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의 거대한 대리석 구조물은 손상될 수 없는 입법부의 권위를 상징한다. 붉은 양탄자가 깔린 본관 현관 출입문은 국회의원들만이 발을 디딜 수 있는 ‘성역’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상상의 세계에서는, ‘로보트 태권 브이’가 이런 의사당 건물을 한주먹에 날려버린다.(그림)
유석진 서강대 교수(정외과)는 이를 두고 “정치라는 놀이의 공간에서 즐겁게 노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 패러디물이 많은 ‘라이브이즈 닷컴’(liveis.com)은 실제로 ‘시사 정치 놀이터’를 표방하고 있다.
‘웃긴 대학’(humoruniv.com),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 등도 패러디물의 거대한 ‘무료장터’다. 이 장터 안에서는 한국방송 건물에 ‘물은 셀프’라는 대형 펼침막을 걸어두고 있다.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편파방송을 한다”며 한국방송에 항의하러 갔다가 “물 한잔 안 주냐”고 따진 것을 꼬집은 사진이다.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이 “이라크에 군인들과 함께 가겠다”고 한 말을 두고는, 그에게 여비를 모아주자며 ‘1원 모금통’을 돌리고 있다.
그들은 왜 정치를 비트는 것일까. 유 교수는 “네티즌들은 정치를 무겁고 진지한 주제가 아니라 기성세대가 벌이는 코미디로 여기고 있다”며 “그들은 정치를 외면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이버 공동체의 정치 참여를 연구해온 송경재 박사(인천대 강사)는 “인터넷은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자유공간의 개념으로 시작된 만큼 오프라인의 권위적 형태가 아닌 패러디와 희화화의 형태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풀이했다.
네티즌들의 끼는 ‘발랄함’뿐 아니라 놀라운 ‘집요함’으로도 나타난다.
유용태 민주당 원내총무가 방송에서 “국회의원 193명이 받은 표가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때 받은 표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하자, 네티즌들은 곧바로 중앙선관위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193명의 의원이 2000년 4·13 총선과 보궐선거에서 얻은 표를 하나씩 더한 결과 680만8468표로, 노 대통령이 대선에서 얻은 1201만2945표에 훨씬 못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네티즌들은 탄핵 반대 주장을 집중적으로 비난한 글의 아이피를 추적해, 출처가 한나라당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네티즌들의 이런 마니아 의식은 기존 대중매체가 소홀히 다루거나 놓친 일들에 대해 전혀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어딘가에 집약된 정보를 네티즌 개인이 재가공하고 편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인터넷의 힘”이라고 말했다. 송경재 박사는 “사이버 공동체에서 ‘인터넷 폐인’ 사이에 일반화된 마니아 의식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네티즌들의 발랄한 마니아 의식은 현실 정치의 모순과 비리, 그 깊숙이 똬리 틀고 있는 권위주의의 성채를 빠른 속도로 허물어가고 있다. 유석진 교수는 “길거리에 나가서 시위를 하고 투표를 하는 것만이 정치행위라는 생각은 이젠 낡은 고정관념”이라며 “네티즌들의 ‘정치 놀이 행위’를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순배 이정아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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