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의 글밭 2011-87]
곁가지를 자르는 일
박 종 국
한때 권투경기에 매료됐던 적이 있다. 숱한 일들로 몸과 마음이 피폐했던 터라 희망의 빛이라곤 바늘구멍만큼도 비치지 않았을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락에 빠진 내 삶에 활력을 충전할 수 있는 거리가 생겼다. 바로 권투경기 관전이었다. 경기 내내 몸을 부대끼지 않는 운동과 달리 권투는 활기가 드셌다. 경기를 보며 나는 사각의 링 위에서 사투를 벌이는 선수와 동일시하여 피를 튀겨가며 싸웠다. 그럴 때면 답답했던 마음이 풀려 후련했다.
그러나 그 짜릿한 대리만족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동일시했던 그 선수가 라운드마다 형편없는 경기를 하였다. 그는 싸워 이기겠다는 투지는커녕 건성도 없이 시종일관 몸만 흐느적거리며 피해 다녔다. 열이 뻗칠 대로 뻗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곤죽이 되도록 얻어터진 그가 링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마치 자기가 이겼다는 듯이―.
순간,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다. 이만저만 졸전이 아니었는데, 그는 아직도 힘이 남았다는 듯이 얄랑대고 있었다. 가소로웠다. 그렇게 펄쩍대며 최종 라운드까지 힘이 남았다면 왜 매 라운드 빌빌댔냐. 그는 손을 치켜들고 연방 잽과 훅, 어퍼컷을 날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비굴스럽게 느껴졌다. 대체 내가 사는 모습도 저와 같지 않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주어진 일에 집착하지 않고 헐렁대다가는 결국 저처럼 낭패를 보는 것이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는 것은 일본 교토에 위치한 MK택시 유봉식 회장의 경영비법이다. 그의 경영철학은 ‘친절택시’ 벤치마킹으로 집약된다. 그는, 신용과 친절을 앞세워 일본 택시업계의 성공신화를 창조한 바 있다. 결국 그에게는 ‘최선’이 ‘최고’의 ‘비책’(know-how)이었다. 그의 성공신화는 무던한 자기 내적성숙에 있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치밀함과 치열한 삶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모로 보나 도덕적 정의가 온전치 않다. 정치경제는 물론, 교육과 종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십보백보다. 사회정의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실로 경우에 어긋나는 짓을 저질렀다고 해도 자신의 편익을 위해서 덮어주고 묻어줄 수 있는 ‘너그러운 아량(?)’까지 지녔다. 얼이 빠진 채로 한통속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모두 자기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대가인 셈이다. 잘못을 짚어도 너무나 잘못 짚고 있다. 가히 치유 불가능한 오류인 세상이다.
철인(哲人) 소크라테스는 ‘반성 없는 생활은 살 가치가 없다.’고 갈파했다. 진지한 성찰은 깊고 심오한 각성을 일깨워준다. 누구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은 야무지게 닦는다. 그러나 남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면 사뭇 부끄러운 얼루기가 확연해진다. 함부로 대했던 일들에 낯부끄러워지는 때가 너무 많다.
개적으로 조그만 일에 쉽사리 얼굴 붉히고,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 이기심이 곧장 고개를 치켜든 적이 많았다. 좀더 가지려고 바동댔던 일들이 손가락을 다 곱고도 남는다. 오직 내 것만을 챙기는데 눈이 어두워 남을 헐뜯고, 막돼먹은 행동을 숱하게 반복했다. 정녕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거친 쇠붙이도 대장간 화덕에서 충분히 달궈진 다음에야 야무진 연장으로 거듭난다. 그러면서도 까닭 없이 그러한 일들을 되풀이한다. 딸깍발이 인생이다.
설 쇠고 나이한살이 배송되었다. 반송불가란다. 어쨌거나 한해살림은 내 생활언저리부터 알뜰하게 챙길 일이다. 사랑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온전한 생각머리를 갖고 최선을 다해야겠다.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면 가지치기를 할 때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한다. 쓸데없는 곁가지를 자르지 않고서는 좋은 상품의 과실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 그런 바람으로 올 한해는 한빛가족 모두 곁가지를 줄여 본연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2011. 02. 09.
/천안지역 장애인종합정보지 <한빛소리> 제 176호, 2011년 2월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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