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수준별 이동학습, 교사 학생을 망치는 일

박종국교육이야기/함께하는교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10. 17. 01:58

본문

728x90
영어, 수학 수준별 수업이라고?
텍스트만보기   류원호(skysea95) 기자   
영어와 수학 교과에 대해 이른바 '수준별 이동 수업'을 다음 교육 과정에서 정착시키고자 한다는 보도가 있다. 기사를 읽고 조금 궁금했다. 지금도 '수준별 이동 수업'을 하고 있는데, 왜 난리인가.

영어와 수학 교과는 많은 학교에서 이동 수업으로 가르친다. 반을 나누기는 그저 기호를 붙여 나누지만 대체로 '상-하'나 '상-중-하' 식으로 갈려 있다. 결국 속살은 '우열반'이다.

본래 '수준별'이란 말은 '개인별'이란 말과 통한다. 곧, 학생마다 가르침을 익히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기에 나온 말이다. '수준별 학습'을 통해 기대하는 결과는 모든 학생들이 일정한 목표에 이르게 하는 '완전 학습'이다.

그런데 현재의 교실에선 그와 같은 '개인별', '개별화' 수업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원인은 다양하다.

첫째, 학급 구성이 개별화 수업과 맞지 않다. 교육학을 배운 사람들은 알겠지만 적어도 15명 안팎으로 학급 구성원을 줄여야 한다.

둘째, 교사들이 힘겹다. 이것은 교사 개인의 자질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교사를 둘러싼 여건의 문제이기도 하다. 교사들이 개별화 수업을 하려면 많은 힘이 필요하다. 학생을 따로따로 모두 알아야 한다. 교사에겐 참 힘겹고 번거로운 일이다.

더불어 교사에게 지운 짐이 많다. 교과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교사는 없다. 학생 상담과 공문 처리로 교실에 늦게 들어가는 경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때로는 아예 수업을 포기하기도 한다(도대체 보고 사항을 하루 전이나 당일에 공문을 보내 처리하라니 어쩌란 말인가?).

셋째, 학부모의 차별의식이다. 이것은 학업 성적이 높은 학생의 부모일수록 더 잘 드러난다. 내 아이가 '공부 못하는' 아이들 속에 있다는 것을 불편해 하거나 불안해 한다. 내 아이가 더 '향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학습하는 힘이 다른 학생들을 모아 놓고 가장 높은 수준의 내용만 설명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오히려 나눔의 태도를 배우고 자신이 배운 바를 정리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어떤 교사나 학부모는 지금 이뤄지는 이동 수업에 만족감을 드러낸다. 교사 입장에서는 참 편리한 방법이다. '동질 집단'을 가르치는 것이 '이질 집단'을 가르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다. '수준별 교육'을 '집단적 교육'으로 보는 실수가 드러난다. 집단을 기준으로 '수준'을 가른다면 지금의 '이동 수업'이 옳다. 그러나 '수준별 교육'은 '집단'의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기에 문제와 부작용이 생긴다.

첫 번째 부작용은 학생들의 마음이 다친다는 것이다. 학생들도 다 안다. 자신이 어떤 수준인지. 누가 말해주기 전에 스스로 알고 느낀다. 그런데 이동 수업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 의해 자신의 수준이 결정되면 '낮은 수준'의 학생들은 그것을 통해 상처를 입는다. 상처의 흔적은 다양하다. 공부를 포기하거나, 치열한 경쟁심에 빠지거나, 자신감을 잃거나, 누군가를 한없이 미워하거나 등등. 같은 반 학생들끼리 둘로 또는 셋으로 갈려 흩어지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럽다.

두 번째 부작용은 학급 경영이 어렵다는 점이다. 교과 수업에서 생긴 틈은 학급 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곧 학급 구성원끼리 마음을 뭉치지 못한다. 그 틈을 교사가 천신만고의 애를 써서 메우지 못하는 그해 학급 경영은 매우 어렵게 된다. 학급의 학생 임원들이 고생을 할 것은 뻔하다.

세 번째 부작용은 교사가 교수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이다. 높은 수준의 학생들은 교수 내용에 대한 이해와 학습 참여 태도가 좋다. 교육이란 행위가 교사와 학생의 상호 작용이란 점을 생각하면, 이럴 때 교사도 힘을 내어 가르치게 된다.

그러나 낮은 수준을 가르치면 이야기가 다르게 된다. 교사는 쉽게 가르친다고 하는데도 학생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면 교사는 막막함을 느낀다. 막막함을 스스로 깨기 위해 연수를 통해 갱신하는 교사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또 다른 다수의 교사는 가르침을 포기하거나 학생들을 방치한다.

교사는 교사대로 수업을 하고, 알아듣는 건 학생의 책임으로 넘긴다. 이런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 건 구조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낮은 수준'의 학생들을 대충 가르치더라도 그 학생들은 이전까지 '낮은 수준'의 성취도를 보였기 때문에 또 다시 '낮은 수준'의 결과를 내도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럼 그렇지'라고 말하고 지나가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밖에도 학부모 차원의 문제도 있다. 하나하나 말하면 글만 길어지므로 생략한다. 다만 '낮은 수준'의 반에 편성된 학생의 부모가 보일 반응은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준비하고 있는 8차 교육 과정에서 영어, 수학만 '수준별 이동 수업'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교육과 학생을 망치는 일이다.

'수준별 수업'의 알맹이는 '개별화 수업'이다. 그것을 지원할 의지가 없는 교육 당국이나 그 수고로움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교사와, 자녀의 우월성을 뽐내고 싶은 학부모가 담합해 '수준별 이동 수업'을 제도화한다면 이는 '교육의 카스트'가 될 것이라고 본다.

'높은 수준'의 학생들이 '낮은 수준' 반으로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므로. 더불어 다른 교과는 빼고 영어, 수학만 '수준별'로 이동 수업을 한다는 것은 합리성이 없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다른 교과에서도 '이질 집단'을 교육하는 어려움은 똑같이 느끼기 때문이다.

교과의 집단적인 '수준별 이동 수업' 방법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파쇼적 발상이다. 현실의 계급/계층을 교실에 끌어들이는 일이며 부모의 계급 차이를 다음 세대의 자녀에게 고스란히 물리려는 책략이다. 교사들이 교사로서의 사명과 약간의 불편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아니 교사라면 이런 제도를 거부해야 한다.

학생들을 수고롭게 오가게 하지 않고도 '개별화된 수준별 수업'은 가능하다. 특히 이런 수업은 '활동 중심으로' 이뤄질 때 더 활발하고 효과가 있다. 지금 이뤄지는 논의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우리 사회의 계급적 차이를 더욱 굳게 만들려는 이런 시도는 거부하는 것이 마땅하다. 올바른 교사라면, 올바른 학부모라면, 올바른 교육 행정가라면 말이다.
<인터넷 한겨레> "한토마"에 실었던 글입니다.
2005-10-16 12:39
ⓒ 2005 OhmyNews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