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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는 '유령들 천지'였네.

박종국교육이야기/함께하는교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10. 1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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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는 '유령들' 천지였네
유령이사·유령이사회·유령교장... 사라지지 않는 황당 장면들
텍스트만보기   윤근혁(bulgom) 기자   
[장면 1] 죽은 지 1년 5개월 된 이사가 이사회 참석

그날 그 이사회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다섯 명으로 적혀 있었다.

2005년 3월 31일 오전 11시, 사립재단인 경기 광명 ㅈ학원의 재단이사장실. 차아무개 이사장이 재단이사회를 주재하면서 "회계결산에 대해 의견이 있으신 분은 말씀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황아무개 이사가 다음과 같은 다섯 글자를 토해냈다. "재/청/입/니/다."

▲ 2005년 3월 31일 ㅈ학원이 작성한 이사회 회의록. 1년 5개월전에 사망한 황아무개 이사의 날인(오른쪽)과 함께 황 이사가 '재청합니다'라고 발언한 내용(왼쪽 맨 위)이 보인다.
ⓒ2005 윤근혁
A4용지 5장 분량으로 된 이 학교 재단이사회 공식 회의록 맨 마지막 장을 보면 황아무개 이사의 목도장도 찍혀 있었다. 회의록이 진품임을 보증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사장의 처가 쪽 친척이기도 한 황아무개 이사는 이미 2003년 10월 사망한 인물이었다. 이 학교 청소원이었던 그가 죽은 지 1년 5개월만에 이사회에 참석해 떳떳하게 발언도 하고 날인까지 한 것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말은 이런 일을 놓고 하는 말"이라고 사립학교법개정국민운동본부 김행수 상임사무국장은 지난 13일 혀를 찼다.

지난 11일 교육부 국정감사장에서 지병문 열린우리당 의원(교육상임위)은 "이미 사망한 사람이 이사로 이사회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되어 있다"고 ㅈ학원의 이상한 이사회 회의록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 실체가 바로 위와 같은 것이었다.

[장면2] 7년 3개월 교직생활은 유령이 했다?

경기교육청은 지난 12일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한광학원 소속 ㅎ여고 홍아무개 교장의 자격을 박탈하라고 지시했다. 교직경력을 조작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교장이 되려면 최소한 교직경력 9년이 필요한데 이 교장은 3년 9개월이 전부인 것으로 드러난 데 따른 조치였다. 이 교장은 96년 경기교육청에 교장직을 승인 받기 위해 신청한 경력서에 교직경력 11년 중 대학원 박사과정, 휴직기간까지 끼어 넣는 수법으로 자그마치 7년 3개월의 경력을 '뻥튀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지역 교육시민단체들이 이 사학재단의 이사장 사위이기도 한 그의 경력조작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98년 8월. 이 학교 동문들은 경기교육청은 물론 청와대에까지 수십 차례 걸쳐 진정서를 냈다고 한다.

이 학교 김 아무개 교사는 "홍 교장이 근무했다고 주장했을 당시 월급 담당 행정직원이 '거짓'이라고 증언까지 했는데도 지역토착세력과 경기교육청은 사실을 은폐해왔다"면서 "이제라도 경기교육청이 고해성사를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지난 해 11월 명예퇴직 교원에게 주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서울 ㅁ고 김아무개 전 교장에 대한 의혹도 입길에 오른 바 있다. 올해 결국 학생 성적조작 사실이 드러나 지난 9월 말 구속된 김 전 교장 또한 재단이사장의 장남이었다.

대통령상의 자격 조건은 28년 이상 교직 근무자.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에 교직 경력 28년 11개월로 보고된 김 전 교장의 실제 근무기간은 28년 11개월에서 최소 5년 이상 빼야 한다는 것이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과 이 학교 교사들의 주장이었다.

이 학교법인은 지난 해 8월 서울시교육청에 보고한 '공무원인사기록요약서'에서 '김 전 교장이 80년 4월 1일부터 85년 4월 2일까지 학교 교사로 근무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확인 결과 이런 경력 내용은 거짓이었다"고 최 의원 쪽이 밝힌 바 있다.

최 의원 쪽은 "해당 기간 동안 발행된 졸업앨범에도 나와 있지 않으며 교직원들도 같이 근무하지 않았다고 증언하는 등 서류상으로만 일한 것으로 되어 있는 '유령교사'였다"고 주장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일부 재단이사장의 자녀가 학교 교장 직을 물려받기 위해 이런 '유령경력' 소동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장면 3] 143번의 이사회는 유령이사회였다

지난 해 9월 초, 김포대학 법인이사회 회의록을 펼쳐 본 교육부 감사반(반장 황건수) 5명은 깜짝 놀랐다.

이 회의록엔 96년 2월부터 2004년 5월까지 8년 동안 모두 145번의 이사회가 열린 것으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본 결과 이사회를 직접 개최한 것은 단 두 차례뿐. 자그마치 143번에 걸친 회의록이 허위로 작성된 것이다. 이 대학은 98.6%의 회의록 허위 작성률을 기록한 셈이다.

지난 해 8월 28일치 제 502차 회의록엔 "전○○에 대한 학장 연임을 심의·의결한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이 또한 가짜였다. 이날 이사회가 열리지 않은 사실을 교육부가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대학 학장은 2003년 9월 재취임을 통해 학교 운영책임을 맡은 바 있다. 하지만 '학교법인이 설치한 사립학교의 장 및 교원의 임면에 관한 사항은 이사회에서 심의·의결한다'는 사립학교법 제 16조의 잣대로 보면 '위법 학장'인 것이다.

이 대학의 건학이념은 '창의, 적극, 정도'. 이사회 회의록 허위 작성 과정에서 창의성과 적극성은 발휘했지만 '정도(正道)'에서는 한참 엇나가 버린 사실을 지난해 12월 9일 공개된 '교육부 김포대학 감사보고서'는 증명하고 있었다.

[장면 4] 유령이사회와 유령교장 실태에 대한 엇갈린 주장

유령이사회, 유령교장의 문제는 몇몇 학교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게 사립학교법 개정을 요구하는 교육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사립학교법개정 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 11일 낸 성명에서 "지금도 수많은 학교에서 이사들의 도장을 행정실에 맡겨놓고 허위로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한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사학분규로 감사를 받은 경기 K여대, S고, I학원, D학원, K대, C고 등에서 유령이사회와 유령 교장이 사실로 확인된 바 있다.

최낙성 범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유령이사 문제는 사립학교법 개정안 가운데 최대 쟁점인 개방형 이사제가 왜 도입되어야 하는지를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면서 "현재 체제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는 이사회가 언제 어떤 내용으로 열리는지 알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최 집행위원장은 "개방형 이사가 1/3만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행정실장이 도장만 가짜로 찍는' 유령이사회는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사학재단은 개방형이사제 등으로 사유재산을 빼앗지 말고 자율정화작업에 맡겨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올해 6월 27일 사학단체들이 연 '사학분야 투명사회 협약 체결 자정대회' 모습.
ⓒ2005 윤근혁
반면 올 해 6월 '사학분야 투명사회 협약 체결 자정대회'를 연 사학재단 쪽에서는 "일부 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갖고 사립학교법 개정 근거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태도를 나타냈다. 이들은 자정대회를 최근까지 지역별로 펼쳐오는 한편, 내부 중앙조사단을 발족하는 등 자율자정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국사립중고등학교 법인협의회 이현진 총괄부장은 "전체 사학법인이 1200개에 학교만 3000개가 된다"면서 "몇몇 학교의 유령이사회와 유령 교장 문제가 터진 것은 유감이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부장은 "지금은 이사회 회의록에 도장을 날인하고 서명까지 하도록 권고하는 만큼 가짜 이사회는 거의 근절되었다고 보면 된다"면서 "개방형 이사제를 두어 지배구조를 빼앗는 방식보다는 사학의 자율정화에 맡기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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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 가운데 일부 내용은 <오마이뉴스> 2004년 12월 10일치에 쓴 '유령이사회에 이어 유령교사까지'(윤근혁)란 기사를 가져왔음을 밝힙니다.
2005-10-14 09:34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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