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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4일 이라크 저항세력이 감행한 바그다드 중심부 팔레스타인호텔 연쇄 자살폭탄 테러 소식을 접한 동화작가 박기범(33)은 요즘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인 2003년 2월부터 그해 8월까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선을 넘어 네 차례나 이라크를 오가면서 만났던 이 아이들이 노는 주무대가 바로 팔레스타인호텔 부근이기 때문이다.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박기범'이란 이름은 어느덧 '동화작가'보다 '반전평화운동가'로 인구에 회자된다.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문제아>(창비)가 30여만 부나 나간 베스트셀러이자 지금도 꾸준하게 팔리는 스테디셀러임에도 지금은 반전평화운동가의 이미지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런 그가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는 '인간방패'였던 이야기,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담아 '박기범의 이라크통신'이란 부제를 단 <어린이와 평화>(창비)를 냈다. 때마침 그가 사는 경북 울진에서 진행된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탁발순례단에 일주일간 참가했다가 막 돌아와 서울에 볼일을 보러온 틈을 타 지난 4일 인사동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감축'이란 말로 물 타기 하지 마라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동의해준 파병기간이 끝나면 당연히 전 병력이 이라크에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파병 재연장안' 어쩌구저쩌구하면서 계속 이라크에 눌러앉을 태세입니다." 박기범은 책 얘기보다 지금 당장 발등의 불인 '이라크 파병 재연장안'의 국회통과를 저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지난 6월에 재파병을 위한 부대 편성이나 예산 확보까지 끝났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이툰 부대 병력을 1천명 감축하느니 하는 말로 물 타기 하면서 이라크 파병 '재연장안'을 통과시키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그는 약간 흥분했다. 올 연말까지 3600명의 병력을 파병하기로 한 법안에 따라 철수하면 그만이지 연장은 무슨 연장이냐고 했다. 그리고 '연장'이란 낱말이 갖는 함정, 이를테면 2년까지 파병할 수 있는데, 우선 1년만 해보고 나서, 상황이 그러하니 나머지 기한까지 연장한다, 이런 식으로들 받아들이는데, 그건 아니라는 것. 해서 이번에 재연장 운운하는 것은 분명히 '재파병'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누가 뭐래도, 무슨 말로 포장해도 우리는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 전쟁범죄국입니다. 이라크에 침략 군대를 보내면서 우리는 이미 야만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날 곡기를 끊으며 용서를, 평화를, 철군을 바랐습니다. 물론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세계 어느 나라가 재파병을 결의했습니까.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일본조차도 아닙니다. 재파병 기도를 철회하는 것만이 그 죄를 조금이라고 더는 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작년에 격렬하게 파병 반대 운동하던 그 열기가 이번에는 어쩐지 많이 식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도 했다. 선생님이 문제아라고 하니까 '문제아'?
"이라크 전쟁을 직접 겪었던 작은 한 사람이 헤매면서 던졌던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다른 분들한테도 저처럼 그렇게 절실하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서 책을 냈습니다. 책을 내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다시 읽으면서 못나고 부끄러운 대목이 많았지만 그때의 고민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라크 전쟁이 나던 해인 2003년 2월28일~3월5일, 3월13일~17일, 4월2일~12일, 6월20일~7월31일 네 차례 바그다드를 넘나들며 겪었던 전쟁 체험을 기록한 이 책의 제목은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안타까워하며 만들어진 평화행동의 모임 이름 '어린이와 평화'에서 따왔다. 스물한 개의 크고 작은 단체와 학부모, 교사, 작가들이 뜻을 함께 한 이 모임은 박기범이 전쟁을 막기 위한 인간방패를 자임하며 이라크로 떠나자 '박기범의 이라크 통신(바끼통, cafe.daum.gibumiraq)'으로 자연스레 이어졌고, 박기범은 이곳을 통해 이라크 소식을 전했다. 이후 바끼통은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보도의 장이자 평화를 이야기하는 논의의 장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동화 <문제아>에서 "선생님이 문제아라니까 문제아"라는 사회적 통념과 선입견에 맞서며 아이들이 본디 가진 생기와 힘을 믿었던 '소처럼 맑고 큰 눈을 지닌, 소처럼 부지런하고, 소처럼 착하고, 소처럼 겁이 많은' 그가 '이라크는 손봐야 할 나라'라는 미국의 주장이 일방주의적 편견이고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온몸으로 증언하는 다큐멘터리다. 승용차 버려야 파병 막을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이 석유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박기범은 그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잡지 <작은책>(2004년 8월호)에 실은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을 막을 수 있다'는 글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했다. "석유를 빼앗으려고 일으킨 전쟁을 막겠다고 피켓을 들고 시위하러 나가면서 차를 타고 가는, 그래서 결국 그 석유장사꾼들의 장사를 도와주는, 그런 모순적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평화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집회가 끝나고 나서는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을 맥도날드로 데려가서 햄버거를 사 먹이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박기범은 설명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평화를 준비한다고 해온 것이 전쟁이 터지면 그제야 피켓 들고 '전쟁 하지 마라'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전쟁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다 말았죠. 그래서 전쟁을 벌이는 자들의 탐욕의 고리를 끊어주는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박기범의 주장은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전쟁에 필요한 비용을 만들지 못하도록 자본의 증식을 막아주는 그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 가령, 석유자본의 증식을 막는 길은 석유 장사가 안 되도록 하는 것이고 그것은 석유 소비를 줄이는 것이므로 승용차를 타지 않는 것과 같은 실천적 행동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삶을 바꾸자고 했다. 이라크 개전일인 3월20일 으레 있는 반전평화집회에 해마다 참석하던 박기범은 올해는 참석하지 않고 대신 일주일을 '전쟁 반대 주간'으로 정하고 집에서 전기와 가스 같은 석유 관련한 것들을 전혀 쓰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이라크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 마음이 답답하다고 말하는 박기범은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든 살아 있어 달라고 호소한다. 살아 있는 게 최고, 최선의 저항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침략할 당시 침략을 반대했던 일본 국민들 역시 침략군의 백성일 수밖에 없고 우리가 그들을 일본인으로 통틀어 어떤 눈으로 대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이라크 국민들에게 우리 얼굴이 어떻게 비춰질지를 생각해달라며 재파병 반대에 적극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없다!"고 말하는 그는 마지막으로 이라크에 들어가기 위해 비자를 받을 때 기자도 의사도 아니지만 그냥 '이라크에 가고 싶다'고 하자 "그런데 당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다고 그토록 저 땅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인가"라는 요르단 주재 이라크 대사로부터 받았던 질문에 대한 답이 지금의 그의 삶을 설명해주는 것 같다.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쓰러진 아이가 있다면 내가 들쳐 업고 뛰겠다. 피 흘리는 아이가 있다면 아이의 피라도 닦아주겠다. 제발 내가 당신네 나라 국경을 넘을 수 있게 해달라." 그래서 그는 전례 없이 대사의 직권으로 비자를 받았고, 더불어 몇 명이 함께 비자를 받아 이라크 국경을 넘었다. 지금은 이 땅에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이라크에 가 있는 박기범.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길에서 오고가다 우연히 마주쳤다면 유난히 선명한 쌍꺼풀 하며, 오뚝한 콧날하며, 까무잡잡한 피부가 영락없는 동남아 이주노동자인 박기범. 어느새 그는 이라크 사람을 닮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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