() | |||||
| |||||
|
한 중학교 교사의 아름다운 정년 퇴임식 (0) | 2005.09.06 |
---|---|
10명에 7명꼴 자립형사립고는 '과외 천국' (0) | 2005.09.05 |
학비만 5천만원, '자립형 사립고는 귀족학교?" (0) | 2005.09.02 |
'교육부 지침' 논술중심 입시교육 부추겨 (0) | 2005.09.01 |
학생이 나서니 급식이 바뀌더라 (0) | 2005.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