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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0년이 흐르면 더 나아지겠죠"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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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0년이 흐르면 더 나아지겠죠"
성폭력특별법 제정 10주년 맞은 한국성폭력상담소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송민성(zzaru0715) 기자   
▲ 성폭력 뛰어넘기에 참여한 일본인 관광객 메그미 이와시게씨와 후미에 모리노씨는 "일본에서도 성폭력 피해자들이 쉬쉬하는 일이 많다"며 "성폭력 피해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니 피해자들이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4 송민성
줄넘기를 넘으며 성폭력을 넘으며

"하나, 둘, 셋… 아홉, 열!"

왁자지껄 웃음이 터진다. 줄을 열 번 이상 넘으면 기념품을 주는데 계속 열 개의 문턱에서 누군가의 발이 걸리고 만다.

"아휴, 나 다리 풀려."

"성폭력을 뛰어넘는다는 마음으로 힘차게 다시 한 번 해봐요."

기회는 몇 번이고 주어진다. 줄넘기를 하는 사람, 줄을 돌리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줄을 넘는다. '하나, 둘, 셋'을 세며 성폭력도 뛰어넘는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성폭력특별법) 제정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4일 늦은 2시 인사동 남인사 마당에서 열렸다. 성폭력특별법 10년 역사를 되짚어보는 자료와 사진 전시, 성폭력을 뛰어넘는 줄넘기 등으로 구성된 이날 행사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시민들이 참여해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낯설고 무시무시한 단어, 성폭력'

▲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
ⓒ2004 송민성
이를 지켜보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 이미경 소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91년 상담소(초대소장 최영애)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성폭력'이란 말은 낯선 용어였다. '성폭력상담소'라는 명칭을 두고 "왜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쓰느냐"고 우려하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여성피해상담소라든가 좀더 부드러운 표현을 택하라는 뜻이었겠죠. 하지만 성폭력 생존자(이 소장은 수동적이고 약한 의미의 '피해자'라는 말 대신 피해를 극복하고 이겨내 살아남는다는 자부심과 희망을 담은 '생존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들이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성폭력'이라는 말을 넣었죠."

개원을 하고 전화를 개통하자마자 상담전화가 쏟아졌다. 성폭력으로 고통받는 생존자들의 수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웃집 아저씨에게 성폭행당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91년), 자신과 어머니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의붓아버지 살해사건(92년)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생존자들을 위한 상담활동이 얼마나 필요한지 또 한 번 실감했다.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는 모두 성폭력"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상담뿐만 아니라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사건 공동대책위원회와 같은 제도적·사회적 차원의 활동에도 앞장섰던 것은 '제도와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구성원들의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고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어느 정도 달라졌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아쉽기만 하다.

"성폭력에 대한 정의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성폭력이란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에 해당하는 모든 상황을 의미해요. 성추행과 성희롱도 다 성폭력이구요. 그러나 아직도 성폭력을 성관계로 연결시켜 보는 관점이 강해 생존자들이 2차 피해를 입는 일이 많습니다."

성폭력 전담수사관, 검사제와 영상물 증언대체를 법으로 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생존자들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배제되고 경찰과 검사에 의해 2차 피해를 입는다. 생존자 상담의 대부분이 사후처방이며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이나 연구사업을 하고 싶어도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 성폭력특별법 3차개정안은 피해자가 13세 미만이거나 신체·정신장애로 사물변별 및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경우에는 진술내용과 조사과정을 영상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2004 송민성
"당당하게 일어서요, 우리가 도울 테니"

특별법을 제정한 지 꼬박 10년이 흘렀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성폭력의 개념을 새롭게 정하고 친고죄의 범위도 조정해야 한다. 여성만을 피해자로 보는 강간 규정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이 소장은 더 큰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다.

성폭력특별법 10주년, 무엇이 변했나

1994년 제정된 성폭력특별법은 성폭력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법제화함으로써 성폭력을 정조와 순결에 관한 죄로 치부하는 사회적 편견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대부분의 성폭력범죄(강간 등에 의한 치사상죄, 강도강간 등 제외)가 피해자가 직접 고소하도록 하는 친고죄이던 것을 어린이, 장애인 피해자와 근친에 의한 피해 등의 경우는 직접 고소하지 않아도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형법에 없는 친족간 강간·강제추행, 장애인에 대한 준강간, 통신매체이용음란 등을 처벌대상으로 규정해 성폭력의 범위를 확립시키고자 했다.

또한 1997년, 1998년, 2003년 3차에 걸쳐 법안을 개정하여 친족의 범위를 4촌 이내의 혈족, 2촌 이내의 인척으로 확장했고(이전에는 4촌 이내의 혈족으로 제한),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가해자도 가중처벌을 받도록 했다(이전에는 신체장애인만 해당).

2003년의 3차 개정안에 따르면 성범죄 조사·심리시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 등 전문가의 의견조회 결과를 참작해야 한다. 또한 피해자가 13세 미만이거나 신체·정신장애로 사물변별 및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경우 진술내용과 조사과정을 영상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 송민성
"10년 동안 한계가 많더라도 많은 것이 변했어요. 다시 10년이 흐르면 세상은 또 얼마나 나아질까를 생각하면 설레기까지 하거든요."

그에게 희망과 기대를 끊임없이 불어 넣어주는 것은 바로 그가 10여년동안 만나온 생존자들.

"절망 속에서 자신을 치유하고 희망을 찾으려는 강한 희망을 가진 생존자들을 볼 때마다 힘을 느끼죠."

이 소장은 지금 이 시간에도 힘겹게 희망을 찾는 싸움을 하고있는 생존자들에게 약속한다.

"당당하게 도움을 구하고 지지를 요청하세요. 두 발로 일어서서 행복할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가 최선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송민성 기자의 홈페이지는www.ichae1982.com 입니다.

2004/03/04 오후 6:22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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