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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수업현장

박종국교육이야기/함께하는교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10. 9.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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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피꽃밭'이 무슨 말이죠?
[현장] 광주경신중 3학년3반의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 수업
텍스트만보기   서종규(gamguk) 기자   
선생님 "'살피꽃밭'이 무슨 말이죠?"
이승일 학생 "예, 꽃밭의 꽃을 살피는 것이…."(전체 웃음)
선생님 "틀렸어요. (별하나 달고) 다음 학생 말하세요."
강한슬지 학생 "예, 담장이나 도로 밑에 길게 만든 꽃밭입니다."
선생님 "맞았어요. 다음 학생 일어서세요."


▲ 송지은 학생이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들'이란 국어수업 중 발표하고 있는 모습
ⓒ2005 서종규
광주 경신중학교 3학년 국어시간입니다. 내일이 한글날인데 우연히 <중3 생활국어>에 있는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들'이란 단원을 모둠별로 이해하여 답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단원에는 '갈무리(물건 따위를 잘 정리하거나 간수함)', '곰비임비(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계속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 '꽃보라(떨어져서 바람에 날리는 많은 꽃잎)' 등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들이 약 150개 정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수업방법은 4명이 모둠별로 앉아서 서로 토론을 벌입니다. 한 반의 인원이 35명 정도여서 9개의 모둠으로 편성됩니다. 이 단원은 총 2시간으로 짜여져 있는데 첫 시간에는 모둠별로 단어들을 이해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단원 특성상 암기 위주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단합된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첫 시간의 모습은 왁자지껄 시장통 같습니다. 모둠원끼리 갖가지 기발한 방법을 동원하여 준비합니다.

요즈음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의 흉내를 내어서 모둠장이 문제를 내면 깔때기를 귀에 대고 귓속말로 답하며 한 시간을 준비하는 모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네 명이 인상을 가득 쓰고 책에 시커멓게 칠을 해 가며 외우고 있는 막무가내형 모둠도 있습니다. 모둠장이 문제를 내면 단체로 크게 외치는 합창형 모둠도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열심인 것은 아니겠지요. 끄덕끄덕 졸고 있는 학생이 있는 모둠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지요. 서로 격려하며 함께 물어보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하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줘도 흐지부지 소극적으로 준비하는 모둠도 많지요. 조는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책을 보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둠도 발견됩니다. 이런 모둠은 모둠활동 불량으로 적발되어 감점을 받는데 말입니다.

두번째 시간은 모둠별로 겨루기 수업을 갖습니다. 즉 퀴즈대회 형식을 갖지요. 그런데 일반 퀴즈대회 형식이 아니라 모든 모둠원들이 번갈아가며 대답을 해야 합니다. 첫번째 문제를 1모둠의 1번이 대답하면, 두번째 문제는 2모둠의 1번이 대답합니다. 9모둠까지 한 바퀴 돌았으면 다시 1모둠의 2번이 대답하고, 만일 답을 하지 못하면 틀린 답으로 별을 받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대답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1시간 동안 계속하여 질문하면 모둠별 모든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대답하고, 대답을 가장 많이 하지 못한 모둠은 모둠활동 불량으로 수행평가에 감점을 받는 형태입니다. 가장 많이 대답을 한 모둠은 가산점을 받겠지요. 그러니 학생들이 긴장해 대답할 수밖에 없지요.

▲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들'이란 국어수업 광경. 제가 진행하고 있는 수업입니다.
ⓒ2005 서종규
학생들은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들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아서 아주 힘들어 했습니다. '돌꼈잠(한 자리에 누워 자지 않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자는 잠)', '등걸잠(옷을 입은 채 아무것도 덮지 않고 아무 데나 쓰러져서 자는 잠)', '나비잠(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편히 자는 잠)', '새우잠(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자는 잠)', '누루잠(깊이 들지 못하고 자꾸 놀라 깨는 잠)', '여윈잠(충분하지 못한 잠)', '사로잠(염려가 되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바심하며 자는 잠)' 등 잠에 관한 우리말도 많았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대답들이 많이 쏟아졌는데 '곰삭다(젓갈 따위가 오래 되어서 푹 삭다)'라는 말을 '고리삭다(젊은이다운 활발한 기상이 없고 하는 짓이 늙은이 같다)'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더펄머리(더펄더펄 날리는 더부룩한 머리털)'를 '대머리'라고 말하여 온통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슴베(칼, 괭이, 호미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 이란 문제에서는 아주 큰 웃음이 번졌습니다. '슴베'의 발음이 3학년1반 담임 선생님의 이름과 비슷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꼬지(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가삼이 모이는 일)', '모르쇠(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다 모른다고 잡아떼는 것)', '신소리(상대편의 말을 슬쩍 받아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 '덤터기(남에게 넘겨씌우거나 넘겨받은 험루이나 걱정거리)' 등 학생들이 많이 들어 보았을 것 같은 단어들에 대하여 의외로 틀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괴발디딤(고양이가 발을 디디듯이 소리나지 않게 가만히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는 짓)', '너나들이(서러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넴)', '대거리(상대편에게 언짢은 기분이나 태도로 맞서서 대듦),' '도란도란(여럿이 나직한 목소리로 정답게 서로 이야기하는 소리)', '보듬다(사람이나 동물을 가슴에 붙도록 안다)', '아망(아이들이 부리는 오기)', '열구름(지나가는 구름)', '보람줄(책 따위에 표지를 하도록 박아 넣은 줄)', '손사래(어떤 말이나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에게 조용하라고 할 때 손을 펴서 휘젓는 일)' 등 아름다운 우리말을 새삼 좋아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수업을 마친 정다은 학생은 이렇게 소감을 말했습니다.

"재밌어요. 아이들과 돌아가면서 발표하니 지루하지 않아요. 우리말인데도 낯선 말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이 수업을 통해서 우리말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어요. 특히 내일이 한글날인데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을 배웠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앞으로 컴퓨터 용어나 은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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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8 13:55
ⓒ 2005 OhmyNews
"국어사랑이 나라사랑... 잘 모르겠다"?
세계화 타령 앞에 망가지는 우리 말
텍스트만보기   서종훈(prmk) 기자   
왜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졌죠?

▲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올해로 훈민정음 반포 559돌을 맞이한다. 한글을 말·글 생활에 사용한 지 불과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독자적인 문자 체계를 가지고 완벽한 말·글 생활을 누리고 있다.

물을 기름에 비교해 앞으로 물을 함부로 사용하면 기름보다도 비싸질 수도 있다는 내용의 광고장면을 본 적이 있다. 물의 중요성이 우리 말·글의 중요성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세계화'라는 허울 좋은 미명아래 영어라는 말에 엄청난 노력과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글의 중요성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소중함과 중요성을 아이들에게 일깨워 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한글날에 즈음해 우리 말과 글의 소중함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선생님 왜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졌죠. 예전에는 쉬었다고 하는데."

"선생님도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영어가 그 힘을 막강하게 발휘하고 있는 시점에서, 한글만을 자꾸 고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선생님. 우리가 매일 영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영어 시간에도 영어로만 말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겐 익숙한 우리 말과 글이 있는데, 그 소중함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네가 선생님 할 말을 다 하는구나. 그런 의식만 있다면 한글날을 애써 공휴일로 다시 지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에이, 선생님. 그래도 한글날은 우리에게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날이잖아요. 꼭 공휴일이 되어야 해요."

"그래. 다 같이 노력해 보자."

"그런데 선생님. 저는 한글날이 공휴일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한글날을 공휴일로 다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아요. 다만 우리글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고 좀더 뜻깊은 날로 되새기기 위해서는 국경일로 정하는 것이 좋다고 봐요."

한글날이 왜 공휴일에서 빠졌는지에 대해 의아해하는 아이들에서부터 한글날이 공휴일인지조차도 모르는 아이들까지 한글날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했다. 하지만 정작 왜 우리 말과 글이 소중하고 중요한 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영어사랑'이 '나라사랑'?

▲ 주시경 선생
아이들에게 '국어사랑, 나라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했다.

"국어사랑이 왜 나라사랑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 우리는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와의 무역이나 협정 등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렇다면 국어사랑보다는 오히려 영어를 더 아끼고 사랑해야 나라를 위하는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국어는 항상 사용하는 것이니까 그대로 사용하고, 영어를 좀더 많이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게 더 나라를 위하는 길이 아닐까. 일석이조, 금상첨화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중략)"

어느 아이가 쓴 글의 한 부분이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를 더 많이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위하는 길이라는 주장이 주목을 끈다.

"우리는 너무 현실적인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우리 몸과 피부에 와닿지 않으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도대체 한글의 소중함과 상징성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국경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날이 한글날이라는 것은 알 수 있을 텐데….(중략)"

이 학생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했다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글의 상징성과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일회성 행사로나마 한글날을 아이들에게 인식시키고,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내심 불편하고 창피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를 가르치면서도 아이들에게 왜 우리 말과 글의 소중함을 강조하지 못했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나 자신조차 우리 말과 글에 대한 뚜렷한 자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진지하고 세심한 접근보다는 한글날의 공휴일 지정과 관련해서 전개된 아이들과의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나 자신과 아이들의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진정성의 부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존재 확인시켜 주는 우리 말과 글

시나브로 국어의 파괴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낯선 외국어 도입과 인터넷을 통한 언어 규칙의 파괴 등으로 우리 말과 글이 날로 오염되고 파괴되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체계를 가진 우수한 민족이라는 자부심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국어사랑이 나라사랑이 아니고, 영어사랑이 나라사랑이라는 어떤 아이의 지적대로 우리는 점점 우리 존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말과 글의 소중함을 잃어 가고 있는 듯 하다. 그 상징을 기리는 한글날이 국경일에서 제외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여전히 그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한글날이 공휴일이 되고 되지 않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국의 말과 글을 세계 속에 알리고 퍼뜨리려는 언어전쟁 시대에 살고 있는 이상, 우리 말과 글이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새삼 강조하지 않았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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