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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믿기지 않는 일은, 글씨를 쓰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오른팔을 잃은 후, 또 온전치 않은 왼손으로 글씨를 쓰기까지 어떤 세월이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 신고의 세월을 아무리 헤아려 보아도 믿기지가 않건만 선생님은 그간에도 아름다운 우리 글자체를 작품으로 남겨 놓았더군요.
선생님, 이번이 두번째 가을 잔치였다지요? 개곡분교 주변 마을주민분들과 함께 씨앗을 뿌리고 친환경농사를 지으셔서 수확한 것들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성들여 땅을 일구시고 자연에 감사한 마음으로 수확한 것들로 차린 잔치마당은 참으로 풍요로웠습니다. 직접 떡메를 쳐서 만든 인절미며, 마을 어른들이 만든 손두부와 싱싱함이 그대로 느껴지던 갓 담은 김치, 잔치를 위해 마을 분들과 잡은 돼지고기 편육에 따끈한 팥죽 한 그릇까지. 하나하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음식들은 고향의 맛을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참, 개곡분교의 재롱둥이 '몽실이' 소식은 정말 안 되었습니다. 독사에 물려서 시름 시름 앓다 죽었다구요. 아이들도 마음 아파했습니다. 작년에 염색체험과 더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몽실이랑 놀았던 일이라며 개곡분교 강아지를 못 잊어 했거든요. 선생님, 아이들을 위해 다시 강아지 한 마리 데려다 놓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이 가시는 걸음마다 운동장에서 전시실로 또 숙소로 향하는 작은 오솔길을 졸랑거리며 따라 가던 몽실이의 귀여운 걸음이 저도 많이 생각납니다.
집짓고 난 작은 나무토막들을 모으셔서 그것에 줄을 매달고 거기에 그림을 그려 놓으니 멋진 목걸이도 되고 핸드폰 줄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그것을 제방 앞에다 걸어놓고 들여다 보며 즐거워합니다. 쓰고 난 나무토막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 너무 신기하답니다. 거실 가운데 붙여놓은 사인펜 그림은 우리집 두 아이 얼굴과 매우 흡사하게 그려준 이동수 화백님의 작품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뭐가 될 것인지를 묻고는 그 꿈을 꼭 이루라는 문구를 새겨 넣으셨습니다.
모닥불이 신기한지 연신 불을 뒤집고 마구 장작을 집어 넣어 불을 꺼뜨리곤 하다가 다시 불길이 오를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더군요. 어른들은 '불장난 하면 자다가 오줌 싼다'고 점잖게 타이르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오히려 흐뭇한 웃음을 짓곤 했지요. 그러고 보니 이번 행사제목이 '우리들의 꿈 바람전'이었네요. 운동장 가득 쏟아져 내리는 가을 햇살을 가르며 뛰어 노는 아이들, 공동체를 이루어 농사를 짓고 함께 나누는 가운데 생명과 환경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한 이번 행사의 취지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글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왔을 때 옛 방식 그대로 집을 지을 거라던 그곳에 아늑한 여행자용 침실이 놓여 있었습니다. 황토염색을 한 침구류며 창호지를 바른 여닫이문에 들보가 들여다보이는 천장에 선생님의 섬세한 손길이 여기 저기 묻어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참 목수'를 만나기가 어렵다고 하셨지요. 전통적인 것, 환경지향적인 것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하신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라져 가는 그것들을 마을공동체를 통해서 하나씩 살려 나가시려는 선생님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달걀 꾸러미 만들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짚을 엮어서 달걀 꾸러미를 만드는 일이 처음이라 쉽지 않았습니다. 가르쳐 주시는 강사 분을 따라 흉내를 내 보았지만 처음엔 실패였습니다. 두번째는 그럴 듯하게 만들어서 '스승을 능가했다'라고 가르쳐 주신 분이 농담삼아 얘기를 건넬 만큼 깔끔한 달걀꾸러미를 만들어 냈지요. 그뿐만 아니라, 나중에 오신 분들께는 제가 직접 시범을 보이고 한수 가르쳐줄 정도로 기술이 늘었답니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는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 위로 난 계단을 올라 선생님의 숙소 맞은편 '뒷간'으로 데려갔습니다. 도시의 수세식 변기에 익숙한 아이들에겐 옛날 방식의 푸세식 뒷간이 매우 낯설었는지 처음엔 무서워하더군요. 아, 그런데 개곡분교의 푸세식 화장실은 그 유명한 선암사 뒷간에 못지 않았습니다. 다만 규모만 작을 뿐, 앉아서 일을 보는 눈높이에 맞춰 앞쪽이 뚫린 뒷간은 개곡분교 앞마당과 그 건너 앞산이 다 건너다 보였습니다. 그곳에 가을이 깊어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비오리들이 헤엄치며 놀던 개울가는 꽃핀 갈대들로 무성하고, 개울 너머 추수를 끝낸 논배미엔 가지런히 낟가리가 쌓여 있었습니다. 논이 끝나는 곳엔 빨갛게 단풍든 나무들이 한 줄로 나란하고 그 건너엔 잣나무가 푸르게 군락을 이룬 앞산이 물결치듯 능선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개곡분교 뒷간에 보이는 풍경이 그리 아름다우니 선생님이 지은 뒷간이야말로 개곡분교의 명물입니다. 뒷간을 나오다 나란히 놓여 있는 플라스틱 통을 발견한 아이가 '이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똥통', '오줌통'을 아이가 보았던 것이지요.
선생님, 잘 먹고 잘 놀고 왔습니다. 더불어 함께하는 공동체사회를 지향하는 선생님의 취지를 또한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두번째 행사가 알찬만큼 세번째도 그리고 오래 오래 '아름다움 만들기'행사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그때 다시 찾아 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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