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국드라마’ 결국 통하더군요
봄햇살이 따사로운 지난 15일 낮. 김포 들녘을 달리던 버스는 어느새 강화대교를 지나 드넓은 잿빛 갯벌을 왼쪽으로 끼고 굽잇길을 돌고 있었다. 풍요로운 바다생물의 터전이자 육지에서 뱉어낸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갯벌이야말로 인간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것이다. 한국방송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자신의 존재는 철저히 잊어가면서도 바람둥이 남편과 철부지 자식들의 투정은 무한정 받아들이고 삭여내는 어머니(고두심)야말로 ‘마음속 갯벌의 원형’에 가깝지 않을까. 버스는 미옥(배종옥)이 영민(박상면)과 결혼한 뒤 신혼여행을 가는 장면과 시댁에 인사드리러 가는 장면을 찍고 있다는 동막 해수욕장에 곧 도착했다. 그런데 부서지는 파도를 배경으로 두 사람의 장난을 담아야할 터인데, 바닷물은 벌써 수백미터는 빠져 있다. 조수간만을 따지지 않은 제작진의 불찰이다. 커플룩으로 옷을 맞춰입은 배종옥과 박상면의 표정이 밝다. 극중 어려움을 뚫고 끝내 결혼에 이르게 된 것이 기뻐서일까, 최근 드라마 시청률이 크게 올라서일까 <꽃보다…>는 최근 시청률이 20%에 육박하면서 방송3사 수목 드라마 가운데 최고 위치에 올라섰다. 물론 <천국의 계단>이 끝나면서 6∼7%대에서 13.7%로 뛰어오르고 <천생연분>이 종영하자마자 다시 18.0%로 급반등하는 등 ‘자력갱생’보다는 ‘어부지리’에 가까운 시청률 상승이었다.(티엔에스 조사) 그럼에도 가족의 문제를 이처럼 파고든 드라마가 근래 없었다는 점과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 등 억지스럽고 엽기스러운 상황 설정, 겹치는 우연 없이 드라마가 이제껏 얘기를 제대로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시청률 상승은 당연한 대가인 것으로 보인다. 시청률이 드라마의 질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볼만한 드라마는 한자리수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자극적이면서 내용은 엉성한 드라마에는 사람들이 몰리는 현실을 결코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극중 결혼골인 ‘싱글벙글’ 이 드라마의 시청률 상승은 전연령대에서 고루 나타나지만 특히 40대 이상 여성층의 급격한 시청대열 합류가 전반적인 상승세를 이끄는 게 눈에 띈다. <천생연분>이 끝나기전까지 6.7%와 9.8%를 보이던 40대와 50대 이상 여성 시청률은 그후 15.1%와 20.9%대로 껑충 뛰었다. 이들이 문화방송에서 새로 시작한 <사랑한다 말해줘>와 에스비에스의 <햇빛 쏟아지다>에서 보이는 젊은 남녀의 사랑 대신 자칫 비루해보이는 서민의 가족 이야기에 눈길을 돌렸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잔 받으시죠.” 박상면이 영화 <넘버3>에서의 재떨이처럼 눈 흰자위를 번뜩이며 맥주를 따른다. 지금까지의 대본을 하나하나 싸서 보관하고 있다는 그는 “시청률 올라가니 기분도 좋구요, 배 언니랑 세트로 연기 제대로 하는 것같아 좋다”며 배종옥을 지그시 쳐다봤다. ‘배 언니’가 맞장구친다. “이제라도 드라마가 인정받은 것은 그동안 탄탄하게 준비해오고, 가족의 의미를 묻는 작가와 이를 표현해낸 연기자, 연출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라고. 박상면이 전한,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가면서 벌어진 일화 한토막. 극중 박상면의 동생으로 나와 이혼경력을 이유로 배종옥과의 결혼을 극구 말리는 동생 영수역의 김동수가 자신이 강남에서 경영하는 가게에서 한 여성 취객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단다. “야, 니가 뭐 그렇게 잘났어, 너가 왜 상면이 오빠를 괴롭혀”라고 말이다. 박상면은 이어 부모님이 서울 청량리 시장 인근에서 운영하는 갈비집에 가면 시장통 아주머니들이 미옥이랑 어떻게 돼느냐고 물어온다며 “서민들이 우리 드라마에 관심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배종옥도 “현실과 드라마가 혼동되는 모양이에요. 저한테도 극중에서처럼 그런 교수님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들 그래요”라며 배시시 웃었다. 많이들 알다시피, 그는 실제로도 이혼녀다. 그는 이 드라마의 노희경 작가와 <거짓말> <바보같은 사랑>에 이어 세번째 작품을 함께 하며 노 작가의 페르소나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번에도 극중 그가 엄마와 동생들에게 내뱉는 피해의식 속 대사들을 따라가다보면 작가가 자신의 감정이입을 하고있지 않나 싶은 때가 많다. 배종옥 자신이 보기엔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한고은이 이 작품에서는 페르소나처럼 보인다고. 배종옥은 이 작품이 노희경 작가의 결정판 같다고 했다. “가족의 얘기를 다양하면서도 깊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배종옥은 저평가된 배우”라고 주장하는데 대한 의견을 묻자 “언젠가는 인정 받겠죠”라며 당차게 되받아친다. 촬영팀은 벌써 이쪽 장면 녹화를 접고 서울로 떠났다. 신혼여행 장면은 22일 동해쪽에서 새로 찍기로 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박상면이 자신의 스타크래프트에 오르며 작별 인사를 던졌다. “연말 시상식장에서 봐요.”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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