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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국밥

한국작가회의/한빛소리원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9. 5. 1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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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국밥


카테고리 : 박종국의 세상만사 | 조회수 : 13752012-01-16 오후 5:16:00


따로국밥

박 종 국

지난해 세밑부터 허리가 시큰하더니 종국에는 허리디스크로 전이되었다. 신경통은 겉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아도 속으로는 실로 참아내기 힘든 통증이 따른다. 그 고통,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앉거나 설 때면 바늘로 꼭꼭 찌르고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팠다. 매번 되풀이되는 통증을 참느라 얼마나 이빨을 앙다물었으면 잇몸이 다 짓물렀다. 게다가 진통제까지 냅다 먹어댔더니 속도 편치 않다.

몸이 아프면 자연 귀가 얇아진다. 효험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날마다 다니던 한의원을 마다하고 곧장 그곳으로 향한다. 신통하다는 한의원에 가면 서둘러 통증이 싹 가라앉기라도 하듯이. 애써 침을 맞고 물리치료까지 병행했으나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실상은 귀가 얇은 탓에 덧나서 더 고통을 받았던 것 같다). 다행이라면 방학이라 오래 서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하루 일상은 거의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보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픔이 무엇일까. 부모님과의 이별,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일까. 사람은 다 자기가 겪은 슬픔이 가장 큰 아픔이라고 말한다. 물론 영원한 별리는 감당해내기 힘들만큼의 슬픔이요 아픔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픔은 자신이 아프거나 병들었을 때인 것 같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더군다나 그런 와중에 누군가에게 반목과 질시를 받았다면 그 감정 응어리는 평생 풀리지 않는다.

발병 전후로 사정이 빠듯해서 고충이 더 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몸이 아프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래서 가정생활도 데면데면해지고 대화도 무뎌져 버렸다(원래 아내와 아이들은 내게 사근사근한 편이 아니었다). 살면서 스스로 섬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힘겨운 나머지 혼자만의 섬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말문마저 닫아버렸다.

밤마다 진통제에 의지해서 서둘러 잠을 청한다. 하지만 불과 서너 시간 지나지 않아 잠이 깬다. 그러면 눈이 말똥거리는 것은 차제하고 허리통증을 견뎌내기 힘 든다. 곁에 아내라도 있으면 안마라도 부탁하련만, 좀 심하게 다투고 난 이후로 각방을 쓰고 있는 처지라 마음만 아릴뿐이다. 서로 감정의 골이 패인 우리는 본 체 만체하고 산다. 게다가 아내는 지금 딸내미 방 지킴이가 되었다(이 점에 있어서 나를 아무리 밴댕이 속아지라고 해도 아내의 처신머리는 용납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나잇살 거듭할수록 내 삶이 아름답다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어렵고 힘들고 마음도 아팠지만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다보니 내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한데 병약한 지금, 그 마음마저 깡그리 무너지고 애꿎게 미운 감정만 쌓고 있다. 내 인생길이 참 순탄하지 않았을 때 가족이 있어 든든했으나 따로국밥이 되고 난 지금은 되레 가시밭길이다. 중년 남자의 삶이 다 이럴까마는.

한 달여 사투를 벌인 끝에 요즘은 허리며 다리의 통증이 덜해졌다. 그 동안 외로운 병치레였다. 혼자 버텨낸 시간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내 몸 아플 때 가족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게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모두 내 탓이라 받아들이면 허망할 까닭이 없는데도 내 속아지는 여느 때보다 좁아져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스스로가 건강하다는데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이 없다. 사노라면 때론 눈물 흘릴 때도 있겠지만 내 모습이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걸 만족하다. 난 따로국밥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어쭙잖은 생각을 떨쳐버리고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앗을 뿌려야겠다. 2012.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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