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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코가 석자나 빠졌다

한국작가회의/한빛소리원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9. 5. 1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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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코가 석자나 빠졌다


카테고리 : 박종국의 세상만사 | 조회수 : 11532012-01-12 오후 4:26:00


내 코가 석자나 빠졌다


박 종 국


날마다 부대끼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얼굴로 다가들까. 지천명의 나잇살을 가진 이후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이 새롭게 느껴진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진다. 다 다른 향기를 지닌 사람들이기에 애틋함도 더한다. 요즘은 망자(亡者)의 슬픔을 나누는 자리가 더 잦다.


사내들 술자리는 언제나 엇비슷하다. 대부분 발밑 현실이 안줏감으로 오른다. 정치경제가 씹히고, 사회문화가 발가벗겨지고, 교육문제가 갈가리 찢긴다. 퇴출에 관한 떫은 이야기도 술잔을 바쁘게 하는 화두다. 은퇴를 불과 몇 년 앞둔 나이 어디 앓은 이가 없으랴마는 다들 제 속 곪은 이야기는 쉽게 내뱉지 않았다. 


누구는 정부의 정책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고 꼬집고, 누구는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눈멀었다고 핏대를 돋웠다. 또 누구는 나라 경제가 한 치 앞을 가늠하지 못할 만큼 지리멸렬하다고, 사회정의가 도륙(屠戮)해야 할 만큼 산적하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빙충이 같은 나는 교육마저 밑바닥이라고 다그쳤다. 술병이 쌓여갈수록 성토하는 목소리가 격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명쾌한 대안제시를 못했다. 잡다한 이야기들 많았지만 단지 넋두리일 뿐이었다. 남을 탓하는 데만 급급한 세상이다.


새삼스레 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게도 챙겨주었음에도 걸핏하면 속을 들끓게 하는 녀석이다. 현재 친구는 파산하여 모든 일을 접고 노숙자로 전전하고 있다. 마음이 아리다. 그런데도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그저 남을 다그치는 데만 열심이었다.


지금 상황에 내 코가 석자나 빠졌다. 근데도 어려운 상황을 용케 견뎌내고 있는 친구들이 미덥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결코 편견에 치우지지 않는 까닭이다. 오늘도 얼치기 같은 우리들은 한자리에서 만난다. 세상살이 팍팍한 만큼 분개하는 일 많으리라. 201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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