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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어느 노부부의 하루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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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어느 노부부의 하루
농사철 맞아 쟁기질하느라 바쁜 노인은 봄날의 나른함까지 물린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규환(kgh17) 기자   
▲ 관련 사진 1
ⓒ2004 김규환
쌀쌀하던 날이 풀렸다. 들판에 생기가 돌았다. 꽃구경하기에 참 좋은 시절이다. 나른한 오후 낮잠이나 때리면 옹골지겠다.

할멈은 봄이 되면 무척 바쁘다. 눈이 녹자 풋나물을 된장 고추장에 둘둘 비벼 내온 바지런한 아내와 한 평생을 같이 한 지 어언 50년이다. 나른한 몸을 추스르기 위해 들로 나가본다. 잡초가 논밭 바닥과 언덕에 파릇파릇 무성해졌다. 움츠러들었던 풀이 제철을 만나 짖어댄다. 늙은 마음 마저 심란하다.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어디 댕겨오시오?"
"할멈 안 되겠구먼…."
"뭣땜시요?"
"낼 아침에 쟁기질을 해야겠어."
"어디라우?"
"물텅굴 다랑지 논에 풀이 검나게 자라부렀당께. 이러다가 농사 쫑치게 생겼어."
"같이 가끄라우?"
"그려. 낼 아침에는 서둘러야 써."

평소 새벽잠이 없던 노인들이다. 서로의 숨소리만 들으면 안심이 되는 그들은 오늘도 얼마 남지 않은 기력에 의지해 하루하루 긴 생명의 끈을 끌고 가고 있다. 날이 새기 전에 쇠죽을 쒀서 양껏 먹였다. 며칠 전 밭갈이를 해봐서 어느 정도 길은 들여졌으니 오늘은 크게 문제될 건 없지만 힘이 세 배는 더 들어가니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

"어이~ 준비 다 됐으면 나가보더라고…."
"시방 새꺼리 챙기요."
"여그다 쇠죽 퍼놨응께 한 바케스 들고 따라 오더라고…."
"가요."

집을 나설 때에야 햇살이 마당을 한껏 비췄다. 영감님은 지게에 한 평생 지고 다녔던 쟁기와 멍에를 올리고 꼬뺑이를 풀어 소를 앞세우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 관련 사진2-보리밭
ⓒ2004 김규환
봄이라지만 늦서리가 풀 위에 다소곳이 앉아 쉬고 있다. 싸한 냉기가 바지가랑이로 밀려 왔다. 한 구유 가득 비우고서도 새 풀을 보매 움직이지 않고 아래턱으로 받혀 놓고 맛있는 풀 뜯는 소가 무얼 알랴. 그래도 따라 나서는 게 용할 뿐이다.

"이랴!"
"저저저저…이랴!"

어서 가자고 소리를 높이고 코뚜레에 연결된 끈을 잡아채니 곧 밭둑으로 올라섰다. 또다시 향긋한 새 풀 향기에 입을 갖다 대보지만 바쁜 농부의 재촉에는 버틸 재간이 없다.

멀찌감치 뒤따르는 할멈이 더 힘겨워 보인다. 칠 남매 낳아 말없이 키워낸 아내는 자신보다 더 허리가 꾸부정하다. 얼른 짐을 부리고 받아오는 게 나을 듯 싶다.

독새기 볼태기 등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잡초를 잡는 방법은 딱 한가지다. 그냥 갈아엎는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고 농사를 이어 받은 지 60년이 넘었지만 노인의 얼굴에도 그렇게 쓰여있다.

농부는 봄이 되면 맨 처음 퇴비를 져다 나르고 씨앗을 챙긴다. 그 다음에 밭을 한번씩 갈아 뒤집어 준다. 씨나락을 담그고 논에 물을 잡아 한번 더 갈고 써레질을 해주니 땅과 함께 살아간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남들은 경운기나 트랙터로 갈지만 그는 경지정리(耕地整理)도 마다하고 예닐곱 계단 높이의 논두렁을 그대로 둔 채 여태껏 고집스럽게 농사를 지어왔다. 막걸리 나르고 때론 쏠쏠히 거들던 아이들도 서울로 부산으로 다 떠나갔다. 이제 근 20년 넘게 젊은이 없이 할멈과 소와 더불어 우직하게 열댓 마지기를 붙여 먹었다. 둘 중 한 명만 쓰러지는 순간 평생의 업을 내려놓아야 할 날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 관련사진3-쟁기의 주요부
ⓒ2004 김규환
무거운 짐을 작대기에 받혀 놓고 얼른 할멈 올라오는 곳까지 양손을 휘휘 저어 달음박질로 가서 짐을 받아 왔다. 그 동안 따뜻한 언덕에 줄줄이 파릇파릇 돋아난 풀을 뜯는 소만 신이 나 있다.

몇 걸음이나 멀어진 소를 간신히 끌고 쟁기 옆에 데려왔다. 쟁기는 어제 손을 봐둬서 보습과 바닥쇠는 성하다. 몸체는 아직 부러질 염려 없이 쌩쌩하다. 멍에를 소 등짝에 올리고 두 줄을 배로 감아 돌려주고 그걸 다시 늘어뜨려 쟁기 앞 대가리 나무에 가로로 균형을 잡아주고 코뚜레에 연결된 줄을 한 바퀴 돌려 손에 "퉤-"하고 침을 한번 바르고 힘껏 감아쥔다.

"이랴!"
"이랴!"

첫 출발은 순조롭지 않다. 푸석푸석해 보습 없이도 나무 쟁기로도 쉽게 갈리는 밭과는 달리 논은 딱딱하게 굳어 있어 처음엔 쟁기가 파고들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 데고 한번 갈아보는 걸로 만족하니 꼿꼿이 가지 않고 삐뚤삐뚤 제멋 대로다. 오랜만에 논갈이를 하는지라 마구 내달린다. 뒤따르다 하마터면 쟁기가 엎어질 뻔했다.

"와…와…."
"워~"

어르고 달래서 슬슬 돌아 언덕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아까보다 더 힘을 줘 단단히 줄을 붙들었다. 여차하면 사정없이 잡아채 성질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벼르고 다시 출발했다.

"이랴!"

바닥 쇠는 바닥을 훑고 날카로운 보습으로 땅이 파헤쳐지면 볏을 주르르 타고 아이스크림을 퍼 올리듯 뒤집어지면서 햇볕에 반짝거린다. 그러고 나서 흙의 윗부분은 아래로 아랫부분은 위로 올려져 맞교대 하여 갈아엎어진다. 그러면 잡초가 땅속에 파묻혀 옴짝달싹 못하게 되고 흙이 말라비틀어져 뿌리를 말려 죽인다.

"자랴!"
"자랴!"

논 모양을 바깥을 한번 돌려 쳐주고 차츰 안쪽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는 게 논밭갈이의 기본이다. 적응할 때도 되었건만 한 줄로 똑바로 가지 않고 가운데로 쏠리니 방향을 잡아주지 않을 수 없다.

"워~워~" "이랴!" "자랴!"를 섞어가며 한 배미를 마칠 무렵 목이 부쩍 타오르는 걸 느낀 노인.

▲ 관련사진-다랑지 논가에 돌이 그대로 있습니다
ⓒ2004 김규환
"할멈 물이라도 한 잔 줘보더라고."
"워째 말을 잘 안 듣는다요?"
"모르겄어. 햐~ 내 평생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네. 작년까장은 말을 잘 듣었단마시. 전번에 밭도 잘 갈았잖은가?"
"근께 말이요."

소라고 무시할 게 아니다. 귀신과 같아서 아이를 보면 들이받을라 하고 주인 목소리를 듣고 힘이 빠진걸 금새 알아차리고 더디 가거나 아예 가기를 마다하는 수도 있다. 그러니 어디 소가 꾀를 부린다고 하는 게 아니라 주인이 소를 휘어잡는 힘이 부친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 부리는 주인은 한번 일을 나갔으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어르고 달래고 꼬뺑이로 잡아채서 겁도 줘가며 한 몸이 되어 같이 가는 것이다. 필시 이 놈의 소가 자꾸 딴청을 부리는 까닭은 주인장이 거년(去年) 같지 않고 재작년과 비교하여 형편없이 떨어졌음을 알아차린 탓이다.

아랫 배미로 내려와 갈 때는 벌써 한참이 지났다. 한창 때는 담배 한 대참에 한 배미 갈고 한나절이면 이 골짜기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열 배미 닷마지기도 해치웠다. 그런데 두 시간을 지나서야 아래 논으로 내려왔으니 저물 때까지 해도 절반이나 갈려나?

술기운에 벼락치듯 갈았던 때를 영감님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세월이 이 만큼 멀리 와버린 걸 어떡하겠는가.

"거시기 아부지 한 술 뜨시고 할라요?"
"그려, 돼서 안되겠구만."

▲ 관련사진-논 갈다 말고 풀을 뜯는 소
ⓒ2004 김규환
침이 마르고 까칠까칠한 입맛이지만 물이라도 말아 한 숟가락 떠야 기운을 차리고 소를 부릴 수 있으니 김치와 돈나물, 머위순을 무쳐 왔지만 건성건성 밀어 넣었다.

"어~ 잘 묵었다."
"쬐까 더 뜨싯쇼,"
"됐당께."

한 때는 한 손으로 불끈 들어 올렸던 쟁기 무게가 한없이 무겁게 전해져 온다. 그 무게를 감당하며 소 뒤를 따라 다니느라 달음질치는 통에 장단지가 한없이 결려온다. 이젠 흙을 옆으로 털어 낼 힘마저 없지만 숨이 붙어 있는 한 그렇게 사는 게 자신의 할 일이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고 허리가 꼿꼿하며 엉덩짝이 반반한 송아지를 데려다가 먹인지 3년째다. 송아지 한 마리를 낳아 살림밑천을 늘려 줬고 코뚜레를 해 넣으면서부터는 할멈이 앞에 끌며 밭갈이로 길을 들여놓았으니 재작년 늦가을부터 3년 째 쟁기질을 익혀 왔다.

고삐에 묶인 채 세상구경 한번 하지 않은 소도 코로 봄을 먼저 느낀다. 우직한 소지만 사람이 묵은 김장김치에 신물이 날 즈음 짚으로만 쒀주면 풋내를 알아차리고 깨잘거리며 단번에 비우지 않는 일이 잦아진다. 올 농사지으려면 이 놈에게도 새 풀을 한 삼태기 캐서 같이 넣고 쇠죽을 쒀줘야 힘을 쓰리라는 생각을 했다.

"옛따! 많이 묵어."

농사일은 밥심으로 한다. 배가 꺼지면 움직일 맘이 싹 가시는 게 농사다. 주인이 잠시 쉬고 있는 동안 한 바케스를 후딱 먹어치우고 배를 깔고 앉아 한가로이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쉬고 싶은 맘이야 굴뚝같지만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지치지 않는 법이다. 장화에 흙덩이를 탈탈 털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영감 집에 좀 댕겨올께라우. 점때(점심때)가 가차운게(가까우니까) 밥도 새로 해와야허요."
"그러소."

▲ 관련사진-잘도 간다.
ⓒ2004 김규환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 패인 아내는 아이 낳은 삼사 일을 빼곤 언제나 옆에 있었다. 몸을 풀고 이틀을 넘기지 않은 믿음직스런 동무, 눈빛만 봐도 뜻을 알아차리는 할멈이다. 반려자가 이런 건가.

"자, 인나. 인자 심(힘) 좀 바짝 써야할 것이여."

무거운 엉덩이를 먼저 들어올려 뒷다리를 고추 세우고 앞발에 힘을 실어 두 번에 나눠 일어선다. 쟁기를 세우고 고삐를 살짝 죄자 저벅저벅 앞으로 나아간다.

골을 따라 쟁기를 끌고 가자 멍에가 좌우로 잠시 요동을 친다. 곧 균형이 잡히고 아침녘보다 데면데면하지 않고 느긋하게 잘 걸어간다. 영감님은 늘 이렇다는 걸 안다. 그러니 마냥 보채지만 않는 것이다.

"이랴!"
"이랴!"

이 때 속도를 약간 내도 상관없으리라. 단박에 갈린 논이 맨땅보다 더 넓어 보였다. 빈땅이 있으면 다음 번에 다시 한번 덧 갈면 된다.

산비탈에 가까운 탓에 그늘진 응달 골짜기에선 벌써 부엉이 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뒤 까마귀 한 마리 날고 해오라기 높이 날았다. 참새 떼 지저귀며 논두렁에 앉았다 오가니 쟁기질이 꼭 심심치 만은 않다.

웃옷을 벗어 놓아도 땀이 줄줄 흐른다. 다만 자고 있던 봄바람이 세차게 밀려와 얼굴에 사정없이 후려갈기지만 않았다면 자그만 농사에 자연과 벗하고 산 지난날이 헛되지만은 않다.

▲ 관련사진-자꾸 딴 데로 가는 소
ⓒ2004 김규환
쇠와 땅이 만나 "스윽~" 소리를 낸다. 지푸라기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겨우내 눈을 맞고 약해졌다. 남들은 자운영을 심어 녹비(綠肥)를 한다 어쩐다 하지만 영감님은 젊을 때는 퇴비를 넣었고 풋나무를 베어다 쭉쭉 깔아줬다. 10여 년 전부터는 지푸라기라도 잘라 지력을 높여왔다.

그러니 농사꾼 영감은 남들 절반밖에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바보처럼 짓는 것이 농사요, 한결같은 방식으로 정성껏 하다보면 농사에서만큼은 농학박사인 셋째 아들 못지 않다는 자부심마저 있다.

이렇게 일년에 두 번 이상 논을 가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렇게 해왔으니 되묻지 않고 법칙에 충실한 것이며 퇴비가 될 썰린 짚이 썩어 공기층을 형성 왕성하게 활동하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기계를 갖다댄들 소출이 조금 더 나올망정 비료, 농약, 기계 부린 값, 품삯 제하고 나면 남는 건 오히려 소 쟁기로 갈아서 하는 방식이 훨씬 더 알차게 남았다.

하마 올 때가 되었겠다 싶던 할멈이 오지 않자 궁금해지는 영감님이다. '뭔 일 있당가?' 농사일도 그렇고 시골 살림은 어찌 보면 바지런한 사람 몸이 힘들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손을 안댈 수도 없으니 스스로 일을 찾기 마련이다.

이곳저곳 여기저기 관심을 써서 쓸고 닦고 문대고 제자리 찾아 놓고 신 김치를 물에 담가 놓아 쉰내를 빼서 새로 무쳐낸다. 2월에 담근 된장이 잘 익어 가는지도 손으로 찍어 맛을 보아야 하니 한시도 쉴 틈이 없다.

▲ 관련사진-왜 자꾸 그랬싼다요?
ⓒ2004 김규환
'요 놈의 세상 어찌 될라고 대통령까장 들었다놨다 하는지 몰라. 국회의원이 원래 문제가 더 많지만 대통령도 자중을 해야지 원…. 정치하는 사람들이 언제 우리 같은 무지랭이들이 사는데 한번이라도 관심을 썼나. 나라꼴이 어찌 될라는지. 이번에 확 갈아 엎어버려야 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영감님의 또 다른 친구인 라디오에선 연일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정국으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가뜩이나 농사 어떻게 지을까 걱정인데 마음까지 심란하게 하니 시골에 박혀 산들 맘이 편하겠는가. 둘째 아들도 직장을 잃은 지 두 해가 넘어 가뜩이나 살기 힘든 시절에 말이다.

잘 가는 소에게 재갈을 물리는 건 소태를 먹이는 것보다 해롭다. 소태야 느삼과 한가지로 소가 입맛을 잃었을 때나 달이거나 짓찧어서 먹이면 여물을 곧잘 먹게 하는데 좋다. 그렇다고 소태나 느삼을 날마다 먹이면 어찌되는가.

또한 재갈을 물리면 새로 침을 불러오지 못해 혀가 더 바짝 타는 것이다. 느리고 더디 가는 것이 먼 길 갈 때 낫질 않은가. 생각 같아서는 영감님이라고 쟁기 날을 50개 달아 자동으로 굴러가게 손 안대고 코 풀고 싶지 않겠는가. 어찌 쉽게 농사짓고 방구석에 들어가 편히 쉬고 싶지 않을까 보냐. 일년 농사에서도 어느 한가지를 빠트리면 결과가 답을 하게끔 되어 있다.

▲ 한가한 시골의 오후
ⓒ2004 김규환
힘이 한쪽으로 기울면 쟁기도 기운다. 그 뿐인가. 득득득 겉만 긁을 뿐 갈리지를 않으며 요란하게 나뒹굴다 소 따로 쟁기 따로 놀고 그를 조정하는 사람마저 내팽개쳐지는 게 순리다.

영감님이 하는 일은 논갈이다. 논갈이. 누구 말대로 잡초를 괭이나 호미로 뽑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요, 제초제를 무지막지하게 뿌리고 화학비료 듬뿍 쳐주면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건 초보 농사꾼도 두 해만 해보면 자신이 틀렸다는 걸 안다.

농사의 기본은 제초의 한 방법으로 오래 전부터 풀이 나기 전에 갈아엎는 것이 최고라는 걸 안다. 덧붙여 풀이 싫다고 호미질 죽어라 해보아야 한 번 갈아주는 것만 못하다는 것도 그렇다. 제초제와 화학비료에 의존하면 땅이 싫어하고 그걸 먹는 도시 소비자가 마다하니 이건 농사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농부는 수천 년을 잡초와 싸우면서 살아왔다. 잡초와의 전쟁을 숱하게 해왔지만 어찌 보면 잡초와 운명을 같이해왔다고 보는 게 맞다. 쑥, 억새의 생명력을 보면 어떻던가. 그렇게 해서 예전에 많던 잡초도 농사방식이 서서히 변모함에 따라 자연 도태되고 때론 그게 주류가 되어 곡식이 되고 열매가 되어 양식이 되었던 것 아닌가.

노바티스사에서 제조한 제초제(除草劑)는 한두 번은 약발을 받지만 곧 내성이 강해져 다시 화끈한 약제를 뿌리지 않는 한 꿈쩍도 않는 것과 뭐가 다른가. 정히 쓰려면 선택성과 비선택성 제초제를 가려서 씀이 옳다. 옥석을 가려서 나물로 먹고 녹비로 쓰고 때론 교잡을 거듭하여 신품종으로 개발해도 되지 않은가.

"뭐 하셨소?"
"지워서(힘에 겨워서) 쉬고 있었당께. 근디 왜 인자 온당가?"
"얼른 올라근디 깜박 잊고 밥통에 전기를 안 꽂았당께요. 지도 인자 갈 때가 됐는갑소."
"뭔 소리여?"

▲ 소가 끌던 달구지 또는 구루마(일본말) 위에서 어릴 적 생각나게 쿵쾅쿵쾅 마구 굴리던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2004 김규환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에 쑥 된장국, 갈치 두 토막, 싱건지 뿌리를 우려낸 생채, 양념고추, 취나물 무침이 다다.

"목마른께 물이라도 한잔 드시고 잡술라요."
"그려."

풀었던 보자기가 바람에 나풀거린다. 젓가락으로 눌러 놓고 밥을 떠보지만 나물 반찬으로 살아온 내외지만 입맛이 돌지는 않은가 보다.

"거기 대접 좀 줘봐."
"왜라우? 비벼드실라요?"
"응."

큰아들 놈은 이 골짜기로 일을 하러 오면 도랑에서 피라미를 손으로 열댓 마리에 징거미(민물새우로 토하<土蝦>보다 몇 배나 큼)를 잡고 돌을 들춰 가재 몇 마리를 빠트리지 않았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아내는 쌀 반되에 마늘 고추장, 고춧가루를 준비하고 나뭇가지를 주워와 백철 솥에 넣고 푹푹 죽을 끓이다가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봄철에 천렵(川獵) 따로 갈 필요가 없었다.

그 때가 아이들 키우는 재미도 있었고 서로 먹겠다며 머리를 쳐박고 솥 단지 앞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터에 천신(자신의 차지)이 있을지 걱정이던 때가 엊그제 같다. 거무튀튀하던 가재와 징거미가 발갛게 붉은 고추처럼 익으면 입맛을 확 돌게 했다. 그 때 막걸리 한 사발 먹으면 힘이 절로 나질 않았던가.

"직아부지 셋째가 온다고 전화 왔습디다."
"언제?"
"이번 주 공일(公休日)에 며느리랑 아그들이랑 한꾼에 온다요."
"별 일 없다그제?"
"예."

춘분이 지났으니 낮 길이가 더 길다. 점심을 먹고 나니 오수(午睡)가 밀려온다. 풀 밭 위에 잠깐 누워서 하늘을 보니 흰 구름이 뭉실뭉실 떠간다. 비를 한 번 몰고 오면 좋으련만.

오후 내내 논갈이가 지속되었다. 보이지 않던 그림자도 자꾸만 길어져 온다. 오후 봄바람은 거침없이 회오리바람을 몰고 오는 수도 있어 주변을 휘감아버리기도 한다. 뉘엿뉘엿 서산에 해가 걸리며 발그스레 숨어버릴 즈음 하루를 마감하는 게 좋다. 그래야 내일 또 와서 일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욕심부린다고 한 시간 더 하다보면 소도 사람도 지치게 마련이다.

그래도 오늘은 쟁기와 지게, 멍에를 논두렁에 놔두고 소만 데리고 가면 되니 내일 아침까지는 한결 수월한 여정이 될 듯 싶다. 영감님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쇠죽에 겨를 듬뿍 넣어서 끓여주고 밥 한 술 뜨고 일찍 잠을 청했다. 하루 내내 곁에서 지켜보던 안주인은 내일 먹을 반찬을 만드느라 딸가닥딸가닥 밤이 깊은 줄 모른다.
이 글은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에 다녀오는 길에 논갈이를 하시는 노부부를 만나 뵙고 힘들게 농사짓는 분들과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소설 형식을 빌려 쓴 글입니다. 또한 이 글에 나오는 주인공과는 내용에서는 전혀 무관함을 밝힙니다. 굳이 밝히자면 관찰자와 전지적 작가시점을 섞어가며 썼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다 옛 고향의 모습을 보니 바빠도 내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30여 분 사진기를 찰칵찰칵 눌러대며 그 분들과 잠시 얘기를 나눴습니다.

2004/04/02 오전 11:47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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