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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이름난 산들은 벌써 수채화로 옷을 갈아입느라 바쁘다. 가을은 하늘이 가까운 곳으로부터 산을 잠재우면서
내려온다. 개옻, 북나무, 단풍나무를 시작으로 갈참나무, 물푸레, 머루, 칡덩굴 등... 여름내 푸르렀던 영혼들은 간 곳 없고 산 전체가 수채로
변한다.
지난 주말, 글벗들과 함께 강원도 오대산을 다녀왔다. 단풍은 어느새 정상 우듬지를 떠나 골짜기를 넘어 개울을 건너가고 있다. 우리 일행만 서둘러 단풍 길을 찾아온 줄 알았으나, 월정사 입구부터 관광객들이 붐벼 단풍 숫자보다 더 많을 듯싶다. 관광버스, 승용차, 등산객들이 한데 어울려 산은 벌써부터 몸살을 앓고 있다. 아니나 다르랴,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제자리에 머물러 앉아 옴짝달싹을 못한다.
이제부터 산행이다. 상원사까지는 약 10킬로미터, 평일 같으면 상원사 입구까지 차가 올라가 편하게 도착하는데 오늘은 걸어가야 한다니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사실 단풍만 두고 본다면 계곡을 따라 내려온 풍광만큼 아름다운 순간을 어디에서도 볼 수 없겠기 때문이다. 상원사에 내려다보는 단풍 조망도 볼거리지만, 골짜기를 따라 전개되는 단풍의 멋이 훨씬 더하다. 맑은 물, 수천 년을 굴러 내려온 집채만한 바위와 돌들, 그리고 새소리, 물소리, 산골짝을 돌아 나오는 시원한 바람과 골안개... 이 원시림 속을 차를 타고 붕붕거리며 휙휙 지나가다니 산에 대한 모독이며 불손이다 싶게 마음이 부끄러워 오른다.
잘 다듬어진 흙길을 오르노라니 가을 산행 정취가 훨씬 더하다. 흙길은 아스팔트를 깔지 않아 말랑말랑 부드러워 발바닥이 간질거리고 몸이 저절로 가벼워온다. 문명의 더덕이를 입히지 않고 산 맛을 그대로 살려낸 상원사 스님들께 감사하고 싶다. 내 생각 같아선 아예 초입부터 차량통제를 해 산이 옛 모습 그대로 살아 숨을 쉴 수 있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산하는 길에 '한암스님'을 찾아 뵙고 삼배를 올렸다. 1941년 초대 종정(宗正)으로 추대되어 4년 동안 조계종을 이끌었다. 1·4후퇴직전, 인민군들이 사찰을 근거지로 국군에게 많은 타격을 입히는 바람에, 오대산 안의 모든 사찰을 불태워버렸으나, 상원사만은 불에 타지 않았다. 밤중에 군인들을 이끌고 상원사로 와 절을 불태우겠다 했다. 스님은 잠깐 기다리라 하고 가사와 장삼을 갈아입은 뒤 법당으로 들어가 좌정하고 불을 질러도 좋다고 했다. 장교가 나올 것을 강요하자, "나는 부처님의 제자다. 부처님은 이런 경우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장군의 부하다. 그러니 당신은 장군의 명령대로 어서 불을 질러라"했다. 장교는 스님의 불심에 감화를 입어, 부하들에게 법당의 문짝만을 떼어 불사르게 한 뒤 돌아갔다. 1·4후퇴 때에도 오대산의 모든 승려가 피난하였으나, 스님은 남아 상원사를 지켜냈다.
스님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을 되뇌이며 가을 산을 되돌아 보니, 그만 내 온 몸에도 분홍색 단풍물이 곱게 물들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붉은 물이 툭툭 흘러내릴 것만 같다. 오대산은 단풍도 아름다운데 옛 스님의 고결한 숨결이 함께 숨쉬고 있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우리들에게 안겨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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